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반항적이었던 작가들의 작품이 2023년 9월 1일부터 2024년 1월 7일까지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여진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반항적이었던 작가들의 작품이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이하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간다.
그렇다면 당시 한국 미술계의 반항적인 인물들 누구였을까? 바로 한국 실험 미술 작가들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구겐하임이 공동 기획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 참여하는 이들의 작품은 2023년 7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먼저 전시되었다. 전시는 하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여진 후 2024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해머 뮤지엄(Hammer Museum)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한국의 실험 미술 작가들을 반항적이라고 하는 걸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당시에는 왜 이들의 작품이 반항적으로 여겨졌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활동하던 당시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저항했으며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가 작품에 담겨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실험 미술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1960년대, 한국은 근대화 정책을 시행하던 군사 독재 정권 아래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회에 대해 발언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억압되었고, 예술가들은 정부의 대중 매체 검열과 언론의 편집 통제 속에서 작업해야 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정치적으로 부패한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커졌다. 한국의 실험 미술 작가들은 예술을 통해 이러한 비판에 동참했다. 또한 예술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던 정부 주도의 국전에 저항하며 덕수궁 벽에 국전을 비판하는 작품을 붙인 “벽전”과 같은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주류에 순응하여 전통 회화나 조각을 만들거나 국전에서 장려하는 미술을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전통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계승을 강조하며 한국 미술의 탈서구화를 추구했다. 이들은 신문, 사진, 행위 예술, 영상 등 다양한 비전통적 매체를 활용했다. 오늘날에는 매체나 형식,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일이었다.
저항적 예술 운동을 펼쳤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청년 작가들의 활동은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를 따랐던 작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이들은 예술가가 가져야 할 태도를 되새기며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활용해 한국 현대 미술을 확장시켰고 당시 지배적이었던 미술 제도의 변화를 꾀하였다.
그런데 이들 활동의 중요성은 분명하지만, 국제 사회가 한국의 실험 미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하고자 하는 것일까?
오늘날 글로벌 미술관들은 백인 남성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서구 문화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다양한 문화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문화 예술은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아시아 미술을 조명하기 위해 2006년에 아시아 미술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이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아시아 현대 미술을 전담하는 수석 큐레이터 직책을 신설하고 약 20명의 비평가, 학자, 큐레이터, 예술가들로 구성된 아시아 미술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아시아 미술의 연구, 전시, 교육 및 수집 전략을 수립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러한 전략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미술, 예술가 및 사조를 강조하고 아시아의 예술적 기여에 초점을 맞춰 미술사에 대한 다국적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겐하임의 아시아 미술 이니셔티브는 그동안 다양한 전시를 통해 아시아 현대 미술을 조명해 왔다. 몇 가지 예시로 2009년 1월 30일부터 4월 19일까지는 2009년 국제 미술 비평가 협회상 뉴욕시 최고 주제별 미술관 전시 부문(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Critics award for the Best Thematic Museum Show in New York City)을 수상한 “The Third Mind: American Artists Contemplate Asia, 1860–1989”전을 열었고, 2013년에는 작품을 제작하는 순간순간에 나타나는 우연성을 포착한 일본의 구타이 그룹을 조명한 “Gutai: Splendid Playground”전을 펼쳤으며, 2017년에는 1989년 이후 중국의 예술을 조명하는 “Art and China after 1989: Theater of the World”전을 선보였다.
그 외에도 구겐하임 미술관은 2013년에 중국 현대 미술 이니셔티브(The Robert H. N. Ho Family Foundation Chinese Art Initiative)를 설립해 전시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이 이니셔티브를 통해서만 아시아의 미술을 조명해 왔던 것은 아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많은 주목을 받았던 차이 궈치앙(蔡国强, Cai Guo-Qiang)의 개인전 “Head On”전이나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파키스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의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No Country: Contemporary Art for South and Southeast Asia”전 등으로 아시아의 미술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 한국 실험 미술 전시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아시아 미술 이니셔티브가 주최하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미술관으로서 전 세계 미술사의 서사를 확장하고자 하는 미술관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한국 실험 미술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은 기존의 규범과 관행에 도전하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특성 때문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실험 미술 작가들의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 그리고 현대 미술 발전에 기여한 공헌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인식을 반영하여 작품 전시를 결정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들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감상되고 현대 미술사의 큰 흐름에 통합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