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남북 분단과 군사 독재 등 다사다난했던 근현대 역사를 거쳐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70년대에는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고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1970년대 말 신군부 세력의 집권이 일어나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상황에서 많은 예술가는 사회 변혁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젊은 작가들은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 벽화를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걸개그림을 그리거나 판화를 찍는 등, 현실의 실상을 사회 비판적으로 그리는 작품으로 그려 나갔다. 또한 서구권의 영향을 거부하고 한국의 전통 문화를 통해 한국의 현대 미술을 구축하려는 열망도 함께 커지며 이 같은 현장 중심의 리얼리즘 작품들은 민중 미술이 생겨났다. 민중 미술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단색화로 대표될 수 있는 추상 미술과는 또 다른 중요한 갈래를 이루며 오늘날 미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민중 미술의 발전 과정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이러한 미술 운동이 오늘날 동시대 작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떨지 모색하고자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전을 개최했다.
Partial exhibition view of "Vibration in a Polyhedral Labyrinth" at the Asia Culture Center, Gwangju, Korea. June 30 - August 15, 2022. Photo by @lge0524. © Asia Cultural Center.
전시에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부터 전개되어 온 리얼리즘 작품부터 오늘날까지 당대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다뤄 온 작가 22인의 작품 38점을 두 파트로 나누어 선보인다.
1부에서는 ‘새로운 시선’이라는 주제로 한국 민중 미술의 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작품들로 그 흐름과 의미를 정리한다. 1부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1980~1990년대에 독재에 대항하기 위한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노동 운동 등을 펼쳤던 모습을 포착하고 당시 사회의 모습과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당시 대표적인 작가들로는 신학철, 오윤, 임옥상, 홍성담 등이 있으며, 이 파트에는 총 10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현실과 환상 사이’라는 주제로 꾸려진 2부에서는 한국 동시대 예술에서 민중 미술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2000년대 이후 개념적 성향의 포스트 민중 미술로 그 계보를 이어 나가는 작가들과, 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2010년 급변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실 문제들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작가들이 소개된다.
특히, 기후 위기, 환경 오염, 전염병, 전쟁, 도시 환경, 이주 노동자, 정보화, 대중문화, 감시 사회 등 현재 다양한 사회 현상을 여러 매체와 형식을 활용해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나현 작가, 역사적 사건과 대중문화를 결합한 노현탁 작가, 1인 방송 형태로 토착문화와 신자유주의를 혼합한 블랙 코미디로 풀어내는 류성실 작가, 사회 구조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불안과 욕망을 그려낸 문소현 작가, 산업화와 기계화의 대표성을 지닌 폐플라스틱과 비닐 수지로 설치 작업하는 박상빈 작가, 소외된 노동자를 주목하여 회화 작품을 하는 박은태 작가, 역사적 장소에 기념비적 돌을 표현하는 이세현 작가, 한국 사회의 민감한 주제인 부동산을 이야기한 이원호 작가, 쓰레기 더미를 통해 산수화를 그리는 이진경 사진 작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세월호 사건에 빗댄 임용현 작가, 오늘날 현대인들의 피로한 삶을 그리는 조정태 작가, 그리고 도시의 소외된 재개발 지역을 사진과 건축 폐기물을 이용해 설치와 오브제로 표현하는 튜나리 작가가 참여 한다.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전은 8월 15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