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비영리 갤러리인 두산갤러리에서는 12월 17일까지 “물거품, 휘파람”전을 개최한다. 전시에는 1990년대에서부터 1970년대 사이에 출생한 작가 7명이 참여했으며, 두산연강재단 소장품 5점을 포함해 총 1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두산갤러리의 최희승 큐레이터는 전시 제목 “물거품(Rale, Crackle), 휘파람(Wheeze)”을 정상적이지 못한 호흡음을 일컫는 의성어이자 호흡기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러한 호흡음은 주로 청진기를 통해서만 진단할 수 있을 만큼 미세하기 때문에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지만 알아차릴 수 있다. 이처럼 전시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 속도가 일상화되어 더 이상 달라진 속도를 체감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을 시사한다.
최희승 큐레이터는 두산연강재단 수장고 안에 있는 ‘작품도 호흡하든 숨을 쉬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전시가 출발 했다고 한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 놓인 우리 또한 전시를 통해 외부와 잠시 떨어져 차분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전시가 제시하는 호흡은 마냥 안정적이고 평화롭지만은 않으며, 이따금씩 낯설고 불안한 감각을 전하기도 한다. 때로는 지금의 현실을 직시해야지만 우리의 모습을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영(b. 1987) 작가는 빛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표현한 작업을 해 왔다. 두산갤러리에 전시된 ‘빛과 숨의 온도’(2020)는 인천 바다에서부터 팽목항까지 서해안선을 따라 일곱 개의 항구를 방문하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일출과 일몰 장면이 담겨 있다. 하늘로 꽉 찬 바다 장면에는 지난 5년 간 작가가 팽목항에서 채집한 파도와 풍경 소리, 그리고 걷느라 거칠어진 숨소리가 새겨져 있다. 매번 점점 푸르게 또는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내다보는 장면은 의연하면서도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화면과 숨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김지영 작가는 P21(서울, 2022), WESS(서울, 2020)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송은(서울, 202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세진(b. 1977) 작가는 빛을 활용해 계절감과 시간성이 드러난 풍경을 그린다. 그가 캔버스에 담아 내는 풍경은 장대한 자연이나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아닌 어렴풋이나마 삶의 흔적이 엿보이는 풍경이다. 전시된 작품 중 하나인 ‘서리_쐐기풀’(2012)에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입은 두꺼운 옷, 누워 있는 바짝 마른 건초 더미, 회색빛 하늘을 미루어보아 계절은 겨울인 듯싶다. 외국인 노동자처럼 보이는 남자는 쉬는 시간인 듯 잠을 청하고 있고, 그의 주변으로는 하얀색 오리들도 휴식을 취한다. 작품은 오늘날 흔히 보이는 겨울 농촌의 풍경이자 등장인물이 노동 후에 한숨 돌리는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박세진 작가는 누크갤러리(서울, 2018), 두산갤러리(서울, 2013), 사루비아다방(서울, 2006)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스페이스 이수(서울, 2022), 남서울미술관(서울, 2020), 한가람미술관(서울, 1999)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박주연(b. 1972) 작가의 작업에서 언어는 중요한 소재이다. 오랫동안 타국에서 생활한 작가에게 언어는 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한 소통과 이해를 불가능하게 하는 억압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여름빛’(2008)은 2008년 여름 이스탄불에서 8mm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영상 작업이다. 작품을 처음 공개할 당시 작가는 원본 필름이 서서히 마모되는 과정을 보여 줬다. 현재 전시된 21초의 작품은 당시 영상 중 남아 있는 부분을 디지털로 전환한 것이다. 영상 속 작은 거울을 들고 있는 여인은 화면 밖으로 계속해서 빛을 반사해 마치 영상 밖에 있는 관람객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 소통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박주연 작가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서울, 2021), 카파토스 갤러리(아테네, 2015)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제2회 두산연강예술상(서울, 2011)을 수상한 바 있다.
