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rtesy of the museum.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급격히 변화하며 케이팝은 아시아 지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유교 사상, 식민지 경험, 전체주의,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같이 어지러울 만큼 다양한 역사적, 이념적 경험을 가진 한국은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혼종을 이루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한 혼종은 케이팝에도 반영되었다. 현재 한국 아이돌 음악은 다양한 사람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면서도 복잡한 정치·사회·문화적 문제의식을 내포하기도 한다.
이번 대구미술관의 Y 아티스트 프로젝트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살펴본다. 이번에 개최되고 있는 “펑키-펑션 Funky-Funtion”전은 6명의 젊은 작가들의 설치, 영상, 회화 등 16여 점의 작품을 통해 케이팝 문화를 중심으로 현대 한국 문화의 초상을 탐구한다.
강원제, 김민희, 듀킴, 류성실, 최윤, 최하늘 작가는 한국의 동시대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복잡미묘한 현상을 날카롭게 짚어 내고, 그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를 작품으로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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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제(b. 1984) 작가에게 회화는 결과물이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다. 작가는 삶에 대한 통찰적인 관점을 갖고 이를 ‘그리기’라는 반복적인 예술 행위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전시에 걸려 있는 ‘블랙 스타’는 볼펜으로 검게 채워 나간 흰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인 대형 드로잉 작품이다. 각각의 종이에는 별과 달 모양 여백들이 남겨져 있어 하나의 커다란 밤하늘을 이룬다. 별은 염원과 목표를 표상하지만 그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작가는 밝게 빛나는 별을 텅 빈 공간으로 표현했다. 작가에게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별이 아니라 별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그림’은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의 한 부분을 잘라 내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무작위로 선택된 부분들은 전시장 벽면에 모자이크처럼 걸려 있다. 그리고 자르고 남은 부분들은 맞은 편 설치 작업으로 선보인다. 수많은 스타 지망생 중 선택된다는 것은 동시에 선택되지 못한 존재들이 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에 특정한 하나의 경우일 뿐이며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상기시킨다.
강원제 작가는 ERD 갤러리(부산, 2022), 봉산문화회관(대구, 2021), ERD 갤러리(서울, 2019)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또한 그는 수창청춘맨숀(대구, 2022), 포스코 미술관(서울, 2018), 쿤스트라움(런던, 2018), 크립트 갤러리(런던, 2017), 영은미술관(광주, 2015), 오픈스페이스 배(부산, 2014)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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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b. 1991) 작가는 1980년대 일본의 망가와 아니메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모티프로 회화 작업을 한다. 당시의 만화들은 과거에 만들어졌지만 미래적 설정으로 현재의 모습을 그린다. 또한 만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당대 사회가 규정한 이상적 모습을 가진 동시에 강한 자의식을 지닌다. 이에 흥미를 느낀 김민희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를 디지털 필터링으로 재구성하고, 다시 캔버스로 옮겨와 유화의 물성을 부여한다.
평소 여성 디바나 케이팝 걸그룹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이번 대구미술관에서는 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케이팝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케이팝이라는 산업이 작동하는 몇 가지 특성을 짚어 내 이를 자신만의 시각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케이팝에서 아이돌 그룹은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는다. 이들은 가상과 현실 세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레트로 컨셉으로 과거의 감성을 현시대로 끌어오기도 한다. 김민희 작가는 이러한 케이팝의 세계관이 어떠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영원히 매력적일 것 같으면서도 찰나일 수도 있는 아이돌 문화를 짧고도 영원한 사랑을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의 한 장면으로 표현했다.
또한 김민희 작가는 여성 가수들의 모습을 화면 전면에 내세우는 오늘날의 케이팝 연출 방식을 차용해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을 큰 화면으로 옮겨 내어 작은 디스플레이 기기에서 감상할 때와는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제시한다.
김민희 작가는 실린더(서울, 2021), 아웃사이트(서울, 2020), 합정지구(서울, 2018)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플레이스막3(서울, 2021), BGA(서울, 2021), 뮤지엄헤드(서울, 2021), 사가(서울, 2021), 팩토리2(서울, 2020), 위켄드(서울, 2019)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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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킴(b. 1985) 작가는 대중문화와 같은 하위문화를 비롯해 시각 예술, 종교, 퀴어, 마조히즘적 요소를 넣은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한다. 작가는 듀킴, 허니듀(Huh Need-you), 호니허니듀(HornyHoneydew)와 같이 여러 개의 자아를 만들어 다양한 서사를 펼쳐내면서 불안과 긴장의 감정을 일으키는 작업을 한다. 특히 오늘날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범주에 내재한 이분법적인 구조를 어지럽혀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구현한다.
