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b. 1970)은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시각예술가로, 설치, 드로잉, 사운드, 텍스트 및 다양한 매체를 다뤄왔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온 김윤철의 작품은 물질의 잠재적 성향을 드러내어 또 다른 실재에 대한 상상과 창조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그리고 그는 수학, 과학, 기술, 음악, 철학, 문학, 우주론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작업에 접목하여 비인간적인 물질을 포함한 사물들 사이의 유동적인 만남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드러냄으로써 물질적 얽힘의 우주를 예술의 형태로 풀어낸다.


김윤철, 〈Self_portrait.jpg〉, 2003 ©김윤철

김윤철은 한국에서 전자음악을 전공하고 독일로 넘어가 미디어아트를 수학했다. 작업 초기 작가는 주로 사운드 아트, 프로젝션을 통한 미디어 아트, 제너레이티브 아트 등 비물질적인 작업을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타지에서의 생활을 해오던 어느 날, 작가는 전원 버튼 하나로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컴퓨터 작업이 문득 허무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이내 손에 잡히는 물질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작업을 하기로 한 작가는 〈Self_portrait.jpg〉(2003)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언뜻 추상화처럼 보이는 〈Self_portrait.jpg〉는 김윤철 자신의 얼굴 이미지를 디지털 정보로 치환하여 만들어진 약 14만자의 코드를 3달 내내 종이 위에 필사하는 반복적인 노동이 집약된 작업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작업이 비물질에서 물질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에 위치한다. 당시 작가는 손의 온도, 날씨 등에 환경에 따라 매일 변화하는 종이의 상태와 피로와 같은 신체적인 반응을 통해 물질성과 시간성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향후 그의 작업에 주요한 요소가 된다.

김윤철, 〈Epiphora〉, 2009 ©김윤철

2009년 김윤철은 물, 즉 액체의 물성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한 〈Epiphora〉을 선보였다. 이는 투명한 액체로 둘러싸인 검은 자성 유체가 신체 장기처럼 연결된 기계 장치를 통해 맥동하고 순환하며 서로 반응하도록 하는 키네틱 설치 작업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작가는 유체역학과 전자기장치 등을 포함한 작품을 발전시켜 오게 된다.


김윤철, 〈Effulge〉, 2012-2014 ©김윤철

작가는 2010년 독일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Kunstlerhaus Bethanie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예술만 아니라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작업 세계를 확장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윤철은 직접 고안한 황금색 광결정을 압력에 의해 움직이도록 하는 유체역학 설치 작업 〈Effulge〉(2012-2014)를 제작하게 되었으며, 2016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과학과 예술의 창조적 융합에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콜라이드 국제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김윤철, 〈Argos〉, 2018 ©김윤철

2018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Impulse〉와 〈Argos〉는 기술적 확장을 보여준 동시에 물질과 인간, 즉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다.

〈Argos〉는 41개의 채널로 구성된 뮤온 입자 검출기로, 우주에서 방출되는 뮤온 입자가 공기 층에서 검출될 때마다 플래시를 터트리며 반응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Impulse〉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나뭇가지가 늘어진 형태의 수많은 실린더 관들 사이로 투명한 액체가 흐르는 작품인 〈Impulse〉는 〈Argos〉가 입자를 검출할 때마다 신호를 받으며 내부의 액체를 이동시킨다.

김윤철, 〈Impulse〉, 2018 ©김윤철

이때 인간인 관객은 두 기계 사이의 유기적이고 능동적인 상호작용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창조 과정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사물들의 우주 안에서 인간은 그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망 속 또 하나의 동등한 행위자로서 위치하게 된다.

김윤철, 〈Coptic Light〉, 2019 ©바라캇 컨템포러리

한편 〈Coptic Light〉(2019)는 하이드로젤이라는 수용성 젤라틴의 분자 구조를 활용한 평면 기계 작업이다. 이 작업은 하이드로젤에 엄청난 압력을 가해 분자 구조를 변형시키고, 전면과 후면에 형광 필터를 설치해 빛을 투과시킴으로써 변형된 분자 구조가 마치 프리즘처럼 빛을 굴절시키도록 하여 자체적으로 패턴과 색을 만들어내도록 한다.

이처럼 김윤철의 작업에 나타나는 기계들은 단지 메카닉으로 무언가를 작동시키는 걸 너머 실제 물질의 성향을 드러내도록 하는 일종의 촉매제로 기능한다.


