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b. 1953)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현대사진의 시작과 전개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구본창은 ‘연출 사진(making photo)’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이며, 사진이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전통적인 역할을 뛰어넘어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반영해 주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예술이라는 인식을 가능케 함으로써 한국 현대 사진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구본창, 〈긴 오후의 미행 004〉, 1985 ©구본창

사진작가가 되기 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구본창은 1979년 독일 유학을 떠나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이방인으로서 낯선 독일의 도시 곳곳을 사진으로 담아냈으며, 유학을 마치고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서울로 돌아온 후 급격하게 변화한 서울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이방인으로서의 고독함을 경험했다.
 
그는 이러한 고독한 감정과 사진작가로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낮에는 밖에서 키치(kitsch)한 서울의 모습을, 밤에는 방에서 자기 자신을 사진에 담았다. 〈긴 오후의 미행〉은 서울 구석구석의 일상을 무작위로 컬러와 흑백 필름을 각각 장착한 카메라에 담아 인화한 사진을 네 장으로 엮은 작품이다. 이는 작가로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작품이었다.


구본창, 〈탈의기 01〉, 1988 ©서울시립미술관

〈탈의기〉 시리즈는 해변에 있던 밧줄 더미를 자신을 옭아매는 틀로 상정하고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직접 표현한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담긴 사진 작업이다. 촬영 후 필름을 긁거나 두 개의 필름을 겹쳐 콜라주를 하기도 하고 사진용 물감을 이용해 조색한 뒤 합친 하나의 필름을 다시 인화하기도 하였다.

이 시리즈는 1988년 워커힐미술관에서 구본창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한 “사진, 새시좌”전에 출품되어 ‘연출 사진(making photo)’이라는 명칭을 얻었으며, 이는 한국 사진계를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의 흐름 안으로 들여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구본창, 〈태초에 10-1〉, 1996 ©구본창

90년대에는 자신의 손과 발 등의 신체 일부를 큰 사이즈의 사진으로 인화한 뒤 바느질로 이어 붙인 〈태초에〉 시리즈로 ‘연출 사진’에 대한 실험을 이어갔다. 이는 ‘자아’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되어 여러 장의 사진이 실로 꿰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으로써 우리 삶에서 끊임없이 연결되는 관계들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구본창, 〈시간의 그림 05〉, 1998 ©구본창

이처럼 매체적 실험에 집중했던 작가는 1996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연의 순환을 담은 정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작가는 상실감을 떨치기 위해 일본 교토로 여행을 떠났다.

이때 방문한 어느 절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대웅전 외벽을 발견한 그는 이를 촬영하여 〈시간의 그림〉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때부터 작품은 실험적이거나 시각적으로 눈에 띄기보다는 보편적 삶에 관한 성찰을 담은, 관조적이고 정적인 분위기로 변화했다.


구본창, 〈문 라이징 III〉, 2004-2006 ©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은 우연히 조선백자 달 항아리와 함께 찍은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드 리치의 제자 루시 리의 사진을 본 것을 계기로, 일제강점기 이후 타국으로 흩어지게 된 조선백자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작가는 세계 곳곳에 소장된 백자 달 항아리들을 촬영하여 사진으로나마 한국으로 다시 들여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중, 영국과 일본 등 여러 국가에 소장된 달 항아리 12개를 촬영한 〈문 라이징 III〉은 각기 다른 흑백조로 나란히 놓여 마치 달이 뜨고 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구본창, 〈DMZ, SW 12〉, 2010 ©구본창

2010년, 구본창은 전쟁과 같은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사물들을 촬영한 작품 시리즈를 제작했다. 〈DMZ〉 시리즈는 2010년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사진가의 눈으로 6.25 전쟁의 상흔을 기록해 달라는 국방부의 요청으로 제작됐다.

이에 작가는 용산 전쟁기념관에 방문하여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간직한 유품과 잔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DMZ〉 시리즈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영혼과 그 가족의 마음을 위로하는 동시에 여전히 비무장지대가 유효한 한국의 현실을 일깨운다.

이처럼 구본창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작업에서 시작하여 삶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구본창은 사소한 물건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카메라를 통해 세상과 만난다.

“내가 시선을 두고 있는 사물의 영혼을 붙잡는 것이 사진에 담고자 하는 이야기예요. ‘영혼을 훔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구본창 작가. 사진: 오석훈. ©SBS

구본창은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 디플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계원예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고 현재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에서 재직중이다.

미국 피바디 에섹스 뮤지엄, 파리 갤러리 카메라 옵스큐라, 국제 갤러리,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기관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삼성 리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으로는 한길아트 ‘숨’, ‘탈’, ‘백자’, 일본 Rutles ‘白磁’, ‘Everyday Treasures’, '공명의 시간' 등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