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 미술은 예술적 실험과 혁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기존의 미술 형식과 경험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예술가들은 관행을 벗어나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했고, 예술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Lee Kang-So, ‘Untitled-75031,’ 1975, Wood, Cock, Met, Plaster, Iron, Chalk, 9 Photographs and String, 25 x 350 x 350 cm.

이강소(b.1943) 작가의 작품은 실험 미술과 추상 회화의 영역에서 인정받고 있다. 1970년대에 그는 신체제, A.G.와 같은 그룹에 참여하고 대구현대미술제와 서울현대미술제 등의 미술 행사에 참여했으며, 회화, 판화,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 왔다.

이강소 작가는 1973년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국내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명동화랑에서 열린 ‘소멸(선술집)’이라는 행위예술 작품으로 국내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낡은 탁자와 의자를 가져와 갤러리 안에 주점을 만들어 갤러리 공간 자체와 그 안의 관람객들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이강소 작가는 1975년에 제9회 파리 비엔날레에 참여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회화 작품을 출품하는 대신 바닥에 밀가루를 뿌리고 살아있는 닭을 풀었다. 그는 닭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퍼포먼스로 제시했다. 해당 작품 ‘무제-75031’는 당시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모았다. 

이강소 작가는 전통 동양 사상과 표현 기법을 현대 미술에 통합시키는 실험을 하며 직관적이고 유기적인 작업을 하고 있으며, 관객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Lee Kun-yong performing ‘The Method of Drawing,’ 1976. Photograph: Lee Kun-yong/The Asia Culture Centre.

이건용(b. 1942) 작가는 A.G.와 S.T.와 같은 한국 실험 미술 그룹의 중요한 멤버로 활동했다. 특히 이건용 작가는 김복영 비평가와 함께 S.T.를 창단하여 1981년까지 그룹을 이끌었다. 1970년대부터 그는 예술가의 신체가 주요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개념에 집중하며 퍼포먼스, 조각, 설치, 비디오 등의 작업을 펼쳤다. 이건용 작가는 몸의 논리를 예술로 표현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다. 

이건용 작가는 오브제 중심의 설치 작업을 펼쳤으나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신체를 매체로 사용하는 변화를 보였다. 파리 비엔날레 참여를 위해 여러 어려움을 겪은 뒤, 파리에 도착한 작가는 자신의 존재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몸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아가 당시 비엔날레 부대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전위음악회는 작가가 몸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음악회에서 살아있는 망아지가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을 본 이건용 작가는 신체를 매개로 하는 이벤트(event)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이벤트는 우연적인 해프닝(happening)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벤트는 작품에서 우연성을 제거하고 논리를 부여하 위해 동일한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예술행위를 말한다.

이건용 작가의 대표 작품 중 하나는 1976년부터 진행되어 온 ‘바디스케이프’ 연작이다. 이 드로잉 연에 대해서 작가는 어떠한 필연적인 논리에 따라 일어나는 몸의 행위를 기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이건용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형태의 예술 표현을 창조해냈다.


Lee Seung-Taek, ‘Godret Stone,’ 1958, Stone, wood, rope, 85 x 188 cm

이승택(b. 1932) 작가는 전통 문화와 민속 예술을 탐구하여 ‘비(非)조각’과 ‘반(反)개념’을 중심으로 한 독창적인 예술 언어를 구축했다. 그는 비닐과 유리와 같은 일상 소재를 예술로 사용하며, 연기, 불, 물, 바람과 같은 비물질적 매체를 사용하여 조각의 경계를 넓혔다. 또한 전통적 개념의 조각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문화인류학적 행위인 묶기, 감기, 불 지르기, 천 날리기와 같은 행위를 조각의 범주로 끌어들였다. 

작가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미술계를 지배한 서양 근대 미술을 극복하고 한국 현대 조각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외면되었던 한국 전통 민속 및 무속 문화를 탐구하고 부활시키고자 했다.

그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 연작이  ‘고드레 돌’과 ‘바람’이다. ‘고드레 돌’은 한국 농촌에서 발이나 돗자리를 칠 때 사용되는 돌을 활용하여 전통 오브제의 현대적 변용을 시도한 작품이다. ‘고드레 돌’은 이후 이승택 작가의 ‘묶기’ 연작의 기반을 마련했다. ‘묶기’ 연작은 돌과 같은 딱딱한 물질에 홈을 파 노끈을 묶고 감아서 부드러운 물성으로 변형시킨 작업이다.

한편 ‘바람’ 연작은 무속을 모티브로 사용하여 민족적인 정신 에너지를 심미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승택 작가는 나뭇가지에 원색의 천이나 종이을 묶어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Installation view of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September 1, 2023–January 7, 2024). Photo: Ariel Ione Williams.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한국 실험 미술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여 등장했다. 젊은 작가들은 앵포르멜 중심의 주류 미술과 미술 제도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며 새로운 예술 형태를 찾기 시작했고, 서양과 일본의 예술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외국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독특한 맥락과 상황을 고려하여 한국의 실험 미술을 발전시켰다. 특히,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은 기 세대를 비판하고 한국미술전람회(국전)와 같은 기존 미술 제도에 반발하고 저항했다.

이들은 또한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과 같은 다양한 소그룹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들 소그룹은 1967년에 한국 실험 미술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시인 “청년작가연립전”을 개최함으로써 한국 실험 미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와 Space & Time(S.T.)와 같은 그룹이 형성되었으며, 여기에 참여한 다수의 작가들은 정치, 환경, 인권, 사회 평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사회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 실험 미술은 창의성을 촉진하고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표현의 공간을 제공하여 한국 현대 미술 다양성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한국 실험 미술은 예술적 혁신과 예술의 사회적 영향을 재고한 미술 운동으로 오늘날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역사적 미술 운동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