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김세중청년조각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지현 작가는 도시 환경을 탐구하며 도시의 잔재인 버려진 산업 자재를 통해 조각의 기능과 움직임을 실험한다.


Artist Jihyun Jung. Courtesy of the Kimsechoong Museum

2023년 김세중청년조각상 수상자로 정지현 작가가 선정되었다.

정지현 작가는 도시 환경을 살피며 우리가 흔하게 마주하기에 쉽게 지각되지 않는 도시의 잔재를 발견하고 이를 조각으로 표현한다. 그 도시의 부산물들은 오래전부터 있던 조각상이 되기도 하고 버려진 산업 재료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들을 활용하여 조각의 기능과 움직임에 대한 실험을 펼친다.

그가 작품으로 자주 사용하는 재료들은 알루미늄 망, 건축물의 단열재로 쓰이는 우레탄 폼, H형강, LED 조명 등과 같은 산업 자재들이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이러한 산업용 소재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도시 공간에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이처럼 쓸모에 따라 사용되고 버려지는 사물의 모습은 마치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와도 닮아 있다.

도시는 이처럼 각기 다른 형태와 용도를 가진 사물이 모여 공간을 재구성한다. 작가는 여러 사물들로 통합된 도시 공간 안에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중의 시야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물들을 탐구한다. 종로 대로변에 세워진 전봉준 동상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조각상이 하나의 예시이다. 작가는 이 같은 도시의 모습을 산업 소재를 사용해 예술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또 다른 조형물을 만들어 낸다.

Installation view of Jihyun Jung’s ‘Filing Public Parts (공공조각파일)’ (2018) in “Sculptural Impulse” at the Buk-Seoul Museum of Art, Seoul. SeMA Collection. Photo by Aproject Company.

북서울시립미술관의 “조각충동”전에 전시되었던 ‘공공조각파일’(2018)은 길가에 방치된 듯 서 있는 공공 조각을 알루미늄으로 떠 낸 작업이다. 해당 공공 조각은 그의 작업실 근처 건물 벽 쪽에 웅크린 모양으로 앉아 있는 여성 나체 조각상이었다. 작가가 보았을 때 이 조각상은 실제 사람 크기보다 크고 모습도 비범해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작가는 가볍고 얇은 알루미늄 망으로 동상을 감싸고 눌러 동상의 외피를 부분 부분 떠 냈다. 동상을 본뜬 수십 장의 알루미늄 망은 미술관 전시장에 높이 쌓아 올려 배치되었다.

‘공공조각파일’은 관객으로 하여금 조각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이나 장르의 오랜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도시 공간에 방치된 공공 조각의 사회 문화적 함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지현 작가의 작품 세계는 조각이 가지는 추상성을 고민하고 조각 재료의 물질성을 탐구한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의 작업 세계와도 연결된다. 헨리 무어는 재료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유기적이고 단순한 원초적 형체로서의 대상의 내적 생명을 표출했던 작가였다.

정지현 작가는 이러한 무어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받아 도시의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되, 도시의 맥락과 질서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낸다. 작가는 도시 속에 쓸모가 다한 채 존재하는 사물들의 원래 형태를 보존하면서도 본래 기능을 없앤다. 도시 속 사물들은 작가를 통해 언제든 변화 가능한, 새로운 형태와 용도를 갖는 자율적인 상태가 된다.

Installation view of Jihyun Jung’s ‘Filing Public Parts (공공조각파일)’ (2018) in “Sculptural Impulse” at the Buk-Seoul Museum of Art, Seoul. SeMA Collection. Photo by Aproject Company.

정지현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인천, 2022) 아뜰리에 에르메스(서울, 2019), 두산갤러리(서울, 2016), 두산갤러리(뉴욕, 2015), 인사미술공간(서울, 2013),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서울, 2011), 갤러리 스케이프(서울, 2010)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2022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한 “조각충동”전, 하이트 컬렉션에서 개최한 “각”전, 2021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최한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기”전 등이 있다.

올해 김세중조각상은 김윤신(b. 1935), 김세중청년조각상은 정지현(b. 1986), 한국미술 저작·출판상은 서유리(b. 1973)의 “이탈과 변이의 미술: 1980년대 민중미술의 역사”(2022)가 수상한다.

김세중조각상과 김세중청년조각상의 심사는 안규철(심사위원장, 전 한예종 교수), 이용덕(서울대 교수), 이수홍(홍익대 교수), 문주(서울대 교수), 조은정(미술펑론가)가 맡았으며, 시상식은 6월 24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김세중미술관에서 열린다.

김세중조각상은 한국 현대 조각가 1세대인 김세중(1928~1986) 조각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7년 제정된 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한 김세중 조각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광화문에 세워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김세중조각상은 올해까지 조각상 수상자 80명을 선정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