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란사건’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만약 이 반란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가치는 무너지고,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는 억압당하는 새로운 암흑기가 도래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잔인하고 슬픈 역사를 각인시켰지만 이러한 불법
친위 쿠데타를 막아낸 것은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평화로운 시위였다.
또한 탄핵 표결을 앞두고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촛불로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쳤다. 젊은이들은 “탄핵응원봉”을 들고 K-Pop을 부르며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반란이 성공했다면, 한국의 문화예술계
역시 또 다른 암흑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각성시키고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들은 억압당하고, 의미 없는 장식품과 가식적인 작품들만 남아 문화와 예술의 생명력을 잃었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과거 한국 미술계가
겪었던 정치적 억압과 그로 인한 예술적 탄압의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의 순수미술 억압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은 한국의 전통미술과 민족주의적 표현을 철저히 통제했다. 1922년 시작되어 1944년까지 지속된 <조선미술전람회>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조선미전의 출품자격은 6개월 이상 국내(조선) 거주자였는데, 이는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 미술가들을 염두에 둔 자격조건이었다.
1922.6.22 <조선미술전람회> 상품수여식 기념촬영장면 ⓒ 근대뉴스
이러한 취지에 따라 한국의 전통적 미술 표현은 배제되었고 일본식 화풍과 친일적 작품이 중심에
섰다. 이러한 전람회는 미술계를 통제하기 위한 식민 권력의 도구로 작동했으며, 다수의 미술가는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의 이념에 협력해야만 했다. 일부
예술가들은 활동을 축소하거나 침묵으로 저항하며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군사정권 시기의 검열과 억압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며 예술계를 철저히 통제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전위 예술 활동이 '사회 질서 혼란'을 이유로 강제 중단되었다.
1970년 8월 15일 서울 사직공원에 일군의 청년예술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광복절을
맞아 외래문화로부터 한국문화의 독립을 선언하고자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행진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에 연행돼 즉결심판에 넘겨졌고 이들의 대표(통령)인 작가 김구림은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심문받았다. 정부는 이후 모든 문화 영역에서 '전위'를 불허하고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에 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구림
등이 참여한 전위작가단체 '제4집단'은 해체됐다.
1980년대에 등장한 민중미술
또한 198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미술(한국적 리얼리즘)은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등장한 사회 변혁과 비판을 위한 미술 운동이었다. 젊은 작가들은 기존의 엘리트 중심 미술을 벗어나 민중의 삶과 현실을 대변하려는 예술적 시도를 통해 소집단을 결성하고, 벽화와 판화 같은 형식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신학철의 ‘모내기’(1987년)
주된 주제는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의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 구조의 모순과 불평등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은 민중미술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단순한 미술적 표현을 넘어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정치적 저항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두렁, 산 그림, 1983, 표지 이미지 ⓒ두렁
그러나 민중미술은 군사정권의 검열과 억압에 직면하며 활동에 제약을 받았고, 일부 예술가들은 연행과 탄압을 당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민중미술은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 미술사에서 예술과 사회적 실천의 결합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이한열 열사 추모제에 설치된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 ⓒ박용수
이명박·박근혜 시기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다. 이는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의견을 달리한 문화예술인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약 9,400명의
문화예술인과 340여 개의 단체가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국공립 도서관이나 학교에서도 배제되었는데 이를
통하여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 사건은 후에 헌법에 어긋나는 행위로 판명되었으며, 관련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한강
소설가 역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정치적 권력이 예술을 억압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문화예술계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결론
예술은 억압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힘을 가진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예술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예술가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노벨상 수상기념 강연회 ⓒ nobelprize.org
한국 미술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억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우리만의 진실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윤석열내란사건’의 실패는 단순한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어야 하며, 예술은 진실과 자유를 위한 가장 강력한 목소리임을 잊지 말아야만 한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