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b. 1970)는 2000년대 초 웹 기반의 작업을 시작으로 기술이 사회, 문화, 정치 등에 미치는 영향과 그 속성을 탐구해 왔다. 그는 설치, 영상, 글,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술과 얽혀 나타나는 현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는 동시에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미디어의 영역을 실험하고 확장했다.
양아치, 〈양아치 조합〉, 2002 ©네오룩
작가는 본명인 조성진 대신 작업 초기 사용했던 온라인 아이디 ‘양아치’를 예명으로 하여 현재까지 활동해오고 있다. 본격적으로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양아치’라는 이름을 내걸었던 전시는 2002년 일주아트하우스에서 개최된 그의 개인전 “양아치 조합”이었다.
전시 제목과 동명인 웹 프로젝트 〈양아치 조합〉(2002)은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던 인터넷 쇼핑몰의 형식을 차용한 작업이었다. 온라인에서 진행된 〈양아치
조합〉은 영상을 상영하거나 사진을 전시하는 등의 온라인 전시장의 작동원리와는 달리, 실제 온라인 쇼핑몰처럼
회원 가입, 검색, 구매와 같은 기능들을 통해 이른바 ‘양아치 상품들’을 판매하는 온라인 시장의 원리를 따른다.
양아치, 〈양아치 조합〉, 2002 ©네오룩
양아치는 이 작업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 상품들이 판매되는 역설적인 현실 안에, '허상'에 불과한 사회적 가치들을 추종하는 양아치 사회에 대한 자조적인 냉소를 담아낸다. 동시에 〈양아치 조합〉은 일주아트하우스라는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설치작업과 연계됨으로써 인터넷 상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양면적인 속성을 드러냈다.
양아치, 〈전자정부〉, 2003 ©서울시립미술관
2003년 인사미술공간에서의 개인전 “전자정부”에서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 현상들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룬 또 다른 웹 프로젝트 작업 〈전자정부〉(http://www.egovernment.or.kr/)를 선보였다.
양아치는 주민등록 제도, 스마트 카드, CCTV, 전자지문, 인터넷 실명제 등의 정보기술이 국가나 기업에
의해 감시와 통제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막상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했다. 이에, 작가는 국가와 기업이
아닌 개인이 데이터를 구입할 수 있게 되는 〈전자정부〉의 매커니즘을 통해 기존의 감시체제를 비트는 일종의 역감시적 시스템을 제안한다.
〈전자정부〉에 접속한 관객들은 작가가 설계해 놓은 질문들에 따라 자신과 가족의 이름, 성별,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하는 과정을 거쳐, 수집된 개인정보가 전자정부 회원 누구나 10달러에 이용 가능한 유료
데이터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양아치, 〈가미가제 바이크〉, 2008 ©양아치
양아치는 웹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인 작업 초 이후에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설치, 영상, 사운드, 사진, 드로잉, 퍼포먼스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의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양아치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국가 ‘미들 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2008-2009)를
선보이며 미디어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는 기존의 국가적 시스템을 파괴하고자 만들어진 한반도의 중간 국가 ‘미들 코리아’에 존재하는 김씨 공장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김씨 공장에서 생산되는 강력한 미사일이 장착된 바이크 ‘가미가제
바이크’로 모든 시스템을 ‘파괴’하는 내용이다.
양아치,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 III〉(퍼포먼스 버전), 2009 ©양아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저격수를
위한 총 ‘루머건’으로 세상 모든 시스템에 오류를 만드는
내용이며, 마지막 이야기인 세 번째 에피소드는 김씨 공장과 관계된 사람들이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황금빛으로
가득 찬 신세계를 위해 ‘인공위성’을 제작해 띄우지만 결국
모든 황금빛과 함께 파괴되는 결말을 가진다.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건물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활용해 에피소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연극, 사운드, 시각예술이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형식의 라이브 퍼포먼스로 전개되었다.
양아치, 〈뼈와 살이 타는 밤〉, 2014 ©학고재 갤러리
2014년에 선보였던 〈뼈와 살이 타는 밤〉의 경우에는 ‘가상’의 공간을 다룬 소설 『구운몽』에서 착안한 이야기를
현 시대에 빗대어 재해석한 작업이다. 작품의 제목은 1980년대
초 정권이 추진한 ‘3S 정책’(스크린, 섹스, 스포츠) 하에
제작된 한 에로영화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그 이유는 지금의 사회 또한 당시와 마찬가지로 ‘병든 사회’라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두운 과거와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를 은유하는 동굴이 이 작품의 기본 배경으로 설정된다. 작품은 동굴과 공장 등 여러 어두운
공간을 떠도는 남성의 모습을 통해 인간관계의 단절과 불특정 타인에 대한 불안과 공포, 폐쇄적인 상황을
담은 영상과 함께, 80년대와 현대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오브제와 사운드로 구성된다.
