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첫째 주에 프리즈 서울, 키아프 서울, 그리고 위성 페어로 키아프 플러스가 개최되면서 7만 명이라는 인파가 강남 코엑스와 학동 세텍으로 몰렸다.
프리즈 서울은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 서구권 지역에서 개최되는 페어와 분위기가 다른 탓에 몇몇 해외 갤러리는 초반에 판매 속도가 더디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이 아시아에서 개최하는 첫 페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프리즈 서울의 매출은 꽤 쏠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즈는 매출에 대한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판매된 작품을 추산해 봤을 때 이번 매출이 6,000억에서 8,0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집계했다.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개최되는 프리즈 페어의 규모를 약 1조 원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키아프 서울에 대한 결과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번 키아프 페어도 선방은 했지만 해외 페어와 첫 공동 개최한 것 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키아프는 그동안 판매액 결과를 매해 공식적으로 발표해 왔으며, 작년 페어에서는 역대급 매출액인 65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판매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키아프의 관계자는 올해도 키아프는 좋은 성과를 얻었지만 앞으로 매출 규모를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매출에 대한 발표는 국내 미술 시장에게 불필요한 경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키아프 서울에 참가한 갤러리들과 방문객들의 반응도 큰 차이를 보였다. 키아프에 참가했던 페레스 프로젝트는 좋은 성과를 거둬 부스의 모든 작품이 매진되었으며,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악셀 베르보르트가 선보인 김수자 작가의 작품은 한 공공 기관의 소장품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학고재 갤러리, 가나아트, 표 갤러리, 조현화랑 등 다수의 국내 갤러리도 페어에 내놓은 작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팔려 나갔다.
하지만 두 페어를 찾은 방문자는 육안으로 봐도 큰 차이가 났다. 키아프는 이번 프리즈와의 공동 개최를 통해 해외 미술계에 한국 미술을 소개하겠다고 했지만 큰 성과는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카아프 서울에 참가한 한 중견 갤러리 대표는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온 관객이 많을 줄 알고 미국인 인턴을 고용했으나 첫날 VIP오픈 때를 제외하고는 프리즈에 비해 외국 고객 비중이 적었다”고 말했다. 키아프 플러스에 참여한 한 갤러리 대표는 “영문 리플렛도 만들어 왔는데 외국인 관람객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키아프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화랑협회는 회원 중 70여 곳의 갤러리가 참가 심사에서 탈락시켰을 만큼 구성에 힘을 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론은 키아프와 프리즈 간 수준 차이가 상당했다는 반응이다.
글로벌 미술 시장을 상대로 대형급 갤러리와 함께 하는 프리즈와 국내 미술 시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키아프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키아프도 프리즈와 함께 개최된다고 해서 반드시 일류급 갤러리와 작가들만 내세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론은 키아프 측이 프리즈와 뚜렷한 차별점을 둔 전략이 부족했으며, 키아프만의 정체성을 세우지 못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즉, 경쟁력 있는 작품과 작가를 가진 갤러리를 골라내지 못한 것이다.
일례로 위성 페어인 키아프 플러스는 키아프의 새로운 전략으로 올해 새로 만들어진 페어이다. 신생 갤러리로 젊은 작가를 많이 보유한 갤러리들을 선정해 성격상 NFT(대체 불가능 토큰), 메타버스 등 뉴미디어 작품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준이 모호한 갤러리들이 다수 있거나 키아프 본 페어에 여러 이유로 밀린 갤러리들이 플러스에 들어가 있어 구성에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키아프 본 전시에도 비슷한 언급들이 있었다.
제이슨 함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키아프는 ‘코리안 인터내셔널 아트 페어’를 가치로 내걸고 페어를 꾸려 왔는데 이 기회를 통해 진정한 ‘인터내셔널 아트 페어’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키아프 대 프리즈, 한국 화랑 대 글로벌 화랑이라는 구도는 절대적으로 불필요하다. 오직 키아프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으로 글로벌 미술 생태계 안에서 페어를 포지셔닝하는 과제가 남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키아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키아프의 전략 개선에 앞서 한국 미술 시장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미술 시장 전문가는 한국의 미술 시장은 미술품을 시장 논리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며 다수의 한국 컬렉터들은 충분한 정보 없이 인기 작가에게만 몰려가는 문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프리즈 서울에는 마티스, 샤갈, 피카소,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데미안 허스트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들어왔지만 몇몇 미술계 전문가들은 유명한 작가라고 모두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게다가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아트 바젤에서 팔리지 않은 작품이 출품된 경우도 보였다. 하지만 이를 구별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었고 그런 작품 앞에 한국 관람객들은 긴 줄을 섰다.
키아프 메인 페어에서는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지만 전문가들은 작품의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한 갤러리와 컬렉터들들이 다수 보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컬렉터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술품은 환금성이 낮고, 커리어를 제대로 쌓지 못한 작가의 작품은 결국에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미술계는 지나친 쏠림 현상을 경계하고 시장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 미술 시장이 건강한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갤러리들은 단순히 인기 작가의 작품을 일회성으로 빠르게 판매해 수익을 얻으려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잠재력 있는 작가를 발굴하여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작가가 장기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줘야 한다. 나아가 아트 페어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러한 실력 있는 갤러리들을 선별해야 할 것이다.
이번 프리즈 서울과의 공동 개최를 계기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 국내 미술계는 그래도 앞으로 많은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글로벌 미술 시장에 진입한 이 시점에서 국내 시장에 만족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작가들과 장기적 성장이 아닌 일회성 판매를 목적으로 했던 갤러리들은 앞으로 입지가 매우 좁아지고 도태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개선의 변화는 앞으로 개최되는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페어에서 그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미술 시장의 열기를 느낀 갤러리들은 아시아 전체의 컬렉터를 끌어들이기 위해 올해와는 달리 더 수준 높고 실험적인 작품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미술 시장의 성향을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면 수준과 질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거래하려는 것으로 파악했다면 변화는 없을 수도 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사항이다.
References
- 서울경제, 프리즈 ‘샴페인’ 터졌지만… 키아프는 ‘박수’로 끝났다, 2022.09.06
- 뉴시스, 그 비싼 작품들은 누가 샀을까?…프리즈·키아프가 남긴 것, 2022.09.07
- 뉴스핌, 2022 Kiaf 진단 ② Frieze에 밀렸다…관람객 줄고 총 매출액 발표 못해, 2022.09.07
- The Korea Herald, Frieze Seoul, Kiaf Seoul see success at first joint fair, 2022.09.7
- Harpers Bazaar, 키아프 서울이 남긴 것, 2022.09.26
- 리빙센스, 키아프와 프리즈,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아트 위크, 2022.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