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핫 이슈는 올 해 3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를 맞이하여 그 동안의 성과를 총 2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1부에서는 광주비엔날레의 약사 및
성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2부에서는 광주비엔날레의 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창립 이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예술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기획되었으며, 프랑스 기획자인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예술감독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 전통 예술인
판소리를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 재해석하여, 소리와 공간을 중심으로 동시대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예술적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는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특별 기획으로 지난 30년 동안 이룬 성과와 직면한
과제를 요약하고, 특히, 앞으로 한국의 비엔날레가 세계적인
행사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하고자 합니다.
광주비엔날레 약사
광주비엔날레는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회적 메시지와
예술적 실험을
결합한 전시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아왔습니다. 이
비엔날레는 한국의 민주화 정신을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며, 이를
국제 미술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행사를
소개하기에는 지면에 한계가 있으므로 광주비엔날레의 특징이 비교적 잘 드러난 행사를 필자가 임의로 선택하여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1회 (1995년) - 임영방 (Lim Young-bang): ‘경계를 넘어’
임영방 조직위원장의 지휘 아래 개최된 첫 번째 광주비엔날레는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로, 국가, 민족, 이념, 종교 등을 초월하여 세계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아쉽게도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에는 초기 행사와 전시들에 대한 자료들이 거의 없고 그 내용도 매우 부실한 상황에 대해서 아쉬운 마음을 표합니다.
본전시는 세계를 7개권역으로 나누어 50개국 92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크쵸(쿠바)의 ‘잊어버리기 위하여’가
대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행사에는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에
의하면 이용우 전시기획실장과 함께 국내 기획자로는 미술평론가이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한 오광수 등과, 한국미술사가이자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Yoo Hong-jun) 과 전 모마의 부관장을 지냈던 캐시 할브라히(Kathy Halbreich), 안다 로텐버그(Anda Rottenburg),
쟝 드 루이지(Jean de Loisy), 클라이브 아담스 (Clive Adams)와 같은 해외 큐레이터들이 기획자로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나열한 외에 자세한 전시내용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홈페이지에 공식기록이 없어 더 이상 서술하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임영방(Lim Young-bang, 1929–2015)은 한국의 저명한 서양미술사학자로서,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국제화를 이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공공건물 벽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한 그는 광주비엔날레의 초대 조직위원장(1995년)을
맡아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미술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서양미술전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 중세미술의 도상, 바로크 등이
있으며, 미술 이론과 교육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1996년 프랑스 일급 문화예술훈장을 수여받았고, 2006년에는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받으며 한국 미술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제7회 (2008년) - 오쿠이 엔위저 (Okwui Enwezor): ‘연례보고’
오쿠이 엔위저는 ‘연례보고’라는 주제로, 현대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기록하고 반영하는 예술의 역할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예술이 현실 세계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제 7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면(2008) ⓒ티스토리
오쿠이 엔위저(1963-2019)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큐레이터로, 세계적으로 중요한 전시인 베니스 비엔날레(2015)와 카셀도큐멘타(2002)를 기획하며, 비서구권 예술을 글로벌 무대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 미술관 관장을 역임했습니다.
제8회 (2010년) -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Massimiliano Gioni): ‘만인보’
2010 광주비엔날레 전시장면 ⓒ연합뉴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만인보’라는 주제로 개인의 삶과 경험을 다루며, 이를 통해 한국적 주제를 국제적으로 연결하고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시는 개인의 서사와 글로벌 이슈를 예술로 풀어내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되었습니다.
‘만인보(Maninbo)’는 한국의 저명한 시인 고은의 기념비적인 문학 프로젝트로, 총 3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고은이 한국전쟁과 감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만났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각 권에는 수많은 시들이 담겨 있으며, 각각의 시는 다른 개인에게 헌정된 것으로, 대개 평범한 사람들의 고난, 감정, 투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좌)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총감독 ⓒ연합뉴스 /(우)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 이데사 헨델레스의〈파트너〉를 들고 있다. ⓒ뉴시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는 뉴욕의 뉴뮤지엄(New Museum)의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으로 재직 중이며, 이탈리아
밀라노의 니콜라 트루사르디 재단(Nicola Trussardi Foundation)의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으며, 또한,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함께 더 롱갤러리(The Wrong Gallery)를
공동 운영하며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갤러리는 뉴욕의 독립 미술
공간으로서, 풍자적이고 도발적인 전시들로 주목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The Wrong Times"와
"Charley" 같은 독립 예술 잡지를 함께 운영하며 국제 미술계에서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제10회 (2014년) - 제시카 모건 (Jessica Morgan): ‘터전을 불태우라’
제시카 모건은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주제로 기존의 제도와 관습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적 생성을 탐구하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출품작의 90% 이상이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 소개되는 신작이었으며, 이는 현대
사회의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혁신적 전시로 평가되었습니다.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은 2015년부터 뉴욕의 디아 아트 재단(Dia Art Foundation)의 디렉터로 재직 중이며, 이 재단에서
주요 예술 프로젝트와 컬렉션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전에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2010년부터는 국제 미술 큐레이터로 테이트의 글로벌
컬렉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11회 (2016년) - 마리아 린드 (Maria Lind): ‘제8기후대’
마리아 린드 (Maria Lind)는 1966년 스웨덴 출생으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교육자입니다. 그녀는 현대 미술과 관련된 여러 기관에서 중요한역할을 해왔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3전시실에-설치된 빅반데폴(Bik-van-der-Pol)의 작품에서 오월 어머니들이 요가하는 장면) ⓒ광주비엔날레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스톡홀름의 텐스타 콘스탈(Tensta Konsthall)의 디렉터로 재직했으며, 2016년에는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을 맡아 '제8기후대'라는 주제로 기후 변화와 예술의 상호작용을 탐구했습니다.
