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타(b. 1956)는 1980년대 중반부터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해 온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대 사진작가 중 한 명이다. 김아타는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이어오며 작가로서 인지도를 넓혀 왔다.

2002년에는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06년에는 뉴욕 국제 사진센터에서 아시아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모든 존재는 생멸(生滅)한다”라는 말은 김아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사유이다. 그는 모든 존재들은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어지고 해체된다는 생명의 순환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사진뿐 아니라 ‘자연’ 자체를 매체로 삼아 풀어내 왔다. 그의 이름 ‘김아타’ 또한 ‘나와 너’라는 뜻의 한자어 아(我) 그리고 타(他)를 합쳐 작명한 것으로, 모든 존재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삶에 대한 그의 사유를 함의한다.

Atta Kim, Soo Ak Kim: Jinju Gummoo (Sword Dance) from the Human Cultural Assets Series 002, 1989 ©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김아타는 1980년대 중반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직접 경험해오며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정신병원에서 350여 명의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고, 지하 1,500미터에 있는 탄전에 직접 들어가거나 150명의 인간문화재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만의 철학을 배우는 등 다양한 삶 속에 침투하여 인간의 ‘정신’을 들여다 보고자 했다.  

이후 작가는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 시리즈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사물에 대한 이해로 넘어간다. 이 시리즈는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희미한 별빛과 달빛에 의존하여 1-2시간 동안 노출시간을 유지해 돌이나 풀 등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하이데거는 세계 내 모든 존재는 고립되어 있는 존재가 아닌 세계 속 다른 존재들과 상호작용하는 ‘현존재(Dasein)’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는 관계 속의 존재로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대상과 물아일체 되는 과정을 담아낸 작가의 실험적인 작업이라 볼 수 있다.

Atta Kim, Deconstruction 038, 1992 ©Atta Kim

〈해체〉 시리즈는 이러한 작가의 자연과 인간의 통합, 즉 물아일체에 대한 사유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해체〉 시리즈에는 논밭과 같은 자연 속 나체의 사람들이 마치 주변의 풀이나 돌멩이와 같이 널브러져 있다. 작가는 ‘해체는 관념 덩어리인 인간을 자연의 밭에 씨 뿌리는 행위’라고 말한다.

김아타의 사진 속 인물들은 주체로서의 ‘나’가 해체된 채 들판의 돌멩이와 다를 바 없는, 자연과 동화된 존재로 드러난다. 이는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시작되는 서구의 근대적 사유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후 그의 작업의 중심적인 사유 “모든 존재는 생멸(生滅)한다”의 실천적인 출발점이 된다.

Atta Kim, Museum Project #038, from the series Nirvana, 1998 ©MMCA

상자 안에 사람들을 마치 전시하듯이 넣어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 작업이다. 초반에는 웅크려 있거나 서 있는 나체의 남녀를 숲이나 도로, 백화점과 같은 장소에 두었으나, 후에는 다양한 나이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옷을 입힌 채로 상자 안에 전시하거나, 스튜디오에서 부상 당한 참전 병사들 또는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아크릴 상자에 넣어 촬영하거나,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나체의 남녀를 절간의 부처상 옆에 두어 촬영하기도 하였다.

〈뮤지엄 프로젝트〉는 이처럼 일상 속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아크릴 상자 안에 박제하여 중요한 것들만 보존하는 기존 박물관의 개념을 해체함으로써 세계 내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김아타의 사유를 반영한다. 

Atta Kim, ON-AIR Project 110-7-New York Series, 2005 ©MMCA

2006년 뉴욕 국제 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인 〈온에어 프로젝트〉 시리즈는 실험적인 사진기법을 활용하여 ‘존재의 생멸’과 그 허무함을 표현한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장노출과 레이어, 얼음의 물성을 이용한 세 가지의 프로세스를 가진다. 이에 대해 작가는 “‘온에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이 프로젝트의 기본개념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록하는 사진의 속성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는 자연의 법칙을 서로 대비시킨 것이다. 사실성이 사라지고 난 후 추상에서 존재의 실체를 탐구해 가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 중, 〈온에어 프로젝트 110-7-뉴욕시리즈〉(2005)는 거대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도시인 뉴욕을 ‘온에어’한 작업으로, 뉴욕 5 Avenue 57 Street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을 8 X 10인치 1컷의 필름에 노출하였다. 그 안의 뉴욕은 희미한 붉은 불빛만 남은 텅 빈 거리로 남았다. 장노출로 인해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빨리 사라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천천히 사라진다. 뉴욕 도심 속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의 흔적은 빠른 속도감과 함께 희미한 흔적만이 남은 채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Atta Kim, ON-AIR Project 153-1, Ice Parthenon, from the series “Monologue of ice”, 2008 ©Atta Kim

