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환(b. 1965)은 관습적인 미술형식이나 물질적이고 영구적인 작품 생산보다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요하는 퍼포먼스, 설치,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또한 오인환은 작가 자신의 퀴어로서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의 관계,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적 코드 등을 해체하거나 재해석하며 차이, 다양성, 소통 등의 키워드를 작품 속에 녹여내면서 일상의 경험과 연결되는 작업들을 이어 왔다.


오인환, 〈퍼스널 애드〉, 1996 ©오인환

1996년 오인환은 뉴욕에서 발행되는 주간신문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에 본인을 GKM(게이 한국남자의 약호) 미술가로 소개하고, 다섯 명의 미술가 라니 혼, 로버트 고버, 백남준, 하임 스테인벡, 신디 셔먼을 찾는 개인 광고를 게재하는 작업 〈퍼스널 애드〉을 선보였다. 누군가를 찾는 개인 광고는 당시 흔했지만, 흔한 이름도 아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을 찾는다는 내용과 더불어 ‘진짜(real)’란 단어를 덧붙임으로써 의미심장한 문장이 된다.
 
이는 특정 예술가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누가 그리고 무엇이 진짜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진짜로 찾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다섯 예술가들도 아닌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 자신을 ‘게이 한국남자 미술가(GKM Artist)’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커밍아웃이라는 개인적 경험과 창작 과정을 일치시켰다.


오인환, 〈만남의 시간〉, 1999-present ©오인환

오인환은 이처럼 자신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개인의 정체성과 그와 얽혀 있는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 코드를 드러내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현재의 맥락에서 이러한 작가의 이야기가 어떻게 관객들에게 읽혀지고 소통될 수 있을지 실험해 왔다. 이에 따라 오인환의 프로젝트는 ‘지금-여기’에 초점을 둔 사진 기록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미완의 프로젝트의 성격을 가진다.
 
예를 들어, 〈만남의 시간〉(1999-)은 작가와 다양한 나라에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각자의 손목시계를 나란히 촬영하여 기록하는 작업이다. 사진 속 두 시계는 동시에 촬영되었음에도 각각 다른 지역시간에 맞추어져 있기에 다른 시간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기록한다. 즉, 이 작업 속 두 시계는 동일함이 아닌 ‘차이’로 만남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사진들을 엽서로 제작하여 전시장 바닥에 쌓아 두고 관객들에게 마음에 드는 엽서를 본인에게 보내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사라지는 엽서와 작가 본인에게 도착한 엽서들은 정확하게 상응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참여를 통해 또 다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2001-present ©오인환

2001년부터 선보인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은 전시회가 열리는 도시에 산재하는 게이바/클럽의 이름들을 수집하여 전시장 바닥에 향 가루로 적은 설치 작업이다. 전시 시작과 동시에 점화된 작품은 전시기간 동안 천천히 타게 되면서 재로 변한 게이바와 클럽의 이름들이 하나씩 두드러진다.
 
이러한 이반업소에 친숙한 사람들에겐 쉽게 그 의미가 파악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해독하기 어려운 낯선 단어들의 집합으로 읽힐 것이다. 단어들이 타면서 냄새로 전환됨에 따라 작업은 고정되지 않고 작품 자체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공간으로 확산되며, 심지어 관객의 몸 안으로까지 침투한다.


오인환, 〈경비원과 나〉, 2014 ©오인환

2014년에는 협업을 통해 사회문화적인 감시체계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경비원과 나〉는 미술관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인 역할에 의해 구분될 수밖에 없는 경비원과 작가가 ‘개인적인 친분 만들기’의 과정을 담는다. 작가와 미술관 경비원은 주1회 퇴근 후 미술관 밖에서 만나 식사, 운동 등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이러한 과정은 참여자(경비원)가 원할 때 언제든 그만 둘 수 있으며, 최종 단계까지 지속되면 미술관에서 작가와 경비원이 함께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이를 감시카메라로 녹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3회의 만남으로 중단된 이 프로젝트는 결국 작가 혼자 춤을 추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되었다.
 
〈경비원과 나〉는 한 사회에 속하는 개인의 직업, 역할, 젠더, 성정체성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문화적 감시체계가 있다는 전제로 시작하여, 경비원과 작가가 미술관의 안과 밖에서 작동하는 감시체계를 너머서는 경험을 공모하는 협업 프로젝트였다. 기존의 감시 장치(감시카메라)들은 본래의 감시 기능에서 이러한 협업을 기록하여 관객과 공유하는 예술적 수단으로 전환된다. 

오인환, 〈사각지대 찾기 – 상호 감시 체계〉, 2015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2015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된 오인환은 사회문화적 감시체계에 대한 개인의 이야기를 보다 확장시킨 〈사각지대 찾기〉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작가는 어떠한 사회에서나 구성원에게 지배적인 가치체계를 수용하도록 작동하는 문화권력이 있으며, 개인들은 지배가치에 부합하도록 자신의 역할, 정체성, 욕망 등을 구성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개인들은 그러한 문화권력에 전적으로 순응하기 보다 그에 허용되지 않는 타자화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적인 영역으로서 ‘사각지대’를 찾기 마련이며, 여기서부터 지배적인 문화에서 배제된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유로 시작한 〈사각지대 찾기〉 프로젝트는 지배문화가 허용하지 않는 다양한 문화가 출몰하는 장소로서 ‘문화적인 사각지대’를 의미화하고, 일상에서 목격되는 개인들의 다양한 사각지대 찾기의 사례들을 통해 문화적인 사각지대가 관념적인 구상이 아닌 일상의 현실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업이었다.
 
문화적인 사각지대는 유동적인 점거 형식일 수 밖에 없기에 작가의 프로젝트는 전시와 전시장의 조건에 따라 변형되거나 새롭게 재해석되는 장소특정적 속성을 지닌다. 그리고 〈사각지대 찾기〉 프로젝트는 다양한 개별 프로젝트들로 구성되어 독립적인 동시에 상호 연결된다.
 
오인환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이처럼 관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작가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모든 개개인은 사회문화적인 감시체계 안에 살아갈 수밖에 없고 또 그 안에서 자기만의 문화적 사각지대를 찾기 마련이다. 작가는 그러한 현실의 일상을 예술을 통해 가시화하고 의미화하며 기존 사회적 보편성과 규율로부터 탈피하는 탈출구로서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가로서 자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드러낼 수 있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화비평적이고 제도비판적인 작가로서의 제 입장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깨어나게 해주는 일이 작가로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인 것 같다. (…) 현대미술에서는 이제 작품이 완성된 상태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와서 작품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한다.
 
참여자를 염두하고 작품을 만들지만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또 어떤 형태로 나올지도 알 수 없다. 관객들이 결국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했으면 좋겠다.” (2015 올해의 작가상 오인환 인터뷰)


오인환 작가 ©서울대학교

오인환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과를 전공하고 뉴욕의 헌터컬리지 대학원을 졸업했다. Commonwealth & Council/ 백아트(로스엔젤레스, 미국, 2019),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서울, 2018), 아트선재센터(서울, 2009), 밀스컬리지 미술관(오클랜드, 미국, 2002),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서울, 2002) 등 국내외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또한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 2024), Navy Officer’s Club in Arsenale(베니스, 이탈리아, 2019),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서울, 2017), 교토예술센터(니조성, 교토, 일본, 2017), 플라토(서울, 2014) 등을 비롯한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현재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2015년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