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올해 처음 개최된 일본의 도쿄 겐다이의 결과에 대해서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현대 미술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중요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 비슷한 상황인 한국에서는 9월 6일부터 키아프 서울을 개최한다. 올해 키아프는 국제 아트 페어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눈여겨볼 만하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 불황을 일컫는 표현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본이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명목 국내 총생산이 세계 3위인 경제 대국이다.
일본의 미술 시장 규모 또한 그리 작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일본 아트 마켓 리포트가 발표한 ‘일본의 미술산업에 관한 시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일본 전체의 미술품(고미술, 서양화, 조각, 현대 미술 등)의 시장 규모는 2,780억 엔(한화 약 2조 5천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미술 시장 규모를 고려한다면 일본에 여러 개의 국제 아트 페어가 열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지난 7월 6일 제1회 ‘도쿄 겐다이(現代)’ 국제 아트 페어가 개최되었다. 이는 1992년부터 1995년 사이에 열린 일본 국제현대아트페어(NICAF, 니카프) 이후 30년 만에 열린 국제 아트 페어였다.
도쿄 겐다이는 일본에서 오랜만에 개최되는 국제 아트 페어인 만큼 일본 및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해당 페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각지에서 아트 페어를 주최하는 아트 어셈블리(Art Assembly)가 공동 설립한 아트 페어였기 때문에 특히 기대를 모았다.
아트 어셈블리의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는 2007년에 설립한 아트 홍콩을 성장시켜 2011년에 세계 최고 권위의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에 매각한 인물이다. 또한 아트 어셈블리는 2019년 대만에서 당다이(當代) 아트 페어를, 올해 1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아트 SG를 런칭했다. 아트 어셈블리는 또한 인도, 시드니, 상하이에서도 아트 페어를 주최하고 있다.
도쿄 겐다이는 일본 정부의 지원도 받았다. 여전히 미술 시장 허브로서 홍콩의 입지가 막강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추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쳐 왔다. 일본 정부 또한 그 경쟁에 동참했다. 이번 도쿄 겐다이에서 일본 정부는 처음으로 보세(保稅)를 허가해 주었다. 이는 해외 갤러리들이 일본에 작품을 반입할 때 내야 하는 판매세 10%를 판매가 이뤄지면 낼 수 있도록 유예해 주는 혜택이다.
많은 기대 속에서 개최된 도쿄 겐다이에는 페어 기간 동안 총 20,907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34개국의 주요 컬렉터와 미술관 컬렉터, 큐레이터, 후원자 등을 통해 도쿄 겐다이에 참여했다.
하지만 도쿄 겐다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올해 도쿄 겐다이는 도쿄 도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요코하마에서 열렸고, 한여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이뤄졌다.
이번 페어에 참여한 갤러리는 73곳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았다. 가고시안,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타데우스 로팍과 같은 글로벌 메가 갤러리들은 이번 페어에 참가하지 않았다. 또한 대작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넷뉴스에 따르면 이번 도쿄 겐다이에서 판매된 작품들은 대부분 5만 달러(약 6,500만 원) 미만의 작품이었고 50만 달러(약 6 5천만 원)를 넘긴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또한 언론들은 도쿄 겐다이에 참여한 갤러리 중 45%가 일본 작가 작품을 내놓은 일본 갤러리들로 채워졌으며 중국, 대만, 한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참석했지만 유럽 및 미국의 관람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의 경제는 세계 3위이고 전체 미술 시장 규모는 2조 원을 웃돈다. 그러나 현대 미술 시장이 훨씬 더 큰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국가와 비교할 때 일본에서는 현대 미술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미술 시장은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1980년대까지 일본 컬렉터들은 유럽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들을 대량 수집했다. 그러나 인상파에 머물러 있던 일본 컬렉터들의 취향은 1990년대 일본의 경제 침체가 오면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일본은 여러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했지만 일본 컬렉터들의 관심은 인상파와 고미술에 머물러 있어 일본 현대 미술은 다양한 각도에서 발전되지 못했다. 아트넷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건설업자이자 미술품 수집가,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회장인 오바야시 타케오는 “일본에는 많은 컬렉터들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주목받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현대 미술 시장은 최근 몇년 사이에 아주 빠르게 성장해 오고 있으며 한국의 젊은 세대는 현대 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대체로 블루칩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현대 미술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과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포착하고 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배경이 있어야 현대 미술 시장이 정체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오는 9월 6일부터 키아프 서울이 개최된다. 작년 프리즈 서울과의 첫 공동 주최 경험을 바탕으로 키아프 서울이 올해 국제 아트 페어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