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미술은 다양한 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전개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대표적으로 ‘A.G.’ (1969-1975), ‘S.T.’ (1969-1981), ‘제4그룹'(1970)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1967년에 개최된 “청년작가연립전”에 참여했던 ‘무동인’, ‘오리진’, ‘신전동인’ 이후 다수의 그룹이 등장해 한국 실험 미술이 발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그룹 중에는 ‘한국아방가르드협회(Avant-Garde, 약자 A.G., 1969~1975)’와 ‘조형예술학회(Space & Time, 약자 S.T., 1969~1981)’, ‘제4집단’(1970) 등이 있다.
1969년에 결성된 A.G.는 이전 그룹들보다 체계적인 전위 예술 활동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평론가들이 참여한 최초의 단체였다는 특징이 주목할 만하다. 3명의 미술평론가(김인환, 오광수, 이일)와 당대 젊은 실험 작가들(김구림, 김차섭, 김한, 박석원, 박종배, 서승원, 신학철, 심문섭, 이승택, 최명영, 하종현)이 이론적인 체계를 갖추면서 잡지를 발간하고 전시를 개최했다. 이들은 “전위 예술에의 강한 의식을 전제로 비전 빈곤의 한국 화단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모색 창조하여 한국 미술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라는 취지를 내세웠다.
Lee Kun-Yong, ‘Logic of Hand’ (1975–2018). Four chromogenic prints. 85 x 85 cm each. Edition 1 of 2. © Lee Kun-Yong. Leeum Museum of Art, Seoul. Courtesy the artist.
A.G.는 또한 그룹의 취지와 명분을 명확하게 밝히고, 정관을 제작하고,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매우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A.G.는 총 4권의 협회지를 발간해 서구 미술계의 동향, 미술이론, 작가론 등을 소개하고 우리 미술계의 현실을 반성하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또한 이들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그룹이었으며 작가와 평론가가 함께 그룹을 이뤄 이론이 부족했던 한국 전위미술에 논리를 부여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A.G는 결국 해체되었지만 ‘S.T’와 같은 전위예술 그룹이 만들어질 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S.T.라고 불리는 조형예술학회(1969~1981)는 공간(Space)과 시간(Time)의 약자를 사용한다. 당시 현대 미술 이론에 관심이 많았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하여 출범한 S.T.는 처음에는 학회의 형태로 시작해 점차 창작을 하고 조형예술에 대한 이론 연구를 병행하는 단체로 발전하였다. 미술비평가 윤진섭은 “S.T.가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미술이론의 심화’라고 하는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8번의 전시와 함께 당대 현대 미술 이론을 논의하는 공개 세미나를 개최해 토론을 하고 또한 다수의 회보를 발견하였다. 이 단체는 10년간 운영되었다.
이 단체에 참여한 작가들로는 미술평론가 김복영을 포함해 이건용, 성능경, 김용민, 최원근 등이 있었다. S.T.는 세미나와 토론에서 접한 이론을 바탕으로 창을 했으며, 전통적인 미술 재료나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들은 오브제, 자연물, 사진, 이벤트,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시간성과 장소성의 문제를 다루고 논리성을 추구했으며, 사물과 인간의 관계와 예술 개념의 본질을 탐구했다.
비록 S.T.는 구성원들 간에 개념 미술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크고, 의식적으로 개념미술을 행한 작가는 소수에 불과했다는 한계를 가지만, 멤버 전체가 개념미술적 경향의 작품을 전개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70년에 등장한 ‘제4집단’은 김구림 작가를 주축으로 하여 만들어진 그룹으로, 미술, 음악, 문학, 영화, 연극, 무용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었다. 이들은 예술 장르 간 구분과 대중과의 거리를 없애며 ‘해프닝(happening)’ 개념을 확대해나갔다. 제4집단은 8월 15일에 ‘기성문화예술인의 장례식’이라는 가두행진을 했지만 행위예술이 낯설었던 당시 경찰들은 이를 사회 질서를 저해하는 반사회적 행동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들은 연행되었고 영등포 경찰서에서 즉결심판을 받았다. 이들은 정부의 제지로 1년도 활동하지 못하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해체선언을 해야 했지만 이들의 과감한 실험 정신과 기성 제도 및 권위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많은 의의를 갖다.
해당 시리즈는 다음 주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References
- 국립현대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 구겐하임 재단(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의 미의식”, 재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