성낙희(b. 1971) 작가는 점, 선, 면 그리고 색을 층층이 쌓아 리듬, 화음 그리고 멜로디와 같은 음악적 요소를 담아낸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회화 작업을 한다. 즉흥적인 재즈 연주처럼 작가는 자유롭고 불규칙한 붓놀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리고 입체감을 더하고 음악의 시간적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 서로 다른 선, 형태 그리고 색을 층층이 쌓아 올린다. 전시된 작품 ‘Resonance’(2015)는 ‘공명’이나 ‘울림’을 뜻한다. 캔버스 안쪽의 한 중심에서 폭발하듯 퍼져 나가는 선과 색이 화면 밖으로까지 이어지며 갖가지 선과 색면은 혼란스러운 듯 질서 있는 조합을 보여 준다.
성낙희 작가는 가나아트 나인원(서울, 2022), 피비갤러리(서울, 2020), 페리지 갤러리(서울, 2020)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5년에는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종이 위에 연필로 단색 위주의 작업을 하는 이승애(b. 1979) 작가는 대형 드로잉 작품 ‘1979’(2010)와 영상 작품 ‘Becoming’(2017)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한 장의 종이 위에 어떠한 형상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논리에서 벗어난 생성과 소멸의 서사 구조를 구축해 나간다. 작가는 그러한 변화의 흔적을 종이에 그대로 남기는데, 그 과정은 그의 스톱 모션 영상 작업인 ‘Becoming’에 잘 드러난다. ‘1979’는 그가 출생한 해로, 그림 속 바위에는 커다랗게 작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연필로 그린 그림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기이한 형상으로 존재한다. 작가가 ‘몬스터’라 명명한 이 괴물들은 미지의 존재를 시각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섬세한 연필 선의 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관람객들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신화적 이야기로 들어가게 된다.
이승애 작가는 챕터투(서울, 2020), 크리스틴 박 갤러리(뉴욕, 2018)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The Valerie Beston Artists’ Trust Prize(런던, 2016), 구찌 아티스트 재단 그랜트(서울, 2013)를 수상했다
오가영(b. 1992) 작가는 사진으로 다양한 실험을 펼친다. 전시된 작품 ‘게’(2021), ‘나비’(2021) 그리고 ‘선셋’(2021)은 어떤 이미지, 특히 자연물 이미지를 반투명한 천에 프린트하여 캔버스 틀에 끼운 코튼 포토 시리즈의 일부이다. 작가는 속이 비치는 프린트된 천을 여러 장 겹치거나, 그 위에 천 조각을 덧대거나, 물감을 칠하거나 글라스 데코를 붙인다. 또한 그는 포착한 자연물 이미지의 합성, 복제, 재조합, 변형을 통해 도시 속 풍경과 병렬되거나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오가영 작가는 실린더(서울, 2021), Edel Extra(뉘른베르크, 2018)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와이탄 18호 구사 아트 갤러리(상하이, 2022), 일민미술관(서울, 2021)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조효리(b. 1992) 작가는 디지털 인터페이스상에 존재하는 가상의 풍경을 편집하여 현실 이미지처럼 가공하거나 실재하는 현실의 이미지를 디지털 이미지로 교묘하게 바꾸기도 한다. ‘I heard you looking’(2021)에서는 물방울 형상의 인물이 청진기를 하고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다. 2인용으로 개조한 청진기를 들고 나무의 수관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던 옛날의 경험은 자신의 심장 소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방울 인물의 뒤편 풍경은 연둣빛 혈관 같기도, 나뭇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forward’(2022)라는 작품은 비 내리는 밤,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곳의 백미러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작품의 뒷면에는 푸르게 갠 새벽녘의 숲속과 같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조효리 작가는 갤러리 아노브(서울, 2021), 갤러리 엔에이(서울, 2020)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더 샵하우스(홍콩, 2022), BGA마루(서울, 2021)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