김윤철, 〈태양들의 먼지 (La Poussière de soleils)〉, 2022 ©김윤철

2022년 김윤철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작가로 선정되어 다시 한번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당시 그가 선보였던 신작 〈태양들의 먼지 (La Poussière de soleils)〉는 이전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물질 자체의 구조와 성향을 미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을 이어 오고 있다.

김윤철, 〈태양들의 먼지 II〉(세부 이미지), 2022 ©김윤철

〈태양들의 먼지 (La Poussière de soleils)〉는 기계와 인간,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담긴 프랑스 작가 레이몽 루셀의 소설 ‘태양의 먼지(Poussiere de Soleil)’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업이다. 작가는 수만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던 돌을 분쇄하여 나노 입자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유체로 만들어 유동적으로 움직일 때마다 입자들이 프리즘처럼 작동하여 다양한 색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이렇게 분자 구조로 만들어진 색은 과학에서 구조색이라고 한다. 구조색은 인간에 의해 지정된 색이 아닌 그 구조 자체로 만들어진다는 점, 즉 질료가 주체가 되는 색이라는 점에서 ‘능동적 행위자’로서 물질을 바라보는 김윤철의 사유와 연결된다.

김윤철, 〈CHROMA V〉, 2022,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전경(2022) ©김윤철. 사진: Roman März

또한 김윤철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의 대표작 〈CHROMA〉의 다섯 번째 시리즈를 선보였다. 8m의 대형 설치 작업 〈CHROMA V〉는 382개의 셀을 채우는 곡면과 키네틱 장치로 구성된다. 각각의 곡면에는 하이드로젤이 채워져 있으며 물질을 둘러싼 키네틱 장치가 움직일 때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미세한 형태 변형과 함께 물질 고유의 다채로운 색이 자연적으로 발현된다.

작가는 〈CHROMA〉의 회오리와 같은 매듭 구조의 형태를 통해 시작과 끝이 없는 형태와 힘을 시각화하려 했다. 수많은 고리를 만들기 위해 수학이라는 추상적인 세계에서 작업을 해야 했는데, 수많은 숫자의 목록이 이어져 하나의 매듭이 만들어질 때 위상수학에서는 이를 새로운 차원이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김윤철, 〈CHROMA IX〉, 2024 ©김윤철

그리고 작가는 순환 구조의 매듭으로부터 언어가 생기기 이전 비선형적인 상태로서의 세계를 발견한다. 처음과 끝이 모호한 〈CHROMA〉의 순환 구조는 끝없는 무의식과 현실, 물질, 자연, 종교가 뒤얽혀 있는 상태로서의 또 다른 실재를 상상하도록 한다.

이와 같이 김윤철의 작품은 단순한 기계 장치나 형태가 고정된 물질이 아닌 작품과 작품, 인간, 그리고 세계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하는 비인간 행위자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전시장 안에서 거대한 감각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 안에서 관객은 기계가 발현하는 빛이나 소리 등을 신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동적 경험’으로써 그러한 관계망 안에 함께 얽히게 된다.

“나는 예술이 전적으로 언어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진정한 미적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 작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관객에게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징후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깊이나 다른 차원의 감성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은 기호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스투디움(Studium)이 아니라 품크툼(Punctum)의 영역에 가깝다. 이성적이기보다는 몸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리포에틱, 김윤철 인터뷰, 2019.11.21)


김윤철 작가 ©김윤철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김윤철은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세른(CERN)이 수여하는 콜라이드상, VIDA 15.0의 Thrid Prize,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트랜스메디알레 등의 국제상을 수상하며 그의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예술·과학 프로젝트 그룹 플루이드 스카이스(Fluid Skies)의 멤버이기도 한 김윤철은 비엔나 응용미술대학의 예술연구프로젝트: 리퀴드 싱즈(Liquid Things)의 연구원, 고등과학원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의 독립연구단 매터리얼리티(Mattereality)의 연구책임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CCCB(스페인), FACT(영국), ZKM(독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오스트리아), 프랑크푸르트 시립 미술관(독일), 국제 뉴미디어아트 트리엔날레(중국), VIDA 15.0(스페인), 쉐링 재단(독일), 트렌스미디알레(독일), 일렉트로 하이프(스웨덴) 등의 유수한 국제적 기관에 선보여진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