그녀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주러 스웨덴 대사관의
문화 담당 참사관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스웨덴 노르보텐 현대미술관(Konstmuseet
i Norr)의 디렉터로 재직 중입니다. 또한, 오슬로
예술 아카데미와 같은 여러 교육 기관에서 교수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14회 (2023년) - 이숙경 (Sook-Kyung Lee):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세상에서는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라는 의미의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차용했습니다. 즉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가진 물을 은유이자 원동력, 방법으로 삼고 이를 통해 지구를 저항, 공존, 연대와 돌봄의 장소로 상상하고자 합니다.
이숙경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
주제의 배경에 대해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이질성과 모순을 수용하는 물의 속성에 주목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에 깊이 침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에 나름의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의 가치를 탐구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적 이슈를 하나의 ‘엉킴(entanglement)’으로 보고,
지구와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문제가 필요로 하는 공통된 행성적 관점에 주목하여 우리가 당면한 위기와 그에 상응하는 예술적 실천에
접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숙경(Sook-Kyung Lee)은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하여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국제
미술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2023년 8월부터는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Whitworth Art Gallery의 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직
전에는, 2019년부터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을
이끌며 글로벌 예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탐구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했습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을 하루 앞둔 5일 광주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프레스 오픈에서 엄정순 작품 ‘코 없는 코끼리’가 소개되고 있다. ⓒ광주매일신문
제15회 (2024년) -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판소리: 모두의 울림’
이번 2024년 비엔날레의 주제 ‘판소리: 모두의 울림’은 한국 전통 판소리의 ‘판(공간)’과 ‘소리’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시도로, 사회적 거리두기, 분리, 분쟁 등의 동시대적 이슈를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니콜라 부리오는 한국 전통
예술인 판소리를 통해
전통과 현대, 한국과
글로벌의 연결
고리를 제시하며, 판소리의 동시대적 해석을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니콜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는 1965년 프랑스 출신의 큐레이터이자
이론가로, 동시대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를 공동 설립하고 공동 디렉터로 활동하며, 동시대미술의
새로운 전시 형식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관계적 미학(Relational Aesthetics) 개념을 발전시켜 1990년대
이후 현대 미술 담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이론은 현대 미술이 관객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며, 미술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부리오는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서 Gulbenkian Contemporary Art
큐레이터로 재직한 바 있으며, 2009년
Altermodern이라는 주제로 테이트 트리엔날레를 기획했습니다. 또한, 그는 에꼴 나시오날 수페리외르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디렉터로 일하며 미술 교육에 기여했습니다.
현재 니콜라 부리오는 컨템포래인(MoCo)의 디렉터로, 이 기관은
La Panacée와 몽펠리에 미술학교, 그리고 현대미술관을 아우르는 복합 예술 기관입니다. 또한, 그는 다양한 국제 비엔날레와 전시를 기획해 왔으며, 타이페이 비엔날레(2014)에서도 예술감독을 역임하였습니다.
광주비엔날레의 성과
이와같이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삼십년 동안 한국 동시대 미술의 국제화와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매회 국제적으로
지명도 있는 국내외 큐레이터들이 참여하여 설치 미술, 퍼포먼스, 영상
작품 등 여러 동시대 미술 형식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이슈를 다루어 왔습니다. 이를 통해 현대 미술의 다양한 경향을 선보이는 동시에, 예술적 혁신을 추구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광주비엔날레는 한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메시지를 국제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며, 한국 작가들의 글로벌 무대 진출을
촉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과 현대적 이슈를 결합한 예술적 시도가 국제 미술계에서도 주목받으며, 2014년 인터넷 미술매체 아트넷(Artnet)은 ‘세계 20대 비엔날레'에서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미국 뉴욕의 휘트니 비엔날레, 유럽의 순회비엔날레인 마니페스타와
함께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선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비엔날레들은
점점 더 새로운 실험이나 혁신을 보여주기보다는, 비슷한 형식과 포맷이 반복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에 비해 비엔날레가 지녔던 영향력과 파급효과는 다소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열리는 다양한 비엔날레들은 대중과의 소통이 약화되면서 미술계 내부에서만 소비되는 행사로 머무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다가가기보다는 특정한 예술적 담론에만 집중하거나 지나치게 전문화된 내용으로
채워져,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제기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광주비엔날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비엔날레들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한국 비엔날레의 근본적인
형식을 돌아보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과거의 성공적인 사례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전시 형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비엔날레가 지역사회와의 더 깊은 연계를
통해 단순히 전시회를 넘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이 단순히 미술계
내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객층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일상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부에 계속)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