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Kim Yun Shin ©Kukje Gallery and Lehmann Maupin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b.1935)이 리만머핀, 국제갤러리와 공동으로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작가의 국제 무대 진출을 위한 통로와 지지기반 구축에 힘써온 국제갤러리, 그리고 전 세계 4개의 도시에서 각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온 리만머핀이 전 세계 미술계에 김윤신을 활발히 알리는 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김윤신 작가가 상업 갤러리와 손잡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국제갤러리는 지난 10월 프리즈 런던에서 김윤신의 조각 작업을 처음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작가의 작업세계를 주 활동 무대였던 남미를 넘어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그런 점에서 오는 3월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은 지난 60여 년 동안 나무와 돌 등의 자연재료를 활용, 각 재료가 지닌 본래의 속성을 온전히 강조해온 김윤신의 작업세계 전반을 국내외 관객들에게 본격 알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리만머핀은 오는 2월 열리는 프리즈 LA 리만머핀 부스에서 김윤신의 작업을 처음 선 보인 뒤 3월 뉴욕 갤러리의 “인 포커스(In Focus)” 전시를 통해 현지 관객에게 작가의 작업을 소개할 예정이다.
김윤신 작가는 생애 처음으로 중요한 상업 갤러리와 협업하게 된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2023년은 나의 60여 년 예술 생애에서 큰 변화를 겪은 해였다. 40여 년간 아르헨티나에서 작업을 한 것은 나의 의지에 따른 결정이었고, 2022년 구순이 되어가는 나이에 마지막 고국 방문을 계획하며 한국을 찾았다.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준비했다는 듯 반갑게 맞아주며 자리를 내어준 친지, 후배, 제자들 덕에 늘 어려움 없이 쉬지 않고 작업을 하고, 한국에서 전시도 할 수 있었다.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초대전을 통해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회장님과 리만머핀 갤러리의 라쉘 리만 대표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 갤러리에서 나의 예술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고국의 여러분들이 따뜻한 눈으로 보아주시니 남아 있는 힘을 다해 작품으로 보답하겠다.”
김윤신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지금의 북한 원산에서 태어났다.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수학했다. 이후 1969년 귀국한 작가는 약 10여 년간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74년에는 한국여류조각가회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후배 조각가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1983년 조카가 이민 가 있던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떠난 김윤신은 그곳에서 야생의 자연과 탁 트인 대지,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 지역의 굵고 단단한 나무에 매료되어 그 다음 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를 결심했다.
이를 거점으로 활동해오던 김윤신은 이후 멕시코와 브라질에서도 머물며 오닉스와 준보석 등 혹독한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연구를 이어 나갔다. 200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윤신미술관(Museo Kim Yun Shin)을 개관했으며,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8년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 김윤신의 상설전시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작가는 2023년 초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국내 첫 국·공립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를 통해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김윤신은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작업세계를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주제로 포괄하고, 각각의 조각 작품 역시 같은 제목으로 일관되게 칭하고 있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라는 뜻을 지닌 이 연작은 나무에 자신의 정신을 더하고 공간을 나누어 가며 온전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조각의 과정을 상징한다. 특히 각 나무의 고유한 뼈대와 결에서 생명력을 포착하는 작가는 “폭력이 아닌 마음과 영혼을 다해” 재료를 조심스레 깎아내고, 이로써 껍질이 붙은 채로 속살을 드러내는 조각을 완성한다.
작가는 조각 뿐 아니라 회화 작업에도 매진하는데, 캔버스에 자연을 관조의 대상이 아닌 합일의 주체로서 바라보는 특유의 예술철학을 일관되게 담아낸다. 아르헨티나의 대지가 지닌 뜨거운 생명력에 영감 받아 제작한 〈내 영혼의 노래〉와 〈원초적 생명력〉 연작 등은 영원한 삶의 나눔, 그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한 생명력의 본질을 다양한 색상 및 파장의 선과 자유분방한 면으로 표현한다. 한편 얇게 쪼갠 나무 조각에 물감을 묻혀 선을 하나하나 찍어낸 〈지금 이 순간〉 연작은 찰나와 시간, 속도감을 전하며 생태에 대한 근원적 감각을 일깨운다. 이러한 재료에 대한 존중과 매체에 열린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김윤신은 지금도 생을 관통하는 작업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