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b. 1976)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사물들에 나타난 이미지에 주목하여 이를 작고 정교한 조각과 결합해 왔다. 사물과 조각이 연결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과 현실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점토의 일종인 스컬피나 화석, 공산품 등으로 구성되는 매체 선정 및 특유의 표현 방식은 작가의 개인적 취향과 사적인 경험에 기대고 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에 대한 진지한 관찰이거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에서 비롯되곤 한다.


이동욱, 〈Sailor〉, 2004 ©아라리오뮤지엄

이동욱은 대학을 다니던 무렵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작은 프라모델에 클레이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사용되는 스컬피라는 재료를 결합하여 작은 인간 형상의 조각을 만들어왔다. 이후 2000년 초부터 작가는 통조림과 같이 대량생산되는 상품들의 디자인에 표현된 이미지들에 주목하기 시작하며, 그의 작은 조각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동욱, 〈그린 자이언트〉, 2003-2004 ©국립현대미술관

특히 작가는 실제 내용물과 무관한 제품 디자인 속 이미지들에 주목해 왔다. 이를 테면 미국의 통조림 옥수수 제품인 ‘그린 자이언트 니블릿 스위트콘’을 이용한 작업 〈그린 자이언트〉(2003-2004)는 실제 내용물인 옥수수보다도 제품 표면에 전면적으로 그려져 있는 녹색 거인 이미지에 착안하여 제작되었다.

이동욱은 녹색 거인의 평면 이미지를 스컬피를 이용하여 입체적 형상으로 실제화하고, 이를 통조림 안에 옥수수 알맹이 대신 집어넣었다. 소비를 유도하고자 고안된 제품 캐릭터가 실제 상품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통해, 실제 제품이 아닌 ‘이미지’를 통한 상업적 술수를 유쾌한 방식으로 꼬집어 보여준다.


이동욱, 〈돌핀 세이프〉, 2003 ©국립현대미술관

작가는 제품 포장에 그려진 이미지 뿐 아니라 표면에 적힌 문구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작은 조각으로 형상화하기도 하였다. 가령 참치 통조림을 이용한 작업 〈돌핀 세이프〉(2003)는 통조림 표면에 적힌 ‘돌핀 세이프’ 마크에 착안하여 제작되었다.

‘돌핀 세이프’ 마크는 돌고래 떼를 따라다니는 참치의 특성상 참치 어획 시 돌고래를 포함하여 어망을 치는 방식이 아닌 돌고래가 근처에 없을 때만 참치를 잡아 통조림을 만들었다는 표시이다. 작가는 이러한 마크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맥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돌핀 세이프’라는 문구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미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만들어진 작은 사이즈의 돌고래 조각은 그 출처인 실제 상품의 내용물, 즉 참치를 대체함으로써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동욱, 〈Hooker〉, 2004 ©두산아트센터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대량생산되는 소비상품들의 표면에 나타난 이미지 또는 문구를 입체의 형태로 실제화하여 현실의 맥락과 교차시킴으로써 비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한편 이후 발표한 그의 작업들은 기존의 작업과 같은 선상에 있지만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2004년에 발표한 〈Hooker〉는 작은 인체 형상으로 물고기 미끼를 만든 작업으로,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본질을 형상화하고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미끼와 같은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인간 존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동욱, 〈Good Boy〉, 2012 ©두산아트센터

이와 함께 이동욱은 수집 및 동물을 기르는 자신의 취미에서 비롯된 ‘기르기(Breeding)’라는 행위를 주제로 한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이때 작가는 기르는 자와 길러지는 자 사이에서 작동하는 기르기의 지배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 예로, 2012년작 〈Good Boy〉은 30여 마리의 개들의 목줄을 붙들고 서 있는 인간의 형상이 표현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인간은 목에 줄을 맨 채로 위태롭게 중앙에 서 있음으로써, 조금이라도 균형이 어긋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내재하고 있다.

제목에 쓰인 ‘굿보이(Good Boy)’라는 단어는 이 작품에서 개를 지칭하는 것인지 혹은 이러한 사슬의 상단에 위치한 묶인 인물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이는 굿보이라는 말로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고 있는 상황, 또는 사회 내에 여러 관습과 터부에 의해 암묵적인 질서에 놓인 상태를 보여준다.


이동욱, 〈지켜야 할 영광과 지우고 싶은 과거〉, 2012 ©아라리오갤러리

한편 같은 해 발표한 설치 작업 〈지켜야 할 영광과 지우고 싶은 과거〉(2012)은 인간의 형상 대신 새장과 작가가 직접 수집한 트로피들, 그리고 실제 새들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새장 속에는 승리와 성취를 상징하는 트로피와 그 안에 담긴 모이를 먹고 자라는 새들이 놓여 있다.

