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이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2024년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판소리-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로 정했다.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이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2024년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판소리-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로 정했다.
부리오는 현대 미술계에 크게 공헌해 온 영향력 있는 인사이다. 큐레이터이자 미술 비평가인 부리오는 다양한 비평 용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읽어 냈다.
그중에서도 1998년에 내놓은 ‘관계 미학’은 1990년대 이후에 생산된 다양한 예술을 정의하는 이론으로서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현대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 후 2002년에는 ‘포스트프로덕션’, 2009년에는 ‘래디컨트’, 2016년에는 ‘엑스폼’ 등 다양한 용어를 내놨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는 왜 지금 이 시점에 부리오를 예술 감독으로 선임했을까? ‘관계 미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약 20년이 지난 지금, 광주비엔날레가 이제 와 부리오를 선택한 것은 뒤늦은 선택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전 세계의 동시대적 흐름을 광주에서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리고 부리오는 어떤 의미에서 ‘판소리’를 조명하는 것일까?
니콜라 부리오를 광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으로 선임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제시한 ‘관계 미학’ 개념이 바로 그 요인 중 하나이다. ‘관계 미학’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후반에 도입되었지만 그 영향력과 타당성은 현대 미술계에서 지속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계 미학을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관계를 미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즉,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고 유대감을 느끼며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세상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미술을 말한다.
부리오는 이 이론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수정하여 발전시켜 왔다.
부리오가 최근에 내놓은 책은 2020년에 출판된 “포용: 자본세의 미학”이다. 부리오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에 예술 활동이 담고 있는 의미를 설명한다. 그는 예술가들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인류학자라고 말한다. 예술가들은 자연과 인류 사이의 연결을 인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부리오는 오늘날 새로운 예술가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우주와 인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에 집중한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 예술을 다시 원시적 마법, 자본주의 시대 이전의 마녀, 주술사, 무당과 이어진다고 본다. 세상이 황폐해지고 있는 와중에도 예술은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정신적인 관심을 보존해 오고 있다. “포용: 자본세의 미학”은 그런 의미에서 비주류 미술계의 미술사를 탐구하고 단절된 연결을 다시 이어 붙이고자 한다.
비엔날레의 제목에 쓰인 ‘판소리’는 17세기 등장한 한국의 음악 형식으로, ‘공공장소의 소리’ 또는 ‘서민의 목소리’를 뜻한다. 그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광대가 평민을 대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가 원류라는 설이 있다.
판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판소리에는 서사 구조가 담겨 있으며, 고수(북 치는 사람)의 리듬 그리고 관객들의 호응이 동반된다. 즉, 판소리에서는 공간과 소리가 공명하여 이루어지는 관계성을 찾을 수 있다. 부리오는 코로나19 이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화두가 된 ‘공간’의 문제를 ‘판소리’라는 한국의 특수한 음악 형식을 활용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하겠다고 발표했다.
니콜라 부리오 예술 감독은 “공간은 집단과 개인 모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왜 공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부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 사막화, 해수면 상승 등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 동안 인류와 우주와의 관계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이제는 공간에 대한 우리의 변화된 감각과 인식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이번 전시의 방향은 인류세라는 전환의 시대에 지구상 공간을 어떻게 조직해야 할 것이며, 인간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정착을 하고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집단지성적인 화두를 던지는 비엔날레다운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