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b. 1956)는 한국 현대 사진의 다채로운 형식 실험을 이어오며 미학적 토대를 다져온 중요한 작가 중 한명이다.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이미지를 주 매체로 삼아 일상의 시각 환경을 채집해 현실과 허구,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독자적인 작업을 전개해 왔다.  

강홍구는 사진 고유의 매체적 속성을 강조하며 대상을 또렷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자 했던 당시 사진계가 고수한 ‘순수 사진’ 또는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가 아닌, 이미지로서의 사진의 확장 또는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시도해 오며 한국 현대 사진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했다. 그는 주로 사회, 정치적 맥락 속에 남겨진 흔적들을 발견하며 그 안의 모순된 현실의 풍경을 사진으로 포착해 낸다.

Kang Hong-Goo, Fugitive 2, 1996 ©Korean Artist Project

디지털 사진 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하지 않았던 1990년대 당시 작가는 주로 잡지에 실린 사진이나 기성 엽서를 스캔하고 합성해 이미지를 제작했다. 가령, 〈나는 누구인가〉(1996-1997)에서는 영화 장면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합성하여 유명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일종의 냉소를 표현하기도 했다.

강홍구는 이러한 ‘합성’ 기법을 활용한 〈나는 누구인가〉 시리즈에 이어, 〈도망자〉 시리즈를 통해 이 세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검열하고 회의하는 작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담아냈다.  

〈도망자〉 시리즈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작가의 부채 의식에서 출발했다. 1980년 5월 18일 당일 섬에 있었던 작가는 이후 방문한 광주에서 처참한 현실을 목격했다. 그날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현장 안에서 작가는 이 끔찍한 역사으로부터, 일종의 권력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으며 개인으로서 무력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후 강홍구는 연출된 장면에 자신의 이미지를 합성하여 참혹한 현장을 벗어나고자 어디론가 질주하고 있는 작가 자신을 〈도망자〉 연작에 표현해냈다.

Kang Hong-Goo, Greenbelt – A Lofty Scholar Contemplating Water, 1999-2000 ©Korean Artist Project

강홍구는 〈도망자〉 시리즈 이후 디지털 카메라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시기에 제작된 〈해수욕장〉, 〈오쇠리 풍경〉, 〈그린벨트〉 시리즈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산책을 하던 작가가 우연히 마주한 일상적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시작된 작업들이다. 그리고 그가 포착한 일상의 풍경은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린벨트〉 시리즈는 작가가 당시 거주하던 부천 옆 그린벨트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곳의 풍경을 담아낸 작업이다. 작가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그린벨트는 이름처럼 ‘그린’하지 않았다. 작가는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를 억제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이지만 주위에는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공장과 그곳에서 나온 폐수로 인해 오염된 하천이 자리하는 이러한 모순적이고 기이한 그린벨트의 풍경을 작업으로 남기기로 한다.

〈그린벨트 - 고사관수도〉(1999-2000)는 쓰레기와 폐수로 오염된 그린벨트의 하천과 이를 내려다보는 한 남성의 모습을 담아낸 흑백 사진으로, 작품의 부제인 조선시대 문인 화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와 대비된다. 원작은 격조 높은 선비가 자연을 즐기며 맑은 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지만 강홍구는 그린벨트의 오염된 물을 내려다 보는 한 남성의 모습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낸다.


Kang Hong-Goo, drama set 6, 2002 ©Parkgeonhi Foundation

이후 강홍구는 우연히 폐기된 드라마 세트를 보게 된 것을 계기로 〈드라마 세트〉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 드라마 세트장에는 일제 강점기와 조선 시대, 그리고 1970년대가 뒤섞여 있기도 하고 평양과 서울이 아주 가깝게 붙어 있는 등 시공간이 혼재된 기묘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화 된’ 장소에서 진짜 현실과 가짜 현실이 만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안에 그림자를 지운 인물 이미지를 합성하여 넣음으로써 더욱 기이함을 부각시켰다.

