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학제적 예술가인 이강승(b. 1978)은 1세계-백인-남성-이성애 중심으로 서술된 주류 역사에 도전하고, 그 역사 속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서사를 다시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마치 역사학자처럼 공공 및 민간 아카이브를 조사 및 발굴하고 연구한다.
 
이강승은 주류로부터 밀려난 퀴어들에 대한 아카이브를 드로잉, 자수, 태피스트리, 도자기, 직물 조각, 네온 작업 등 작가의 신체를 통해 완성되는 매체로 전유함으로써 역사를 새롭게 쓰고 상상하는 대안적인 방식을 제안한다.

이강승, 〈무제(아트스피크?)_앨리스〉, 2014-2015 ©이강승

이강승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인종, 성적 지향, 출신 등이 다양한 동료들을 협업자로 초대해 작품 제작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은 진행형의 개방적인 미술 프로젝트로 전개되며, 협업자들은 새로운 서사를 쓰는 일에 동참하면서 또 다른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협업의 구조는 그의 초기 프로젝트인 〈무제(아트스피크?)〉(2014-)에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강승은 당시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동료 예술가 20인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작가는 그들에게 로버트 앳킨스(Robert Atkins)의 저서 『아트스피크: 1945년부터 현재까지, 동시대의 개념, 운동, 전문어 안내서』에 실린 연대표에서 각자의 태어난 년도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손으로 그린 확대본을 전달한 다음 편집을 부탁했다.

이강승, 〈무제(아트스피크?)〉, 2014-2015, 설치 전경 ©이강승

나이, 젠더, 인종, 성적 지향, 문화적 배경 등이 다양했던 협업자들은 페이지의 여백에 저마다 원서에서 누락된 작품, 뮤지션, 영화감독 등에 관한 주석, 일화, 사건, 드로잉을 채워 넣었다. 이로써 모인 편집본들은 여러 개개인의 다양성이 교차되는 다중의 역사 서사로 기록되며, 기존 판본의 역사에 내재된 남성중심주의와 이성애주의, 그리고 식민주의를 해체한다.

이강승, 〈무제(David Wojnarowicz by Peter Hujar_1983)〉, 2016 ©이강승

한편 2016년 로스앤젤레스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Commonwealth and Council)에서 열린 개인전 “떠남 없는 부재(Absence without leave)”에서 선보인 그의 흑연 드로잉 연작들은 짧은 생을 살았던 퀴어들의 삶을 기록하고 추모한다.  
 
이강승의 드로잉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자화상, 피터 후자(Peter Hujar)가 촬영한 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ojnarowicz)의 초상 사진 등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의 게이 남성들의 모습이 담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원자료인 사진을 충실하게 모사하는 한편 사람의 형상은 지우거나 불분명하게 묘사했다.

이강승, 〈무제(정원)〉, 2018, “Garden” 전시 전경(원앤제이 갤러리, 2018) ©원앤제이 갤러리

그 다음해 이강승은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가졌다. 2018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Garden”전은 영국과 한국에서 각각 게이인권을 위해 활동했던 90년대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데릭 저먼(Derek Jarman)과 오준수의 삶을 기리고 기록한 드로잉과 설치, 비디오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전시 2년전부터 데릭 저먼의 개인 정원에 수차례 방문하며 저먼이 직접 골라 구성한 정원의 식물들을 채집하고, 정원 안에 남겨진 저먼의 흔적을 따라 재현했다. 이강승은 그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법으로써 정원의 식물들과 정원 안 조각들, 그리고 그가 정원을 디자인하며 작성한 다이어리의 내용과 필체를 한국의 전통 삼베 천에 금사 자수로 새겼다.
 
이러한 작가의 몸을 통한 수행적인 기록은 에이즈에 의한 사회적 낙인과 호모포비아와 싸워왔던 데릭 저먼의 삶을 강렬하고 고귀한 기억으로 남긴다.

왼쪽부터; 이강승, 〈무제(탑골공원의 나무와 던지니스의 자갈들)〉, 〈무제(남산공원의 나무와 던지니스의 자갈)〉, 〈무제(오준수의 편지)〉, 2018, “Garden” 전시 전경(원앤제이 갤러리, 2018) ©원앤제이 갤러리

이와 함께 이강승은 젊은 나이에 타개한 한국의 게이인권/에이즈운동가 오준수의 삶을 기록되고 전달되어야 할 역사로 불러왔다. 작가는 오준수가 ‘친구사이’라는 남성동성애인권단체에서 활동했던 기록들,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친구들에 의해 출판된 그의 일기와 시 등 그에 대한 자료들을 드로잉과 자수 작업으로 재현했다.
 
