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에서는 “소장품으로 움직이기” 전을 2023년 3월 19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다양한 정체성 담론을 동시대적 관점으로 보여 주고자 16명의 작가가 2010년 전후로 제작한 동시대 미술 작품 22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쌓아 온 16명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해 신분, 인종, 성별, 장애 등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대한 여러 생각을 펼친다. 미술관은 이를 통해 서로 다름에 대해 좀 더 이해를 넓혀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서 다루지 않은 나머지 8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상우(b. 1977) 작가의 ‘클린 미’(2014)라는 단편 영화 작품은 주변부에 있는 대상들이 한국 영화에서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그 방식과 내재된 의미를 영화적 기법으로 질문한다. 즉, 작가는 주류 밖에 있는 대상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과 응시를 비판한다. 영상 작품 속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등장한다. 그는 갱생원에서 청소 일을 하며 사회에 다시 나갈 준비를 한다. 작가는 주인공이 깨끗해지고자 하는 청소라는 행위를 보여 줌으로써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해 공감하고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수경(b. 1963) 작가는 장인들의 기준에 실패작이라고 판단되어 폐기된 도자기의 파편을 재조합한 ‘번역된 도자기’ 연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 도자기 파편들을 금박으로 이어 붙여 새롭게 탄생시킨다. 작가는 어떤 기준에서 실패, 슬픔, 상처일 수도 있는 대상을 새로운 맥락에서 ‘번역’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안지산(b. 1979) 작가는 회화를 통해 불안감과 긴장감을 표현한다. 작가는 행위 예술을 펼치기 위해 바다에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네덜란드 예술가 바스 얀 아델의 영상 작품 ‘나는 말할 수 없이 슬퍼’(1971)의 등장인물을 자신의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2014년 세월호와 말레이시아 항공 격추 사건처럼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떠올리며 작가는 아델의 영상에서 하염없이 우는 인물의 이미지를 통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극대화한다.
배영환(Bae Young-whan), '남자의 길-불광동 첫사랑 1', 2007, 버려진 나무와 혼합재료, 105x30x8cm.
배영환(b. 1969) 작가는 버려진 물건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는 대중적 키워드로 한국인의 희로애락과 삶의 애환을 담은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에서 기타는 더 이상 연주되지 않고, 자개장은 더 이상 물건을 수납하지 못한다. 작품은 획일화된 사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남성성을 되돌아본다. 작가가 작품에서 표현하는 남성성은 어떤 힘과 권력을 쥔 대상이 아닌, 긴 세월을 보내고 되돌릴 수 없는 첫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남성성이다.
이상현(b. 1954) 작가의 ‘조선역사명상열전’은 20점으로 이뤄진 연작으로, 그 중 19점이 경기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가는 과거의 흑백 사진이나 한국의 전통 회화에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이상과 현실이 혼재되고 진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작업을 한다.
해당 연작에서 작가는 인사동 헌책방에서 발견한 “조선고전도보”라는 사진 문서를 활용했다. 문서에는 일본이 침략을 목적으로 찍은 조선의 유적지 사진이 실려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외계인이 찍은 기념 사진인 것처럼, 유적지에는 양복 차림의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가는 한국인으로서 겪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역사문화적 상황을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보여 준다.
이불(b. 1964) 작가는 대중문화와 역사, 미래, 테크놀로지, 페미니즘 등 다양한 모티브로 작업을 한다. 이불 작가의 ‘무제’(2008)는 거울과 형광램프를 이용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한의 공간을 펼쳐 낸다. 그 거울 안에는 기계 형상의 구조물이 들어가 있어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이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몽환적인 통로 속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이끌며 원본과 복제 그리고 나아가 그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조동환(b. 1935)·조해준(b. 1972), 두 작가는 부자(父子)사이이다. 유학 시절 조해준 작가는 서신으로 아버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글과 드로잉으로 작업해 볼 것을 제안하면서 지금까지 다큐멘터리 드로잉을 진행하고 있다. ‘미군과 아버지’(2005)는 아버지 조동환 씨가 어린 시절에 있었던 미군부대 내의 경험을 담아낸 것이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 6.25전쟁, 반공 이데올로기 등 격변의 한국 근대사를 거쳐 간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한 개인이자 한국 모두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정정엽(b. 1962) 작가는 개인으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삶과 우리 사회 속 여성의 노동에 집중한 작업을 해 왔다. 전시에 선보이고 있는 3점의 작품들은 ‘지워지다’ 연작으로, ‘붉은 드로잉’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붉은 색으로만 그려진 두더지, 싹, 그리고 심장은 개성을 지우고 익명성을 더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어떠한 생명의 생동감을 표현하고 있다. 심장의 힘줄은 생명의 나무로 이뤄졌으며, 싹은 이제 막 발아해서 힘차게 뻗어나가기 일보 직전 같아 보인다. 어둠 속에 살아가는 두더지는 지면 위로 올라와 햇볕을 쬐고 있다. 정정엽 작가는 눈에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곳곳에 존재하는 것들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