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b. 1965)는 관계 맺기와 소통 과정에 기반한 영상,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통해 인간과 주변 세계에 대한 열린 해석을 시도해 오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개념미술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제작이나 전시 과정에 있어서 여러 장르의 다양한 예술가와의 협업 또는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경험과 상호 소통 가능성을 모색한다.
김소라, 〈세상에서 가장 길고 슬픈 노래〉, 2006 ©부산비엔날레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는 예술적 실천이 사회적 삶의 인간적
조건과 교환가치 체계 사이의 충돌지점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작가에게 전시행위는 사회적
관계를 위한 대안적 장치를 일시적으로 가동해 보는 퍼포먼스이며, 그 결과물로 전시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조각’이 된다.
2006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한 김소라는 전 지구적 차원의 대중문화
확산에 따른 번역, 번안, 문화적 혼성의 문제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한 퍼포먼스 작업 〈세상에서
가장 길고 슬픈 노래〉를 선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슬픈 노래〉는 전시기간 동안 작가가 바다를
소재로 직접 쓴 서사시에 작곡가가 노래를 만들면, 각기 다른 소년과 소녀들이 하루 한 차례 노래의 일부분을
돌아가며 부르는 진행형 퍼포먼스 작업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쓴 시를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음악으로 번안하고, 이를
보편적인 소통 언어로 사용해 관객과 새로운 대안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실험을 보여줬다.
“헨젤과 그레텔” 전시 전경(국제갤러리, 2007) ©국제갤러리
2007년 김소라는 국제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 “헨젤과 그레텔”을 선보였다. 작가는 전시에서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설치 작업들을 공개했다. 작가는 전시실을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세 개의 각기 다른 공간으로 재편성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헨젤과 그레텔’처럼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오가도록 유도했다.
첫 번째 공간은 붉은색 점멸등이 불규칙하게 꺼졌다 켜지고 여러 책에서 단어를 뽑아 새로운 문장으로 엮어 낸 회화작품이
설치되어 있으며, 작가가 편곡한 CF송이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온다. 두 번째 공간은 가짜 잎을 달고 있는 진짜 나무 8그루와 사무용
스탠드가 놓인 평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 번째 공간은 특정한 날짜에 나온 신문기사와 광고들을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서사화한 영상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의 일상 속 친숙한 요소들을 낯설게 만들거나
진실과 허구를 뒤섞음으로써 관객을 현실과 가상의 중간지점에 위치시킨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회적 코드에 허구성을 끼워 넣음으로써 현실과 픽션의 중간지점을 만들어 내는 김소라의 작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익숙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낸다. 그러한 과정은 지배
가치 아래 가려진 소외된 존재와 가치를 다시 들여다 보게 하고 감각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상적인 공존에 대한 상상으로 이끈다.
그리고 김소라는 2010년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인전에서 정보, 사물, 관념의 제거와 번안, 그리고
재문맥화를 통한 ‘기호의 의미체계’를 허무는 과정을 시도했다. 이때 작가는 전시공간에 마치 거대한 바다에 드문드문 떠 있는 섬들처럼 퍼포먼스, 사운드, 영상, 조각-오브제들을 둠으로써, 이러한 불규칙함 안에서 예기치 못한 질서들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각각의 작품들은 일관성을 띄기 보다는 기존의 의미체계로부터 벗어난 각기 다른 현실의 파편들로 존재하며 공존한다. 전선으로 서로 얽혀 있는 거대한 숫자 조각들, 서울 근교의 소리를
채집한 사운드, 자동차가 전소되는 과정을 담은 영상, 통나무를
캐스팅한 조각-오브제 등이 서로 공간을 점유하며 관객의 불규칙한 움직임에 따라 새로이 얽히기를 반복한다.
즉, 구체적 이미지, 형상, 이야기들은 전시장 안에서 그것의 기존 맥락과 의미가 사라지며, 작가는
관객에게 이 요소들의 새로운 번안과 재문맥화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숫자라는 기호만큼은 맥락의
여부와 관계 없이 그 자체로서 고유하게 존재성을 띄고 있다. 작가는 숫자에 대해 “물질을 형성하는 최소한의 단위이자 본질이며, 기존의 체계나 방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이라 설명한다.