160 x 120 cm 크기의 드로잉 작업 〈무제(오준수의 편지)〉(2018)는 에이즈로 죽는 상상을 하며 느낀 외로움을 꾹꾹 눌러 담은 오준수의 편지를 확대하여 옮겨 담았다. 이강승은 이 드로잉에 오준수의 필체 그리고 종이의 구김까지 섬세하게 재현했다. 작은 크기의 종이 위에 그려진 기존의 드로잉 작업들과 달리, 이 작업은 커다란 세로 방향의 종이 위에 마치 기념비처럼 기록하여 관객이 오래 천천히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준수의 삶을 오늘날 대중의 기억 속에 새롭게 새겨 넣는다.

“Garden” 전시 전경(원앤제이 갤러리, 2018) ©원앤제이 갤러리

이처럼 이강승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았던 두 인물의 삶을 노동집약적인 매체로써 재현하며 다시금 기억하고, 끊임없이 저항해온 그들의 삶을 역사로 기록했다. 전시는 세상의 다른 두 장소에서 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수집한 자료와 사물들을 함께 엮어, 두 사람이 각각 나란히 펼친 투쟁과 창조와 저항을 교차하고 연결하며 추모를 위한 장소가 된다.

“퀴어락” 전시 전경(합정지구, 2019) ©합정지구

2019년 이강승은 이삼십대로 이루어진 한국의 젊은 퀴어 작가들과 역사에서 삭제된 한국 퀴어들의 타임라인을 다시 새롭게 그려내는 전시를 기획했다. 합정지구에서 “퀴어락(QueerArch)”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이 전시는 2002년에 설립된 퀴어락(한국 퀴어 아카이브) 활동가이자 한국 퀴어 전문 잡지 『버디』(1998-2003)의 편집장이었던 한채윤의 개인 아카이브와 잡지 『버디』의 기증품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이강승과 참여 작가들은 퀴어락에서 수개월 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그래픽 디자인, 조각, 설치, 영상, 패션 등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독창적이고 대안적인 타임라인을 그려냈다. 여기서 이강승은 작가인 동시에 기획자이자 전시 감독의 역할을 맡았다.

“퀴어락” 전시 전경(합정지구, 2019) ©합정지구

이강승의 큐레토리얼 실천으로 형성된 이 한시적인 퀴어 공동체에는 패션디자이너 김세형(AJO), 아카이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루인, 예술가이자 무대연출가인 문상훈, 드랙킹 아장맨, 시각디자이너 이경민, 조각가 최하늘로 구성되었다.
 
이강승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한 이 전시로써 퀴어 공동체의 행동주의 유산에 헌정하는 역사를 다시 쓰는 동시에, 위기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 서로를 찾고 연대해온 공동체의 윤곽을 지각할 수 있도록 했다.

“잠시 찬란한” 전시 전경(갤러리 현대, 2021) ©이강승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비롯한 전 지구적 재난이 드리우며 일상 곳곳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가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전파에 취약한 장소와 집단이 가장 먼저 표적이 됨에 따라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이 누구보다 취약하고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집단들이 공개적인 지탄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함께 서구에서는 아시안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도 곳곳에서 심화되어 나타났으며,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연이은 자살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2021년 갤러리현대에서 진행된 개인전 “잠시 찬란한”에서 이강승은 퀴어 공동체의 지난 과거의 역사부터 이러한 동시대의 위기 속 퀴어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실천으로서 아카이브를 선보였다. 전시에서 작가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이전부터 성소수자의 역사를 관통해온 전염병인 에이즈로 사망하거나 생존한 예술가 중에서도 홍콩 출신 사진가 쳉퀑치(Tseng Kwong Chi)와 1980년대 워싱턴 발레단에 명성을 가져다준 싱가포르계 댄서 고추산(Goh Choo San) 등 아시안 유색인종 예술가들을 소환했다.

이강승, 〈무제(션 맥쿠웨이트)〉, 2021 ©이강승

영상 작업 〈무제(션 맥쿠웨이트)〉(2021)는 작가의 소장품인 쳉퀑치의 1980년 포스터 작업의 모델이었던 발레 댄서 션 맥쿠웨이트(Shawn McQuate)와 협업하여 이를 재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션 맥쿠웨이트는 HIV 합병증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리지널 포스터 작업을 재현하기 위해 41년만에 다시 제작한 당시의 의상을 착용한 후 힘겹게 포즈를 취했다.
 
이와 함께, 작가는 2021년 초 연이어 세상을 떠난 한국의 트랜스젠더 활동가이자 음악 교사였던 김기홍과 성별정정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육군 강제 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를 그린 드로잉 작업, 그리고 상이한 시공간과 맥락들의 단편으로서 존재하는 여러 이미지와 텍스트, 오브제들을 감각적으로 배치했다.