얼음의 물성을 활용하여 존재의 사라짐을 이야기하는 〈온에어 프로젝트〉의 ‘얼음의 독백’ 시리즈는 고체 상태인 얼음으로 예술 작품을 제작한 후 이를 미술관에 전시하여 녹아 사라지는 과정까지 담는 작업이다. 김아타는 얼음의 고체 상태를 ‘존재’로 본다면 기화된 기체는 비존재로 볼 수 있지만 얼음이 기화가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 즉 비존재가 된 이후에도 대기와 관계하여 비가 되고 눈으로 변함으로써 ‘모든 것은 관계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매체라고 설명한다.  

김아타는 3개월에 걸쳐 얼음을 사용하여 파르테논 신전을 1/15크기로 제작해 전시장에 두었다. 얼음 파르테논이 녹기까지는 약 한 달이 걸렸다. 전시장 안에는 얼음이 녹아 무너지는 웅장하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예술 작품은 공기와 물로 해체되어 사라졌다. ‘영원’을 기원하며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과 달리 김아타의 얼음 파르테논은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운명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후 김아타는 ‘인달라 시리즈’에서 각 도시의 활기 찬 모습을 중첩 시킴으로써 대상의 형체가 완전히 해체되어 마치 하나의 추상화처럼 표현했다. 약 10,000장 정도의 사진이지만 역설적으로 ‘공(空)’의 상태로 남게 된다.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꽉 찬 것, 이는 모든 사라짐은 존재를 근거로 한다는 그의 사유를 반영한다.

Atta Kim, ON NATURE, Buddhgaya in India, N 24°41´42˝, E 84° 59´33, Oct 9,2010_ Mar 22,2012, 2010-2012 ©Moran Museum of Art

이후 김아타는 다양한 지역에 캔버스를 두어 2년 뒤 수거하는 프로젝트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The Project Drawing of Nature)〉를 시작했다. 김아타는 베이징, 뉴욕, 도쿄, 히로시마, 인도 보드가야, 겐지스 강변, 그리고 DMZ를 포함한 한국의 곳곳, 4대 문명 발생지 등 다양한 맥락을 가진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대략 80개의 캔버스를 두었다.

곳곳에 설치된 캔버스 위에는 작가의 붓질 대신 박테리아, 눈, 비, 곤충, 물 등 자연의 변화무쌍한 환경에 따른 여러 흔적들이 남게 된다. 캔버스 위에 남겨진 이미지는 환경 속 무수한 존재들이 서로 미세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남긴 관계의 흔적들에 대한 기록이 된다.  

이처럼 김아타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시작으로 자기만의 존재론적 사유를 사진뿐 아니라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의 말처럼 존재는 언제나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다 해체된다. 기후 위기와 전쟁 등 여러 사회적, 환경적 문제가 얽혀 있는 전 지구적 혼란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김아타의 사유는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예술이 세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다 알고 예술 행위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세상을 다 알면 예술을 할 이유가 없다. 완벽한 세상에 예술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예술이고,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예술이 화려한 이유이다.” (김아타, 『백정의 미학』, 2019, p.409)


Artist Atta Kim ©The Artro

김아타는 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초청 특별전 및 2008년 로댕갤러리에서 개인전, 2006년 뉴욕 국제 사진센터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2002년에는 제2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였다.

작가는 작업 활동과 더불어 17권의 책을 펴냈으며 2020년에는 경기도 여주시에 사유와 성찰의 공간 ‘아르테논 Art+Parthenon’을 조성했다. 그의 작품은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USA, Hood Museum at Dartmouth College USA, New Britain Museum of American Art USA, Museum of Fine Arts, Houston USA,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림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 국내외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