듀킴 작가는 호니허니듀라는 정체성으로 케이팝 컨셉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음반을 낸 바 있다. ‘퍼플 키스’(2018)라는 케이팝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상 작품은 한국 사회 내 이원론적인 이성애 규범을 비판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아이돌 음악과 안무에서 어떠한 주술적 힘이 깃들어 있음을 느껴 케이팝과 종교를 결합한 작품을 내놓았다.
듀킴 작가는 프래그먼트 갤러리(모스크바, 2021), 오시선(서울, 2021), 아웃사이트(서울, 2020), 테미예술창작센터(대전, 2019) 등의 개인전과 보안여관(서울, 2021), 대안공간 루프(서울, 2021), d/p(서울, 2020), 국립현대미술관(서울, 2020), 일민미술관(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신촌극장(서울, 2021),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9) 등 다양한 퍼포먼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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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b. 1993) 작가 또한 다양한 정체성으로 작품 세계를 펼친다. 현란한 이미지와 텍스트가 가득한 B급 감성의 영상을 통해 오늘날 1인 미디어 환경과 자본을 좇는 한국 사회의 세태를 저속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기괴하게 풀어낸다.
류성실 작가는 ‘체리장’, ‘나타샤’ 그리고 ‘이대왕’이라는 인물로 작품을 전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대왕’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펼쳐 케이팝 콘텐츠가 생산되고 또 팬들에 의해 소비되는 과정을 ‘이대왕’의 세계관에 대입했다. 기존 세계관에서 이대왕은 노인층을 대상으로 불법 효도 관광 상품을 만들어 돈을 벌고자 하는 인물이었다. 대구미술관에서는 ‘이대왕’이 설립한 ‘대왕에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뮤직비디오와 함께 ‘대왕에어 전 대표 수배 중’을 통해 이대왕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시작된 계기를 풍자적으로 전개한다.
류성실 작가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서울, 2022), 탈영역우정국(서울, 2019)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송은(서울 2021), 부산현대미술관(부산, 2020), 대림미술관(서울, 2020), 캔 파운데이션(서울, 2020), 아트 스페이스 보안(서울, 2019), 합정지구(서울, 2018), 플랫폼엘(서울, 2018), 일민미술관(서울, 2018)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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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b. 1989) 작가는 우리 일상 생활 속에 떠도는 매우 평범하고 진부한 이미지들을 가져와 이를 뒤틀고 변형하여 평면과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품으로 작업한다. 작가는 길거리, 공공장소, 대중문화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 안에 숨겨진 집단적 믿음과 그 안에 심어진 통속적 관념을 캐내고 만연한 이미지 속에 숨겨진 내면화된 권력을 포착한다.
이번 대구미술관에서 최윤 작가는 사운드 아트와 영상을 결합해 시장 논리에 잠식된 한국 대중문화 산업을 보여 준다. 작가는 한국이라는 국가가 갖는 전통적, 민중적, 한류적 이미지를 끌어와 거기에 담긴 자랑스럽기도, 부끄럽기도, 열광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만 벗어나고 싶은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케이팝의 상투적 이미지를 가져와 K가 이제 그만 한국을 떠나가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담았다.
최윤 작가는 두산갤러리 서울(2020, 서울),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 스페이스(2017,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0, 광주), 아르코미술관(2019, 서울), 부산비엔날레(2018, 부산),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2018, 광주), 북서울미술관(2017, 서울), 국제갤러리(2017, 서울), 서울시립미술관(2016, 서울)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최하늘(b. 1991) 작가는 현실 세계가 점점 가상 세계와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 가며 달라지는 조각 장르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한다. 그의 조각 작업은 다양한 물질과 사물을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조각에 대한 기성의 인식을 깬다. 동시에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통용되고 있는 질서, 문화 위계, 젠더 이슈라는 통념을 깨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최하늘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관람 시간을 확인해 봐야 한다. 이번 작품은 조각과 음악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연주를 하지 않고 주변의 소음으로만 이뤄진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 사용된 작곡 기법을 조각에 대입했다. 특정 모습만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우상의 아이콘인 스타처럼 아이돌 조각은 커튼에 가려져 있고, 일정 시간에 QR코드로 접속해 관람할 수 있다. 이는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자 조각의 새로운 방법론을 탐구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최하늘 작가는 합정지구(서울, 2017), 갤러리2와 P21(서울, 2022),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서울, 2021), 커먼웰스앤카운슬(로스앤젤레스, 2018)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최근에 참여했던 단체전으로는 일민미술관(서울, 2022), 북서울미술관(서울, 2022), 부산현대미술관(부산, 2022), 갤러리현대(서울, 2021), 리움미술관(서울, 2021), 두산갤러리(서울, 2021) 등이 있다.
대구미술관은 오늘날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알아보고자 ‘Y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미술관은 2012년 이후 젊은 작가(만 39세 이하) 발굴과 육성을 위해 Y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으며 여러 변화를 거쳐 2021년부터 주제전으로 기획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동향과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