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숙(b. 1977)은 이주, 이동, 공동체를 주제로 공감각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해 왔다. 작가는 자신의 위치와 존재에 관한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전시, 퍼포먼스, 공연 등 다학제적인 방법론으로써 펼쳐왔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공동체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개개인의 지극한 평범한 삶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최찬숙, 〈1218〉, 2007 ©더스트림

최찬숙은 2001년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로 현재까지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오랜 이주 생활을 이어왔다. 유목민처럼 떠도는 여성 이주자로서 늘 물리적, 정신적 경계에 서있었던 작가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써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자연스레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나’에 대한 여정은 과거와 현재 자신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 가운데 관계를 맺고 있었던 존재들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령, 작가에게 제일 가까운 타인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룬 〈1218〉(2007)은 어머니의 기일인 12월 18일을 죽음에 관한 공통적 코드로 삼아 상징적인 언어로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18개의 함축적 문장이 들어간 12통의 편지를 두 명의 무용수에게 각각 보내 이를 토대로 안무를 요청하여 각기 다른 세트에서 두 무용수의 몸짓을 촬영한 후, 이를 한 화면에 투사했다.

최찬숙, 〈Private Collection〉, 2010 ©박건희문화재단

한편 2010년에 발표한 퍼포먼스 작업 〈Private Collection〉은 일종의 퍼포먼스 아카이브로, 당시 작가가 거주했던 문래동이라는 지역에 살던 노인들의 서사를 토대로 한다. 이 작업은 문래지역 거주 노인들의 얼굴과 인터뷰를 담은 비디오영상과 이들의 얼굴이 투영된 종이봉투, 비닐 등의 오브제 그리고 무대에서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몸짓으로 이루어진다.

무언가를 옮기거나 담기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비닐봉투에 노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담아서 영상을 투사하고, 이와 함께 무용수들의 몸짓과 비닐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어우러지게 된다. 이러한 공감각적인 현장 안에서 관객들은 노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삶의 흔적과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최찬숙, 〈Private Collection〉, 2010 ©박건희문화재단

노인들의 기억은 〈Private Collection〉이라는 무대 위에 다양한 감각적 장치들을 통해 현재화되어 되살아난다. 최찬숙은 “전시장은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펼쳐주는 장이고 나는 이 장 속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이들의 기억을 무대에 올리는 대장이다”라고 말하며, 이를 ‘서사학적(narratology) 실험’이라 설명한다.

최찬숙, 〈약속의 땅〉, 2014 ©박건희문화재단

2014년에 선보인 〈약속의 땅〉은 작가의 이주 경험 속에서 형성된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된 작업으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 둘 사이의 간극에 대해 풀어나간다.

〈약속의 땅〉은 유럽 최대 실내 워터파크인 트로피칼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상에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의 쇼룸 아우토슈타트에서 나오는 투어용 오디오가이드를 입힌 작업이다. 오디오에서는 자신들의 이동기술에 대한 완벽함을 강조하는 데서 나아가 이러한 기술적 진보를 통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흘러나온다.  

이러한 음성은 평범한 개인들의 일상을 비추는 영상과 합쳐지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사회가 과연 이처럼 환상적이고 낙관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이러한 이동기술의 발전은 물리적 신체의 이주를 더욱 원활하고 자유롭게 할 수는 있으나 본질적 이주, 즉 정신적 차원에서의 이주를 반드시 수반하지는 않는다.

“최찬숙 개인전: 정신적 이주에 관한 보고서 파트 1, 이동기술 편” 전시 전경(대안공간 루프, 2015) ©대안공간 루프

나아가 작가는 2015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정신적 이주와 연관된 첨단기술 광유전학을 끌어왔다. 이는 빛과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뇌의 활동을 조절하여 화학적인 방식으로 정신적 이주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다.

작가는 첨단이동기술의 상징인 아우토슈타트와 광유전학이라는 미래 기술의 모습을 작업으로 풀어내어 전시장 안에 하나의 이미지 프로그램 옵토로돕신(Opto-rhodopshin; 눈을 통해 수용되는 빛 미립자의 전기 자극으로 기억을 이식할 수 있는 가상 장치)을 구축했다.

전시장 안에서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를 상징하는 두 기술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관객에게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을 던져준다. 이는 마치 물리적/정신적 이주자들이 겪을법한 불편한 상황을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전이시킨다.

최찬숙, 〈FOR GOTT EN〉, 2010-현재, “Re-move” 전시 전경(베를린 그림미술관, 2016). ©Grimmuseum

최찬숙은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불안정한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해, 2010년부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데올로기라는 거대서사에 의해 밀려나고 이주해온 독일, 일본, 한국 출신의 여성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기억을 듣고 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리-무브〉(2017) 프로젝트는 자신과 비슷한 이주의 삶을 산 일본인 친할머니의 자취를 따라 나선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이주 여성들의 삶의 흔적과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한국인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난 일본인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철원 DMZ에 위치한 남한의 선전용 마을 양지리의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의 경로를 직접 따라가 보고 그들과 같은 땅을 밟으며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남겼다.

최찬숙, 〈양지리 아카이브〉, 2016, “Re-move” 전시 전경(베를린 그림미술관, 2016) ©Grimmuseum.

가령, 〈양지리 아카이브〉(2016)는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자 대북 선전용 마을 양지리에 거주하는 노인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최찬숙은 이때 이주자들의 정체성이 확장된 영역이자 영토로서의 양지리를 재구성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작가는 40년 전 이주자들에게 주어진 9평 남짓한 오래된 집에 방문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긴 세월 동안 살기 위해 늘리고 고치고 가꿔온 그들의 집이 바로 그들의 물질화된 정체성이자 서사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찬숙은 이를 발굴된 유물에서 수집된 기억을 다루듯이 사진, 모형 집과 모래 조형물을 통해 재현하고 기록했다.

