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은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신뢰’를 강조한다. 2023년 스위스 아트 바젤에 참가한 국제갤러리와 갤러리현대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미술 시장에서 신뢰를 쌓았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트 페어 ‘아트 바젤 인 바젤 2023’이 6월 15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되었다.
페어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현대 미술 플랫폼인 아트시(Artsy)에 따르면, 참가 갤러리 다수가 기존 작가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으로 보아, 페어는 불확실한 시기에 검증된 이름과 안전한 프로그램을 고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 제한이 완전히 해제된 이후 바젤에서 열린 첫 번째 대면 아트 바젤은 판매 호조를 보이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대표적으로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대표작 ‘거미 4′(1996)를 2,250만 달러(약 297억 원)에 판매했으며, 다른 갤러리들도 잭 휘튼(Jack Whitten), 조지 콘도(George Condo),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바바라 체이스-리부드(Barbara Chase-Riboud)의 주요 작품을 판매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 메인 부문인 ‘갤러리즈(Galleries)’ 섹터에는 36개국에서 온 284개 갤러리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와 갤러리현대가 페어에 참가했다. 갤러리현대는 15여 년 만에 스위스 아트 바젤에 재입성했다.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는 국내외 작가들을 아트 바젤 부스에서 선보였다. 국제갤러리는 첫날인 VIP 프리뷰부터 이우환 작가의 회화를 70만 달러(9억 원), 박서보 작품을 50만 달러(6억 4,000만 원), 하종현 작가의 작품을 24만 달러(3억 6,000만 원)에 판매하는 결과를 보였다.
해외 작가로는 미국 작가인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인도계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미국 현대 미술가 로니 혼(Ronnie Horne), 프랑스의 유리구슬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등을 선보였다.
국제갤러리는 이번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 최근 조명되고 있거나 단색화 다음으로 등장한 차세대 한국 작가들의 작품 다수 선보였다.
국제갤러리는 파이프 형상으로 기하학적 추상을 선도했던 이승조 작가의 ‘핵'(1974), 최욱경 작가의 추상 회화 ‘Untitled'(연도 미상), 북한 자수 공예가들이 새긴 결과물을 돌려받는 작업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분단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자수 회화 연작인 함양아 작가의 ‘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SMS Series in Camouflage/Are you lonely, too? K 03-01-02′(2018-2019), 코발트 남색과 은색 방울로 구성된 양혜규 작가의 신작 ‘소리 나는 물방울 – 코발트'(2023)를 소개했다.
국제갤러리는 국내외 주요 전시에 소개되어 온 최욱경 작가의 작업을 프리즈 서울 개최 시기에 맞춰 조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작품들은 파리 퐁피두 센터와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서 개최된 “Women in Abstraction”전(2021-2022),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전(2021-2022),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Action, Gesture, Paint: Women Artists and Global Abstraction 1940-70”전(2023)에 출품된 바 있다.
갤러리현대
15년 만에 스위스 아트 바젤에 참가한 갤러리현대는 ‘갤러리즈’, ‘언리미티드’, ‘필름’ 섹터에 참가했다. 특히 메인 부문인 ‘갤러리즈’ 섹터에 이우환과 박영숙 작가의 2인전을 소개해 아트시(Artsy)의 ‘베스트 부스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갤러리현대 부스에서는 이우환 작가의 신작 ‘Response’ 회화와 ‘Dialogue’ 연작 그리고 이우환과 박영숙 작가가 협업해 완성한 대형 세라믹 도자 등을 선보였다. 아트시는 전 세계적으로 작품 세계가 잘 알려진 대가인 이우환 작가의 실험적 시도, 그리고 절제미가 보이는 박영숙 작가의 대형 도자기 작품과 두 작가의 협업에 대해서 언급했다.
갤러리현대는 한국 작가를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갤러리로서 정체성을 다져 왔으며, 특히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를 집중 조명해 왔다. 도형태 대표는 “이우환과 박영숙 2인전으로만 꾸린 갤러리현대 부스에서 한국 현대 미술의 다양성과 저력을 국제 무대에 알렸다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하며 “한국 작가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늘 우리의 목표”라고 전했다.
대형 설치 작품을 소개하는 ‘언리미티드’ 섹터에서는 문경원 작가와 전준호 작가의 최근 영상 설치작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News from Nowhere: Eclipse)’(2022-2023)가 소개되었다. 새로운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 ‘필름’ 섹터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2022)가 바젤 시립영화관에서 상영되었으며, 작가가 참가하는 Q&A 세션도 진행되었다.
김아영 작가는 아트 바젤이 진행 중인 16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규모 미디어아트 어워드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Golden Nica)를 받기도 했다. 또한 바젤에 소재한 미술관인 하우스오브일렉트로닉아트바젤(HEK, House of Electronic Arts Basel)에서 그룹전 “Collective Worldbuilding – Kunst im Metaversum”에 ‘수리솔 수중 연구소 가이드 투어’(2022)를 출품하여 8월 13일까지 전시를 꾸릴 예정이다.
갤러리현대는 현대화랑 당시에 설립한 케이옥션 때문에 갤러리 및 경매 겸업 문제가 제기되면서 아트 바젤에서 개최하는 페어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와 비슷하게 가나아트도 서울옥션을 두고 있어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지 못했던 바 있다.
갤러리현대와 케이옥션은 2018년 계열 분리되면서 지금은 지분이나 사업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갤러리현대는 아트 바젤에 참여하기 위하여 다른 국제 아트 페어에 참여하면서 해외 미술관에 이들을 알리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 왔다. 그 결과 2021년 12월에 열린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이번에는 바젤로 올 수 있었다.
갤러리현대가 그동안 아트 바젤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아트 바젤의 참가 기준에 벗어났기 때문이다. 아트 바젤은 작품의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뢰를 꼽는다.
그런데 과거 갤러리현대의 경우처럼 갤러리와 경매사가 겸업하게 되면 미술품의 가격을 임의 조정할 가능성이 생기며 미술품이 시장에서 거래될 때 필수적인 신뢰를 깨트리게 된다. 갤러리와 경매는 서로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면서 시장에서 미술품의 적정한 가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아트 바젤에서 제시하는 참여 갤러리 가이드라인과 프로토콜은 신뢰를 기본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다. 즉, 참여 갤러리들은 행사 기간뿐만 아니라 이의 활동을 통해 꾸준히 신뢰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하며 아트 바젤은 이를 바탕으로 갤러리를 선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트 바젤은 갤러리와 소속 작가 및 관련자들이 재정적 법적 책임을 다하는지, 작품의 출처와 진위를 명확하게 밝히는지, 소유자로부터 판매 권한을 부여받은 작품만 판매하는지 또는 소유자가 승인한 조건으로만 판매하는지, 구매자에게 작품의 설명과 이미지, 작가의 신원, 작품의 크기와 매체, 판매 가격, 구매자의 신원 및 해당 거래와 관련된 기타 관례적인 정보가 포함된 서면 송장을 제공하는지, 적절한 거래 및 회계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지, 사업이 이뤄지는 국가 또는 국가의 모든 관련 법률을 준수하는지 등에 대한 조건을 명시하여 갤러리를 선정하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아트 페어를 꾸리기 위해 아트 바젤이 설정한 기준은 다른 아트 페어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