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아(b. 1966)는 현실의 이면에 감춰진 시스템의 규칙과 금기에 도전하며 모순과 부조리의 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다. 작가는 회화,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자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러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구조와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미술 안팎으로 가로지르며 직접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거나 닿을 수 없는 국경 너머의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온 함경아의 작업은 그러한 노동직얍적 표현과 통제불가능한 과정의 변수가 응축된 형태로 드러난다.

함경아, 〈체이싱 옐로우〉, 2000-2001 ©국립현대미술관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작가는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면서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을 쫓아 그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작업 〈체이싱 옐로우〉를 작업했다. 총 8개의 채널에는 각기 다른 여덟 명의 삶을 담은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작가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노란색은 “어떤 관계를 시작하는 하나의 약속”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서로 다른 개인적인 삶의 모습들을 노란색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하여 보여줌으로써 그 안에 내포된 문화적, 제도적, 종교적 함의를 드러낸다.

함경아, 〈오데사의 계단〉, 2007 ©경기도미술관

한편, 2007년에 제작된 〈오데사의 계단〉은 군부독재정권의 마지막 수장인 한 전임 대통령의 집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버려진 가구나 자재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제단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거대한 계단 위에는 독재자의 집에서 나온 비데와 의자, 골프화, 카펫, 확성기, 타일, 쇼핑 카트 등의 잡동사니가 널려 있다.

Battleship Potemkin Poster ©Battleship Potemkin

제목인 ‘오데사의 계단’은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에서 러시아 혁명기 양민 학살 장면의 배경이 된 장소이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탄압을 받았던 역사적 사실이 영화 속 등장하는 정치적 탄압의 사건에 비유된다. 그리고 〈전함 포템킨〉이 몽타주 기법을 활용해 정치적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함경아의 〈오데사의 계단〉은 여러 물품들의 조합으로 전임 대통령의 사적인 영역과 한국 정치사에 있었던 비극의 역사를 편집하여 제시한다.

함경아, 〈뮤지엄 디스플레이〉, 2000-2010 ©아트선재센터

2000년부터 2010년까지 함경아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뮤지엄’을 통해 암암리에 용인되고 외면된 과거 거대 권력이 자행한 약탈과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 〈뮤지엄 디스플레이〉를 진행했다. 박물관의 전시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뮤지엄 디스플레이〉는 진열장 자체를 하나의 뮤지엄이자 그것의 표상으로 상정한다.

함경아, 〈뮤지엄 디스플레이〉, 2000-2010 ©아트선재센터

함경아는 박물관 카페나 상점 등에서 찻잔이나 접시, 숟가락 등의 소품들을 훔쳤고 그렇게 10년 간 모은 대규모 절도 장물 컬렉션을 마치 박물관 디스플레이처럼 진열해 놓음으로써, 기존 박물관에 내재된 권력과 물질을 향한 욕망의 인류사를 고발한다.
 
그리고 작가는 물건마다 절도의 일시와 장소를 기록한 라벨을 달아, 박물관과는 달리 자신의 절도에 대해 자백한다. 즉, 〈뮤지엄 디스플레이〉는 제국주의 시대의 약탈을 또 다른 범죄로 재연하여 이를 현재의 시점으로 소환하고 문화 제국주의의 현실과 이면을 드러내는 전략적인 작업이었다.

“함경아: 유령 발자국”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함경아의 대표작 ‘자수 프로젝트’는 2008년 어느 날 자신의 집 앞으로 날아든 북한의 체제 선전용 삐라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작가는 자신만의 삐라를 제작해 민간교류가 금지된 북한 주민들과 소통하고자, 인터넷에서 모은 전쟁과 테러에 대한 텍스트와 이미지들, 대중가요 가사 일부와 짧은 인사말로 자수 도안을 만들어 중국의 중개인을 통해 북한에 있는 자수공예가에게 보냈다.