최찬숙, 〈밋찌나〉, 2019-2021, “조각난 기억들의 그물” 전시 전경(대만관두미술관, 2022) ©대만관두미술관

한편 2016년에 발표한 극장 기반의 작품 〈변칙 판타지〉는 여성국극의 ‘쇠퇴 이후에 남겨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가 직접 극작과 연출을 맡은 이 작업은 여성국극의 마지막 세대 남역배우인 남은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변칙 판타지〉는 여성국극에 매료된 남은진이 배우가 되는 과정을 통해 무대의 판타지를 다룬다. 배우의 길을 택했지만 여성국극이 쇠락한 지금, 남은진에게 있어서 여성국극이란 일종의 판타지로서 존재했다. 이러한 마지막 세대 남역배우의 서사와 함께, 게이남성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합창단 지보이스(G-Voice)가 등장하며 마땅한 자리를 갖지 못한 또 다른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최찬숙, 〈밋찌나〉, 2019 ©더 스트림

세 명의 밋찌나는 위안부 사안에 대해 각각 제국주의, 가부장적 민족주의, 페미니즘의 헤게모니적 관점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반박하며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헤게모니들만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에 관한 기존의 논의와 연구를 재현한다.

이와 함께 작가는 말하지 않은 침묵 속에 어떠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상상했다. 증언 없이 실재하는 존재들에 대한 상상된 기억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적 증언이 되는 내용이 아닌 밋찌나라는 장소에서의 사소한 감각의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작가는 ‘밋찌나’라는 존재들을 어떠한 헤게모니로 포획되거나 재현되는 ‘대상’이 아닌 다양한 순간 속에서 다양한 형상으로 살아있었던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드러낸다.

최찬숙, 〈큐빗 투 아담〉, 2021, “올해의 작가상 2021”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1) ©국립현대미술관

최찬숙은 양지리에서 호주제와 정치적 사건으로 토지 소유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을 만난 뒤로 땅에 대한 소유에 얽힌 권력관계, 그리고 소유의 이면에 땅에서 쫓겨나고 밀려난 존재들에 관해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올해의 작가상에서 선보인 〈큐빗 투 아담〉에서 이러한 땅과 몸 그리고 소유에 대한 작가의 오랜 성찰이 집대성되어 나타난다.

〈큐빗 투 아담〉은 “땅이 언제부터 인간의 지배와 소유의 대상이 되었는가?”라는 의문을 소유의 흔적으로 얼룩진 곳에 남겨진 표지들을 찾아가며 풀어나가는 작업이다. 영상은 1899년 칠레의 추키카마타의 광산에서 발굴된, 땅속에서 서서히 몸에 스며든 구리 때문에 녹색 빛을 띄게 된 미라 ‘코퍼맨(Copper Man)’과 함께 시작된다.

최찬숙, 〈큐빗 투 아담〉, 2021, “올해의 작가상 2021”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1) ©국립현대미술관

이어서 영상은 과거 광산 채굴부터 오늘날 가상화폐를 위한 채굴에 이르는 인간의 노동과 물질 소유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뒤얽히며 전개된다. 이때 구리빛의 전시장 바닥은 영상을 반사하며 그 위에 서 있는 관객의 몸과 땅을 연결시킨다. 이는 땅과 몸이 뒤얽힌 존재인 코퍼맨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작업은 결국 땅도 또 하나의 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있다. 인간과 직접 접촉하며 관계를 맺어 온 유한하고 거대한 지구의 몸으로서의 땅은 태초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었으나 자본가의 소유지가 되고 오늘날은 데이터로 변환되어 소유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러한 소유의 역사에서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그리하여 그 권력에 틈을 내는 땅, 몸, 데이터의 관계에 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최찬숙, 〈더 텀블〉, 2024 ©백남준아트센터

이처럼 최찬숙은 이주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해 자신과 같이 밀려난 사람들과 남겨진 이야기들, 그리고 이를 이루고 있는 땅과 몸에 대하여 이야기해오고 있다. 최찬숙은 정형화된 거대서사로 완전히 묶이거나 재현될 수 없는, 이로부터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인간/비인간 존재들과 접촉해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 가며 유동적이고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주자가 창조하는 혼종적 정체성은 인간적 세계관 및 비인간적 세계관과 긴밀히 결부된다. 오늘날의 이주는 정착할 수 없이 장소에서 장소로 떠돌고, 공기 중에 부유하며, 정착하고 소유하는 그와 같은 경험을 수반한다.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변위, 그리고 이와 같은 변위를 위한 기층으로서의 대지는 포괄적이고 유기적인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최찬숙, 작가노트, “Sirene – Goldrausch 2020” 전시 카탈로그 인용)


최찬숙 작가 ©백남준아트센터

최찬숙은 베를린 예술 대학교 (University der Künste in Berlin)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아트를 복수 전공하고, 마이스터 과정을 졸업하였다. 있다. 훔볼트 포럼 베를린(2017),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스페이스 (2017), 타이베이 디지털아트센터(2020)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신진 작가지원 프로그램(2017), 현대자동차 VH AWARD(2019), 독일연방 Kunstfond 재단 시각예술지원상 (2021) 등을 수상하였다.

다학제적 방법론을 통해 전시, 렉쳐, 공연 및 출판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들을 서울 국립극장 국가브랜드 공연, 아르스일렉트로니카, 볼스부어그 미술관, 베를린상공회의소 등에서 펼쳐왔으며,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과 SBS가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