반짝이는 트로피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들의 배설물과 각종 오물들로 더럽혀져 그 빛을 잃게 된다. 〈지켜야 할 영광과 지우고 싶은 과거〉는 빛나는 영광의 순간부터 몰락까지의 과정을 서서히 보여주며, 인간 사회에서의 부와 명예와 같은 화려한 가치들 또한 일시적이고 유한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동욱, 〈모두 다 흥미로운〉, 2016 ©페리지갤러리

2016년부터 이동욱은 동양의 오래된 취미 중 하나인 수석(광물을 수집, 배치하고 관상하는 취미)에 관심을 가져오며 이로부터 파생된 작업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직접 자신의 눈길을 끄는 돌들을 수집하여 이들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제작했다. 보통 수석에 쓰이는 돌은 점잖은 색감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다양한 무늬와 색깔을 가진 개성 있는 돌들을 재료로 삼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각기 다른 돌들로 구성된 〈모두 다 흥미로운〉(2016)은 서로 뒤엉켜 쌓여 있으며, 이들 사이로는 이전의 작업들에서 사용되었던 재료와 오브제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개성이 강한 다양한 돌들이 서로 표면을 맞닿으며 엉켜져 있음으로써 개별적인 주체성이 드러남과 동시에 전체 풍경 속에 그 모습들이 가려지는 상황이 함께 나타난다.

이동욱, 〈모두 다 흥미로운〉(세부 이미지), 2016 ©페리지갤러리

작가는 이렇게 모호한 설치 작업을 통해 모든 것은 표면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을 보아야 하며, 이를 통해 개별적인 존재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주로 단독상의 인간 형상을 통해 우리 인간이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해 왔다면, 〈모두 다 흥미로운〉에서는 더 나아가 자연, 인공물을 포함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성찰로 확장되어 있다.

작가는 돌들을 이용해 표면과 이면의 관계를 다룸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 사이의 보편적인 균형과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것들에 대해 함께 사유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진다. 

이동욱, 〈부족한 결합〉, 2018 ©아라리오갤러리

이처럼 이동욱의 작업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을 비롯해 현실의 이면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는 오브제들 간의 결합이다.

이동욱은 사물과 사물, 그리고 인간과 사물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유를 끊임없이 작품 속에 녹여 왔다. 2018년에 발표한 〈부족한 결합〉은 이러한 작가의 사유가 잘 드러난다. 이 안에는 스컬피로 만든 인간과 동물 형상, 나뭇가지, 벌집 모형, 수집한 돌 등 다양한 오브제들이 느슨하게 뒤엉켜 결합되어 있다.


이동욱, 〈부족한 결합〉(세부 이미지), 2018 ©아라리오갤러리

작가는 무언가를 연결하는 데에는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색 배치나 형태 등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새로운 미적 조화 또한 강조한다. 이동욱은 이처럼 자신이 수집한 세상의 수많은 오브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서 생명을 부여한다.

이동욱, 〈빛나는〉(세부 이미지), 2024 ©아라리오갤러리

이러한 작가의 인간 사회에 대한 성찰과 다양한 재료들의 배치와 결합을 통한 미적 탐구는 최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최된 그의 개인전 “붉고 빛나는”에서 선보인 신작들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났다.

그 중, 대형 설치 작업 〈빛나는〉(2024)은 모두 은색으로 이루어진 매우 상이한 오브제들이 연결되고 배치되면서 시각적인 자극을 자아낸다. 명명된 제목처럼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이 작품의 재료들은 백금으로 덮은 나뭇가지, 여러 은색 오브제 그리고 은색 포장끈이다.

원재료인 나무를 드러내는 표면 텍스처와 그 표면을 덮은 백금이 표출하는 찬란하고 빛나는 은색과의 시각적 충돌, 그리고 백금의 은색과 포장끈의 은색 사이의 유사하면서 상이하게 빛나는 표면들의 차이는 이질적인 시각적 자극을 만들어낸다.


이동욱, 〈일곱 명의 기사〉, 2024 ©아라리오갤러리

한편 또 다른 신작 〈일곱 명의 기사〉(2024)는 특정 구조물 속 작은 인간 형상의 표현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드러내는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는 전작들에서 작가가 세심하게 만든 분홍색 피부가 유난히 두드러졌던 구상적인 인간 형상들이 아닌 몰드로 거칠게 찍어낸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한 붉은 색 인물상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마치 으깨진 살덩어리처럼 표현됨으로써 구조 속 매몰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보도록 한다.

이처럼 이동욱은 작은 크기의 정교한 인체 조형물과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들을 극단적이고 기묘하면서도 미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결합해 왔다. 그러한 작업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초상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한다. 사람은, 특히 개개인은 모두 약한 존재다. 혼자 있는 하나하나의 인간에 주목한다. 인간이 사악해지는 것도 약해서 그런 것이다. 우리 모두 비슷비슷한 존재일 뿐이다.” (이동욱, 톱클래스 인터뷰, 2013년 4월호)


이동욱 작가 ©대전시립미술관

이동욱은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부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아라리오갤러리(서울, 2024; 2012),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II(제주, 한국, 2016), 샬롯룬드갤러리(스톡홀름, 스웨덴, 2013), 두산갤러리(뉴욕, 미국, 2012) 등이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울, 2023; 2018; 2014; 2011; 2010), 대전시립미술관(대전, 한국, 2021), 인사이드-아웃 아트뮤지엄(베이징, 2017), 라이트박스(베니스, 이탈리아, 2013), 아트앤디자인 뮤지엄(뉴욕, 미국, 2011), 웁살라 미술관(웁살라, 스웨덴, 2011),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한국, 2010; 2009; 2004), 사치갤러리(런던, 2009), 토탈미술관(서울, 2009), 오사카미술관(오사카, 일본, 2007) 등이 연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한국), 서울시립미술관(한국), 버거컬렉션(홍콩), 루벨 패밀리 컬렉션(미국), 금일미술관(중국)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 및 재단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