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0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Comedian)〉이 620만 달러(약 86억 7천만 원)에 낙찰되며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는 단순히 화제를 넘어서 동시대 미술이 자본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철학적으로 재조명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코미디언〉이 불러온 논란 : 마이애미에서 서울까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이 단순한 설치물은 즉각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전시 중 한 행위예술가가 작품의 바나나를 떼먹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다른 바나나를 다시 벽에 붙이는 것으로 끝났다.
2023년 초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카텔란의 개인전 “WE”에서도 〈코미디언〉이 전시되었는데, 이때 한 미대생이 전시된 바나나를 먹는 일이 발생하여 역시 논란이 되었으나, 작가와 미술관 측은 이를 문제삼지 않고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미술의 이중성: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소비재
〈코미디언〉은 현대 미술의 두 가지 본질적 속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하나는 인간의 상상력과 내면적 탐구를 반영하는 정신적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 가능한 물질로서의 외형적 특성이다.
작품은 바나나와 테이프라는 소모적인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예술이라는 맥락에 놓이는 순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이는 아더 단토의 “시각적
식별 불가능성 (indicernability)”의 개념과 연관된다. 이제
더 이상 미술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대상이 아니다. 미술은 필연적으로 개념화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따라서 일상적 사물은 예술로 승화되면서 고유성, 즉 미술품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동시에 그것은 자본주의적 거래
속에 편입되면서 물질적 소비재로 기능한다. 이런 ‘신분세탁’을 통해 예술의 순수성과 깊이는 희석되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매개체로서의 미술은 그 본연의 역할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예술의 자본화 : 본질의 왜곡과 가치의 전도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물질로 대체하며,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체제다. 〈코미디언〉은 이러한 체제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620만 달러라는 경매가는 단순히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 자본주의적 머니게임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품
속 바나나는 이제 단순한 바나나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이미지와 상징의 산물이며, 예술이 현실과 시뮬레이션 사이에서 어떻게 갈등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미술이 더 이상 본질적 가치로 평가되지 않고,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포장되고 소비되는 상품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미술의 자본화는 인간의 가짜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화된 소유욕과 비교경쟁이라는 시장경제 시스템을 통해 인간의 정신마저 물화(Reification)시켜버린다는데 그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가장
먼저, 예술의 본질인 창의성을 부정한다.
시장
논리에 종속된 미술은 창작의 다양성을 잃고, 상업적 성공이 보장되는 특정한 형태와 내용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는 예술가들의 창의적 실험을 제한하고, 미술의 본질적
다양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두번째로
자본주의 체제의 강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예술을 체제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는 극단적 사례다.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시장 시스템의 신뢰성을 입증하고, 그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예술이 본래 지닌 사회적 메시지 전달과 비판적 기능을 약화시키며, 단순히 자본의 논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신적 가치의 상실을 야기한다.
미술은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시장거래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정신적 가치가 소비 욕망과
투기적 이익에 가려지게 된다. 이는 예술을 단순한 물질적 소비재로 환원시키고, 창작의 본질적 의미를 희석시킴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왜곡하고 물질화시켜 버린다.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상상력과 철학적 성찰, 그리고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담는 매개체다. 예술이 자본주의의 도구로 전락할 때, 인간의 정신적 가치 역시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연결된 문제이며, 미술과
인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임을 상기시킨다.
〈코미디언〉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예술을 어떻게 소비하고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술이 본래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은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딜레마와 함께 미술의 미래를 묻는 도발적 선언으로 남을 것이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