앞선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김소라는 관객의
참여는 물론이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왔다. 2012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 “앱스트랙트 워킹: 김소라 프로젝트 2012”에서 또한 작가는 여러 예술가들과의 단계적인 협업을 통해 그 결과물로써 새로운 시공간을 구현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김소라는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한 후, 문학가들에게 번안을 의뢰하여 아홉 편의 시나리오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번안된 시나리오는 권병준, 사몬 카하시(Samon Takahashi)
등 여덟 명의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시 사운드로 환원되었고, 각각의 사운드 작업들은
장영규 음악감독과의 협업으로 하나의 입체적인 사운드 작품으로 편집되었다.
이러한 시공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 과정 등은 추상화된 사운드의 형태로 중첩되어 2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Abstract Walking〉로 재탄생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초대된 관객들은 ‘추상적인 걷기(Abstract Walking)’을 행하며 자기만의 새로운 시공간성과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김소라는 〈Abstract Walking〉처럼 시각 이미지를
배제하고 비물질적인 ‘소리’만으로 공간을 구성하여 관객들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유발하는 프로젝트를 이어 왔다. 예를 들어,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 기념전으로 진행된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 – 김소라 프로젝트”에서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여덟 명의 음악가들과 협업한 사운드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우선 작가는 여덟 명의 음악가-황병기, 강태환, 계수정, 박민희, 방준석, 손경호, 최태현, 알프레드 하르트-에게 모든 계획과 의지를 내려놓고 소리가 온전히
신체를 관통하는, 소위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를 만들어 줄 것을 각각 요청하는 텍스트 스코어(문자 악보)를 전달했다.
이러한 지침에 따라 여덟 명의 음악가는 가야금, 색소폰, 피아노, 정가, 전자기타, 드럼, 전자음악 등 각기 다른 사운드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여덟 개의 음원들은 음악감독 장영규의 포스트 프로덕션을 통해 하나의 소리 작품으로 재구성되었다.
텍스트 스코어, 사운드 퍼포먼스, 포스트 프로덕션이라는 3가지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소리는 모든 가벽이
철거된 빈 전시 공간 안에서 10개의 스피커로 흘러나오며 관객의 신체를 관통한다. 논리적인 연속성 대신 자유롭게 교차된 비언어적인 소리는 관객의 신체를 거쳐 정신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 소리 공간 속에서 관객은 각자 다양한 열린 해석을 만들어 가며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맞닥뜨린다.
이와 같이, 김소라는 다양한 협업과 참여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레 침투하는 작업들을 선보여오며 우리가 현재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또한 그의 작업은 어떠한 논리적인 규칙성 대신 이러한 탈위계적인 느슨한 협업과 소통 방식으로 자유롭게 참여하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열린 장소로서 존재한다.
“우리에겐 무료한 일상을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탈바꿈할 의무가 있습니다. 친숙한 이야기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경험과 감정들에 대한 것으로 거듭나게 되지요.”
김소라 작가 ©오마이뉴스
김소라는 서울대학교와 파리 국립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주요 개인전으로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6), KCC 올해의 작가 “2, 3 Sora Kim”(주영한국문화원, 런던, 2015), “Three Foot Walking”(코펜하겐
쿤스트할 샤를로테보르그, 2013), “Abstract Walking”(아트선재센터, 서울, 2012),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10)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망각에 부치는 노래”(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17), “다중시간”(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6), “Once is Not Enough”(시청각, 서울, 2014), “Nouvelles Vagues”(팔레 드 도쿄, 파리, 2013), “플레이타임”(문화역서울 284, 서울, 2012), “불가능한 풍경”(삼성미술관 플라토, 서울,
201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다수의 국내외 유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 기념전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 - 김소라 프로젝트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30th Anniversary of MMCA Gwacheon SONGS FROM KNEE TO CHIN - A PROJECT BY SORA KIM)
- 국제갤러리, 김소라 – 헨젤과 그레텔 (Kukje Gallery, Sora Kim - Hansel & Gretel)
- 아뜰리에 에르메스, 김소라 개인전 (Atelier Hermès, Sora Kim Solo Exhibition)
- 2006 부산비엔날레, 김소라 (2006 Busan Biennale, Sora Kim)
- 오마이뉴스, 11개의 숫자조각이 나에게 말을 거네, 2010.11.08
- 아트선재센터, 앱스트랙트 워킹: 김소라 프로젝트 2012 (Art Sonje Center, Abstract Walking – Sora Kim Project 2012)
- 세계일보, 국제갤러리 김소라 초대전 "모두가 내작품을 이해한다면 나는 빵점짜리 작가”, 2007.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