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 / SMS Series in Camouflage / At First, it is the dark 01-001, 2013-2015,
North Korean hand embroidery, silk threads on cotton, middle man, anxiety, censorship, bribe, wooden frame, approx.,
1200hrs/ 2persons, 198 x 138 cm

예측 불가능한 여러 돌발변수와 위험성을 뚫고 북한 자수 공예자에게 전달된 도안은 대형 자수로 제작되고 다시 작가에 의해 작품화된다. 그렇게 완성된 대형 자수 작업의 화려한 색채와 미학적 완성도로 표현되는 예술적 아우라 이면에는 막대한 값어치의 재료, 노동력, 노동시간, 다사다난한 과정 등이 응축되어 있다.
 
2015년 국제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유령 발자국”에서 발표한 〈샹들리에〉 시리즈에서 함경아는 자수의 뒷면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보이지 않는 북한의 노동자들의 존재와 그들과의 협업 과정, 분단의 현실 등을 드러냈다. 부제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처럼, 헤아릴 수 없이 정교하고 세밀한 자수를 통해 우리와 단절된, 보이지 않는 존재와 현실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된다.

함경아, 〈악어강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 2016 ©국립현대미술관
함경아, 〈악어강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 2016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함경아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6” 전시에서 탈북민과의 협업을 통해 ‘탈북과 정착’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가령, 작가는 탈북 경비를 지원하고 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기록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국가대표 축구 선수를 꿈꾸는 탈북 소년을 퍼포머로 섭외하기도 했다.
 
그 중, 〈악어강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의 악어강을 건너 탈북을 감행했던 소년이 전시실에 조성된 미니 축구장에서 물감을 묻힌 축구공을 자유자재로 드리블한 퍼포먼스 흔적을 담고 있다.

함경아, 〈악어강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 2016 ©국립현대미술관

그 옆에는 소년의 탈북 여정이 담긴 인터뷰 영상과 함께 소년의 말에서 인용한 문구가 새겨진 축구화들이 설치되어 있다. 죽음을 감수한 소년의 꿈과 작가의 예술적 투행은 전시장 바닥과 벽에 화려한 색감과 추상적인 회화 형태처럼 직조되어 나타난다.
 
함경아는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이자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행위는 ‘유령 발자국’을 쫓는 여정이다. 북한의 노동자, 탈북민 등 거대 권력 아래에 억압되어 있는 모든 존재들은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실재하고, 작가는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그들을 찾아내며 소통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나의 작업의 실천 방식으로서 ‘도서관과 실험실’이라는 용어를 이야기하곤 했다. 말 그대로 도서관이란 역사와 문화, 인간과 시스템 모든 것들을 집대성한 곳이며, 넓고 근본적 의미로서 도서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다.
 
여기서 관찰된 사건들은 연금술사로서의 작가에 의해 다시 내던져지는데 이곳이 곧 실험의 장이다. 내게 있어서 관심사는 이 넓은 의미의 도서관에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그것이 단순한 개인적 사건이 아닐 수 있는 관계에 의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김종호, 류한승, 「함경아」,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 45명과의 인터뷰』, 다빈치 기프트, 2006, p. 245)

함경아 작가 ©국제갤러리

함경아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회화과 졸업 이후 뉴욕 SVA에서 석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초기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욕망과 마취”(아트선재센터, 서울, 2009), “어떤 게임”(쌈지 스페이스, 서울, 2008), “방안에 보이는 전경”(대안공간 루프, 서울, 1999) 등이 있있다.
 
최근에는 “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필라델피아 미술관, 2023, 미니애폴리스 미술관, 2024), “Hallyu! The Korean Wave”(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런던, 2023, 보스턴 현대미술관, 2024,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2025), “Active Threads”(아르테나 재단, 뒤셀도르프, 2021) 등에 참여했다.
 
또한 작가는 “올해의 작가상 2016”(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6), 제1회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트리엔날레(2020), 제10회 타이베이비엔날레(2016), 제4회 광저우트리엔날레(2012) 등 다양한 국내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