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기간에 맞춰 많은 갤러리가 앞다투어 전시를 열었다. 소위 말하는 굵직한 작가들의 힘준 전시들이 대거 열린 만큼 볼거리가 많은 가운데, 국내 갤러리에서 열린 국내 작가의 주요 전시 3곳을 뽑아보았다.
| 갤러리현대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기하학적인 철 조각으로 잘 알려진 존 배(b.1937)는 재미 한인 작가로, 미국 예술계의 인정을 받은 1세대 한국 예술가 중 한 명이자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교수이다. 이번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운명의 조우” 전은 국내에서 10여 년 만에 열린 존 배의 개인전이며, 7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집약적으로 정리한 자리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만큼, 구상주의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1960년대 초기의 강철 조각을 비롯하여 연대기에 따른 철사 조각, 드로잉과 회화까지 다양한 작업들로 구성되었다.
존 배의 작업은 점과 선이 품는 움직임의 기류를 포착하여 서로 간의 관계와 작동 원리를 관찰하여 작품으로 발전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미리 완성된 모습을 생각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하고, 공간 속에 놓인 점과 선과의 대화를 통해 유기적 구조로 작품을 구축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작가가 예측 가능한 범위 밖의 형태를 띠며, 멈춰 있지만 동시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역설적 상태에 놓이게 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대표작 〈Involution〉(1974)은 연속적 변환에 대해 불변의 성질을 다루는 위상수학 중 뫼비우스의 띠에 매료되어 만든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하나하나 연결하며 대화한 결과 현재의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존 배의 작품 40여 점이 소개되었으며, 절반 이상이 판매된 상태이다. 다양한 작품들이 있는 만큼 최저 1억 원에서 최고 7억 원까지 폭넓은 가격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 PKM 갤러리 유영국 개인전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
한국의 1세대 추상화가인 유영국(1916~2002)의 개인전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가 PKM 갤러리에서 10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2년 작가 사후 이후 최초로 공개되는 21점의 소품을 포함하여 1950~1980년대 유화 작품 34점이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소개된다.
당시 유영국 작가가 그린 소품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크기가 작다 보니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구매하고자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유영국은 작품가는 그런 식으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며 작품을 판매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쭉 보관하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하게 된 것이다.
대형 작품을 많이 그리던 유영국이 소품을 작업한 이유에는, 다수의 작가들이 유영국에게 ‘큰 그림이 다 좋은 것이 아니며, 작은 크기에서도 작품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라고 한 것에 본인의 충분한 기량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소품이라도 대작과 다르지 않게 자연을 모티브로 선과 면, 색채의 조합이 고르게 녹아있으며, 밀도감과 아우라가 빼어남을 알 수 있다.
유영국의 대작이 주로 10억~15억 원 선을 호가하는 만큼, 소품이라고 해서 작품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 당시에 팔지 않았던 소품들이 유영국이 생전 말했던 것처럼 그 가치를 인정받아 꽤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컬렉터들 사이에서 소품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져 감에 따라 유영국과 같은 거장의 흔치 않은 소품은 더욱 귀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소품의 경우, 4호는 2억 7천만~2억 9천만 원대, 6호는 2억 8천만~3억 5천만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30호와 40호 크기의 작품은 7억 원 후반에서 8억 원 중반의 가격대이다. 이번 프리즈 기간에 힘입어 소품 3점이 2억 7천만 원에서 3억 5천만 사이에 판매되었으며, 프리즈에서는 100호 크기의 작품 한 점이 20억에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작가
사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유영국의 작품들은 2016년에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공동으로 개최되었다.
이후 2023년 미국 뉴욕 페이스 갤러리에서 유영국의 첫 해외 개인전이 시작되었으며,
최근 2024 베니스비엔날레 병행 전시로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열리는 유영국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이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꼭 봐야 할
최고의 전시’로 꼽혀 많은 관람객의 방문과 관심을 끌고 있다.
| 국제갤러리 함경아 개인전 “유령 그리고 지도”
함경아(b.1966)는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과 실천을 자신만의 언어로 작품 속에 녹여내는 작가이다. 특히 자신이 그린 작품 스케치를 북한의 수공예 노동자들에게 보내고 작업이 완성되어 돌아오길 기다리는 ‘자수 프로젝트’로 잘 알려져 있다.
11월 3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함경아의 개인전 “유령 그리고 지도”는 국제갤러리 내의 전시장 3곳을 사용하는 대형 전시이며, 최근 몇 년 간의 팬데믹과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으로 인해 유독 기약 없는 기다림이 발생했던 상황을 반영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Installation view of “Phantom and A Map” ©Kukje Gallery
K1 전시장에서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자수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특히 두 개의 자수 작품 사이에 긴 테이프를 줄줄이 설치하여 작가가 겪은 기나긴 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을 표현한 새로운 작품을 주목할 만하다.
Installation view of “Phantom and A Map” ©Kukje Gallery
한옥 공간에서는 작가가 팬데믹 기간 중 느낀 우울감과 절망감을 표현한 〈유령 그리고 지도 / 너는 사진으로 왔니 아니면 기차 타고 왔니?〉시리즈가 소개된다. 보통 작업 속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가 드물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시리즈는 당시 느꼈던 절망감을 천 위에 색깔 눈물이 흐른 것처럼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수가 많은 관계로 현재 절반 이하가 판매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30 x 30cm 크기의 작품은 시작가 4만 달러, 140 x 300cm 크기의 작품일 경우 14만 달러 정도의 가격대이다.
그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여러 줄의 가로로 긴 리본 테이프로 자수와 자수 사이를 연결하여 기다림의 시간을 형상화한 삼면화 작품의 경우, 약 14만 달러 정도의 가격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3관에서 선보이는 대형 신작은 11만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