Kang Hong-Goo, Mickey’s House - Clouds, 2005-2006 ©Korean Artist Project

강홍구는 개발 논리로 인해 사람들이 떠난 폐허가 된 마을을 찾아 다니며 그 공허하고 기이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던 어느 날, 홍대 길거리에 주변 맥락과 전혀 관계 없는 생뚱맞은 생선 오브제를 두고 무의미한 가짜 사진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오브제를 이용한 이미지의 재구성 작업은 추후 〈미키네 집〉, 〈수련자〉 시리즈로 발전되었다.  

〈미키네 집〉 시리즈는 재개발이 시작된 불광4구역에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빈 집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서구식 2층 구조의 주택 모형 장난감 ‘미키네 집’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작업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떠나버린 폐허나 담장에 미키네 집을 놓고 풍경을 담아 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던 주택 형태의 ‘미키네 집’은 사람의 자취를 잃은 장소 안에 놓이며 이상과 현실의 대비를 오색찬란하면서도 공허하게 드러낸다.


Kang Hong-Goo, Chronicle of Eunpyeong New Town, 2001-2015 ©MMCA

2001년 은평구로 이사한 작가는 농촌과 도시 변두리의 분위기가 혼재하는 이 곳의 풍경에 흥미를 느끼며 지속적으로 은평구의 풍경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은평구의 농촌과 도시 사이의 접점과 변이를 추적하던 도중, 2004년 갑작스러운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며 마을의 풍경은 이전과 다르게 변모해갔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마을의 풍경이 점차 사라지게 됨에 따라 뉴타운 이후의 사진은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마을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은평뉴타운 연대기〉는 기존 동네의 풍경이 사라져가고 새 건물이 들어서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은평뉴타운의 변화 과정을 촬영한 방대한 양의 사진들을 영상으로 편집한 작업이다.

Kang Hong-Goo, Study of Green – White Birch A, 2012 ©Korean Artist Project

강홍구는 2007년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텅 빈 폐허가 아닌 다양한 녹색들을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산에 오르며 녹색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내던 중 작가는 ‘녹색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되새기게 된다.

그러한 녹색에 대한 탐구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작가는 사진 이미지를 분할시키고 그 위에 물감을 덧대기로 했다. 이러한 작가의 조작은 말끔하게 마감된 사진 작품을 감상해 온 관람객에게 물감 아래 가려진 본래 이미지에 대해 보다 능동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이와 같이 강홍구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담아내며 ‘바라보는 행위’ 자체에 대한 실험을 사진을 통해 이어왔다. 그는 항상 우리가 사는 시대의 조작된 이미지들과 거리를 두고 그 이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시해 왔다. 그리고 이는 강홍구 스스로 집요하게 추구해온 작가로서의 태도이기도 하다.

“사진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본 걸 찍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못 봤는지 증명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건 결국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했던 ‘시각적 무의식’으로의 사진이에요. 사진이라는 건 어떻게 해도 컨트롤이 안 되고 그렇게 컨트롤 안 된 세계를 찍으면 그 안에 사회가 품고 있는 무의식과 욕망이 담겨지고 드러납니다.

사진의 진짜 역할은 사진가가 무엇을 찍는가가 아니라 사진가가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은 ‘왜 이럴까?’와 같은 생각을 조금이라도 일으키는 것입니다.” (MMCA 작가와의 대화 | 강홍구 작가) 


Artist Kang Hong-Goo ©SeMA

강홍구는 1956년 전남 신안의 섬에서 태어나 목포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육 년 동안 섬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다시 학생이 되어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금호미술관, 로댕갤러리, 고은사진미술관, 사비나미술관에서 스물일곱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개최된 다수의 주요 단체전에 참가했다.

그는 여러 권의 미술 관련 대중서를 집필하기도 하였으며, 2006년 한국문예진흥위원회 올해의 예술가상과 2008년 동강사진예술상, 2015년 서울루나포토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