양아치, 〈뼈와 살이 타는 밤〉, 2014 ©학고재 갤러리
작가는 “30년 전에는 권력과 통제 등이 시각적으로 드러났지만, 지금은 교묘한 통제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 잘 모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은 가시적인 영역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현재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공감각적인 차원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양아치는 국가와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에 작동하는 관계, 즉 네트워크의 양상들에 주목해
왔다. 웹을 활용했던 작업 초기에는 인터넷 기술을 매개로 네트워킹되는 현상을 주로 다뤘다면, 이후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 내 여러 그물망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작가는 2020년에 개최된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의 개인전
“갤럭시 익스프레스”에서는 주체와 객체, 신체와 사물, 인공과 자연의 구분이 없는 ‘사물들의 네트워크’의 세계를 구현했다. 전시는 우의적이거나 종교적인 기호가 혼재하며 다중의 눈과 기관을 가지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새로운 기술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이미 알려진 해석으로 압축하지 않고 감각할 수 있도록, 작가는 다중적인 눈과 감각기관을 가진 미래적인 징후를 내포하는 사물들을 제시하고 관객에게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도록 인도한다.
이 전시에서 선보였던 영상 작업 〈갤럭시 익스프레스〉(2020)의 경우에는 열화상 카메라나 라이다(LiDAR)와 같은 기술이
낳은 ‘새로운 눈’으로 제작되었다. 렌즈 없이 수치화된 데이터만으로 3D 이미지를 생성하는 라이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눈과 같은 렌즈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인식을 흔든다. 이 작업은 인간의 시지각 매커니즘과
관계없이 데이터들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펼쳐질 근미래를 암시한다.
한편 작가는 지난해 아트센터
나비에서 개최된 개인전 “레이첼(Rachael)”에서 자동차, 라이다(LiDAR), 5G, 라디오, 휴대폰 Discord 앱 등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기술했다. 전시와 체험형 프로젝트로 진행된 “레이첼(Rachael)”은 프로젝트 속 메타 휴먼으로 상정된 레이첼을 통해 총체적 기술적 세계로서의 서울을 조형화함으로써
근미래의 서울에 접속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양아치는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지만 존재하는 세계와의 접점을 실험하며 ‘미디어’의
영역과 그 본질을 탐구해 왔다.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기술은 사회를 반영하고 그 안에 뒤엉켜 살아가는
인간과 비인간을 연결시켜주는 매체이자 잠재된 가능성의 세계를 바라보기 위한 장치이다.
“나의 작업은 영향력 있는 잠재적 세계에 가공된 이야기를 개입시켜, 그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사건의 연속이며, 불충분한 이해의 경험의 연속이며, 그 결과 불안정한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양아치 작가 ©바라캇 컨템포러리
양아치는 수원대학교에서 조소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상학(미디어아트)을 수학했다. 주요
전시로는 국립현대미술관(2016, 2013, 2012, 2004),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2018, 2010), 부산 비엔날레(2016), 강원 비엔날레(2018), 서울시립미술관(2016, 2015), 경기도 미술관(2018, 2011, 2010), 아르코미술관(2020, 2017), 백남준아트센터(2016, 2015, 2008) 등이 있으며, 프랑스, 홍콩, 일본, 독일, 미국, 칠레 등의 다수의 미술 기관 및 행사에서 국제전을 가졌다.
또한 양아치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됐고, 2010년 아뜰리에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
- 양아치, Yangachi (Artist Website)
- 바라캇 컨템포러리, 양아치 (Barakat Contemporary, Yangachi)
- 서울시립미술관, WEB-RETRO (Seoul Museum of Art, WEB-RETRO)
- 네오룩, 양아치 조합 (Neolook, Yangachi Guild)
- 월간미술, [Review]양아치 – 뼈와 살이 타는 밤
- 바라캇 컨템포러리, 갤럭시 익스프레스 (Barakat Contemporary, Galaxy Express)
- 아트센터 나비, 레이첼(Rachael) (art center nabi, Rac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