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b. 1971)은 한국의 분단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폭력의 의미를 사진과 글을 통해 추적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노순택은 사회정치적 주제를 다루면서 카메라의 본질과 작동원리, 그리고 사진가로서의 존재 의미를 고민한다. 그의 작품은 현장의 격렬함을 담고 있으면서도 미적 감각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인식을 뒤트는 유머감각을 자극하여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노순택, 〈분단의 향기〉, 2003 ©노순택

노순택은 사진작가로 데뷔하기 전 다큐멘터리 보도사진을 찍던 사진 기자였다. 치열한 현장을 다니며 작가가 바라본 풍경은 매스미디어가 보여주는 것과 다름을 알게 되었고, 이후 매스매디어가 보여주지 않은 것, 놓친 것, 혹은 보지 않은 것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한 〈분단의 향기〉(2003-2010) 시리즈는 한국의 분단 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분단이라는 현실에 대해 낭만적인 수사를 제거하고 분단체제가 얼마나 기이하고 치졸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노순택, 〈분단의 향기〉, 2003 ©노순택

즉 노순택은 오작동으로 작동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분단체제가 만든 풍경들을 담았다. 가령 작가는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고, 이북 어린이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 반전시위 현장, 미국 사회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태도를 갖는 한국 사회의 단면 등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풍경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노순택, 〈얄읏한 공〉, 2006 ©노순택

2006년 작업한 〈얄읏한 공〉 시리즈 또한 분단체제로 파생된 한국의 기이한 풍경을 포착하고 있다. 이 작업은 경기도 평택 팽성읍 대추리 황새울 들녘에 우뚝 선 야릇한 공과 그 공 주위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평택 대추리는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계획 하에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군사기지 확장사업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리고 골프공 같기도 한 이 하얀색 공은 레이돔이라는 고성능 레이더로 한반도의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는 기계다.

노순택, 〈얄읏한 공〉, 2006 ©노순택

100여 점의 이미지로 구성된 〈얄읏한 공〉 시리즈에서 레이돔은 주위 풍경과 묘하게 어울리며 스스로의 존재를 은폐하거나 부각시킨다. 이러한 공과 함께 대추리 농민들이 투쟁하는 모습, 농사를 짓는 모습, 진압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이 현장을 담은 사진들에는 막상 이러한 상황의 중심에 있는 미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권력과 폭력의 당사자의 모습은 레이돔으로만 드러날 뿐, 같은 한국인들끼리 싸우고 있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펼쳐진다.

노순택, 〈붉은 틀 I_036〉, 2005 ©노순택

2005년부터 이어온 노순택의 〈붉은 틀〉 시리즈는 북한에 대한 여러 장면들을 3개의 장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첫 번째 장에서는 북한 사회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질서 정연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담았다. 작가는 북한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인 아리랑 축제라고도 불리는 매스 게임 속 수많은 사람들의 장면을 주로 담았다. 자로 잰 듯 정렬을 맞춘 모습들 속에 미세하게 나타나는 개인들 간의 편차를 통해 질서의 이면을 상상하도록 한다.

노순택, 〈붉은 틀 III_04〉, 2005 ©노순택

두 번째 장에서는 북한이라는 낯선 시공간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 낯선 공간에 스며든 이들이 취하는 행동양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세 번째 장에서는 북한이라는 거대 상징이 남한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제시되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

노순택은 이 작업의 말미에 “너는 나의 거울이며, 나 또한 너의 거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적어 남겼다. 즉 작가는 이러한 ‘북한 바라보기’를 통해 남한을 바라본다. 외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어떤 시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노순택 – 망각기계” 전시 전경(학고재 갤러리, 2012) ©학고재 갤러리

노순택은 2012년 학고재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에서 〈망각 기계〉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광주의 사진들을 선보였다. 〈망각 기계〉에는 망월동의 옛 묘지와 그 곳에서 세월의 흐름에 의해 훼손되어가는 영정사진들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풍경,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장소와 사물들, 화순 운주사의 미륵불 등에 대한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노순택, 〈망각기계 I_황호걸〉, 2008 ©노순택

오늘날 분단의 현실에 대해 다뤄왔던 작가에게 광주 민주화운동과 이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과 현상들은 한국전쟁과 분단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 중 하나였다.

노순택은 이 시리즈를 통해 수십년이 지나며 잊혀지고 왜곡되어 가는 그날의 광주를 곱씹으며, 오늘날 우리가 오월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억과 망각이 어떤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질문한다.

노순택, 〈좋은, 살인_BJK2209_Seoul_2009-1〉, 2009 ©노순택

한편 〈좋은, 살인〉(2008-2009) 시리즈는 공군사관학교 4학년 학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인 F-15K에 대해 좋은 기계이지만 살인 무기로 보여 심란하다는 글을 남긴 것을 신문기사를 통해 접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학생의 고백이 반체제성 발언으로 오역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살인기계를 둘러싼 사회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좋은, 살인〉은 살인기계인 전투기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남한의 국군의 날 행사 풍경, 가짜 총을 체험해보는 아이의 모습 등 심란한 풍경을 담으며, 무기와 그 폭력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와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노순택,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RWJ-XII040201〉, 2013 ©국립현대미술관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2008-2014) 시리즈에서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작동되어 왔고 그 안에서 카메라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작가는 시위 현장과 같은 정치 사회적 맥락 안에서의 특정 상황을 기념하거나 증거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노순택은 이 시리즈를 통해 카메라가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와 같이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진이 지닌 한계 또한 제시하고 있다. 제목에서 '무능한 풍경'은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풍경이며, '젊은 뱀'은 다른 매체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빠르게 흡수되고 확장된 교활한 사진의 속성을 의미한다.

노순택,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2014, “올해의 작가상 2014”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4) ©국립현대미술관

즉 사진은 마치 진실을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 같지만 실은 표피적이며 맥락 없이 프레임 안의 풍경만을 제시함으로써 영악한 시선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자기 반성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노순택의 사진을 관통하는 주제는 분단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념의 대립으로 풀어나가기 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 접근해 오며 관객에게 우리 사회와 그 안에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사진은, 누군가의 즐거움은 물론이거니와 누군가의 고통마저도 '근사한 장면'으로 만든다. 허나 사진이 근사하다고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마저 근사한가. 다이아몬드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 생산과정마저 아름다운가.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장면은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 울고 있고, 화내고 있고, 쓰러져 있는데, 또 누군가는 사진기 뒤에 숨어 표정을 감춘 채 각자의 방식대로 '근사한 사진'을 만든다. 그것은 멋지고도 추악하며, 순진하고도 사악하다."


노순택 작가 ©광주시립미술관

노순택은 건국대학교에서 정치학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했다. 보도사진 신문기자에서 출발한 작가는 아트선재센터, 고은사진미술관, 동강사진박물관, 광주시립미술관, 학고재 등 국내 주요 기관과 영국, 스페인, 일본 등 해외 각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캐나다 현대미술관, 가오슝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출품했다.
 
2014년 사진작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독일 쿤스트페어라인 슈투트가르트에서 대규모 개인전 “비상국가”를 개최했으며, 2009년 독일의 미술전문출판사 하체 칸츠(Hatje Cantz)에서 출간한 사진집으로 ‘올해의 독일사진집’ 은상을 수상했다. 2012년 제11회 동강사진상을 수상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