“Briefly Gorgeous” 전시 전경(갤러리 현대, 2021) ©이강승

지하 1층 전시공간에서는 코로나19가 확산되던 당시 표적이 되었던 이태원의 게이 클럽 ‘킹 클럽’의 로고를 퍼즐의 형태로 조립하여 벽면에 걸고, 클럽 조명을 연출한 다음 동료 예술가들이 퀴어 공간의 의미를 해석해 만든 각자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이로써 전시장은 퀴어 박물관이자 기록 보관소, 그리고 클럽 등 퀴어 공동체의 기억과 경험, 서사를 간직한 공간으로 유연하게 전환된다. 

이강승, 〈손의 심장〉, 2023 ©이강승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에 참여하며 선보인 그의 신작 〈손의 심장〉(2023)은 젊은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한 상가포르계 안무가이자 댄서 고추산의 삶을 재조명한다. 고추산은 위싱턴 발레단의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을 맡았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휴스턴 발레단 등 미국 주요 발레단과 활발하게 협업했지만 그의 역사와 업적은 미국 주류 예술사는 물론이고 퀴어 역사에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강승은 이러한 그의 삶을 기억하고 역사로 다시 쓰고자 필리핀계 트랜스젠더이자 넌바이너리 안무가인 조슈아 세라핀(Joshua Serafin), 필름메이커 네이슨 머큐리 킴(Nathan Mercury Kim), 서울의 트랜스젠더 작곡가 키라라(KIRARA) 등 퀴어 공동체 사람들과 협업하여 영상 작업 〈손의 심장〉을 제작했다.
 
영상은 고추산의 안무 〈Configurations〉(1981)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안에서 안무가 조슈아 세라핀은 고전 발레와 현대무용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 볼 법한 몸동작을 뒤섞으며 기존의 안무를 새롭게 표현해낸다. 세라핀의 안무에는 강렬한 EDM 트랙이 깔리며 원작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강승, 〈손의 심장〉, 2023, 빈센트 프라이스 아트 뮤지엄 전시 전경(LA, 2023) ©이강승

세라핀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박동하는 사운드는 고추산이 남긴 업적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의 안무를 해체함으로써 지역과 국적, 세대를 뛰어넘어 퀴어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강승은 존재했으나 드러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지운 현실에 의문을 던지고, 지워진 개인들의 서사를 현재로 소환함으로써 시대와 국경, 인종과 성별을 넘어 이들을 연결하며 “돌보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를 위해 작가는 동료 퀴어 예술가들 또는 활동가들을 한 곳에 모아 함께 새로운 역사쓰기를 진행해오며 미래에 다시 전승될 이야기들을 남기고 있다.

“나의 작품이 앞서 존재했으나 드러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지운 현실에 의문을 던지고, 세대 간의 연결과 돌봄이 담긴 공간에 관한 대화를 불러오며, 비가시성을 가능성으로 다시금 상상하는 초대가 되었으면 한다.” (이강승, “Kang Seung Lee on Tseng Kwong Chi (이강승이 말하는 쳉퀑치)”, in Denise Tsui, ed., Collected Writings by Artists on Artists vol. 2 (CoBo Social, 2021), pp. 96–103.))

이강승 작가 ©갤러리현대

이강승은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예술석사학위를 받았다. 빈센트 프라이스 미술관(로스앤젤레스, 2023), 갤러리현대(서울, 2021), 원앤제이갤러리(서울, 2018), 아트페이스(산 안토니오, 2017), 커먼웰스 & 카운실(로스앤젤레스, 2017, 2016), 로스앤젤레스 컨템포러리 아카이브(로스앤젤레스, 2016), 피처 칼리지 아트 갤러리즈(클레어몽트, 2015), 센트로 컬추럴 보더(멕시코 시티, 2012) 등의 갤러리와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그의 작업은 LA 해머 미술관(2023)을 비롯해 파리 팔레 드 도쿄(2023), 암스테르담 드 아펠(2023), 뉴욕 휘트니 미술관(2022), 국립현대미술관(2020), 뉴욕 PARTICIPATION INC(2019) 등 여러 국제적인 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바 있으며, 뉴욕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2021), 13회 광주 비엔날레(2021) 전시에도 출품되었다.
 
수상 이력으로는 CCF 비주얼 아티스트 펠로우쉽(2019), 레마 호트 만 재단 지원금(2018), 아트페이스 산 안토니오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2017)이 있으며, 그의 작업은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LA 게티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