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위 예술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전이 5월 26일부터 7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펼쳐진다.
그 후 전시는 오는 9월 1일부터 2024년 1월 7일까지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그리고 2024년 2월 11일부터 5월 12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해머미술관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당시 새로운 형식의 전위 예술을 펼쳤던 청춘들은 이제 80대가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다. 오랜 기간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국 실험 미술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미술계에서도 크게 조명받는다.
한국 실험 미술은 1970년대 유신 정권 당시 불온한 ‘퇴폐 미술’로 지목되면서 노골적인 문화 검열로 오랜 기간 비주류 예술로 남았다. 1980년대에는 단색화와 민중 미술에 밀렸으며, 최근까지 미술 시장에서 이들의 작품은 판매되기 어려웠다. 실험 미술의 특성상 퍼포먼스나 설치 형식이 많아 시장에서 이들의 작품을 다소 난해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국 실험 미술이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들의 작품은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소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이러한 국내 전위 예술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을 5월 26일부터 7월 16일까지 개최한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로, 2018년부터 이어진 국제적 협력과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전시는 한국, 구겐하임미술관 그리고 뉴욕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소장품을 모아 놓은 것으로,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주요 작가 29명의 작품 95점과 아카이브 자료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9월 1일부터 2024년 1월 7일까지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그리고 2024년 2월 11일부터 5월 12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해머미술관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국가 재건이라는 격동의 시기였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루어진 한국 청년 작가들의 전위적 실험 미술의 역사를 조망한다. 당대 작가들은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한국 미술의 면모를 새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계의 일원으로 그 실천의 영역을 확장했다.
한국의 실험 미술이 탄생한 이유를 알려면 그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한국 전쟁 이후 압축적 근대화를 추진하며 유신체제로 인한 정세 급변, 산업화, 급속한 도시화 등 정치, 사회, 경제적 소용돌이 속에서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한편 1960년대 말에서부터 1970년대 초 사이는 ‘청년 문화’가 형성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청년들은 대체로 서구 문화의 영향 속에서 성장해 일본 문화의 절대적 영향 속에서 살아온 기성세대와 가치 체계와 미적 취향에서 차이를 보였다. 당시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었으며, 시대에 따른 여러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1970년대 젊은이들은 문학, 음악, 영화 등을 통해 ‘청년 문화’를 만들며 기성세대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한국 미술계에 있던 청년 작가들도 기성 사회와 미술에 대한 변화와 저항을 추구했다. 특히 이들은 포화 상태에 이른 앵포르멜 형식을 버리고 비대해진 국전 시스템을 타파하고자 했다. 1960년대 한국 미술계는 누구나 서구의 추상 회화의 한 경향인 앵포르멜 형식을 빌려 작업하면 작가로 인정받았을 정도로 앵포르멜 형식이 만연했다. 또한 당시 국전의 힘은 너무 막강했다. 한국 미술계에서의 성공 여부는 국전 제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국전의 작품 선정 과정에서 여러 비리와 파행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에 반발하여 반(反)예술을 주창했다.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작가의 해프닝 ‘한강변의 타살’(1968)은 이러한 청년 작가들의 정신을 잘 보여 준다. 제2한강교 밑에서 진행한 이 퍼포먼스에서 이들은 ‘문화 부정축재자’, ‘문화 사기꾼’ 등등의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저항 행위를 하다 문구를 불에 태우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했다.
1960-1970년대 한국 실험 미술은 사회의 억압을 타개하고 기존 예술의 형식을 부수려는 시도였다. 이들은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주장하고, 기성세대의 형식주의에 반발하며 기존의 회화,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 오브제와 입체 미술, 해프닝, 이벤트와 영화,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들을 사용했다.
이들 작가들은 또한 파리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과 같은 국제전에 진출하며 해외의 예술적 경향을 자체적으로 소화했다. 당시 국제 사회는 68운동, 반전 평화운동, 페미니즘 등으로 인식의 전환기를 맞이 하고 있었다. 젊은 실험 미술 작가들은 해외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1960-1970년대에 공존했던 미술 운동과의 영향 관계를 국제적 맥락에서 확인하고, 글로벌 미술계의 다원성 확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전시는 6개 소주제로 구성되어 청년작가연립전과 제4집단, 아방가르드협회, ST학회, 대구현대미술제 등 주요 단체의 예술 활동을 살피며 오늘날 한국 현대 예술의 원형을 탐구한다. 각 주제마다 다루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전위적 실험 미술의 양상들을 소개한다.
둘째, ‘도심 속, 1/24초의 의미’에서는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시행한 실험적인 시도들을 조명한다.
셋째, ‘전위의 깃발아래 –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에서는 1970년대 초 실험 미술 그룹과 개인들의 주요 활동을 소개한다.
넷째, ‘“거꾸로” 전통’에서는 한국의 전위 미술과 전통의 특수한 관계를 다룬다.
다섯째, ‘‘나’와 논리의 세계: ST’에서는 한국 미술에 개념적 설치 미술과 이벤트를 맥락화한 전위 미술 단체 ‘ST(Space&Time)’ 학회(1971-1981)의 활동상을 소개한다.
여섯째,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에서는 당시 청년 작가들의 돌파구가 되었던 해외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품들과 한국 실험 미술의 국제적 면모를 선보인다.
다만 전시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전시 서문은 당대 한국 실험 미술이 “1970년대 저항 문학, 가요, 영화 등과 함께 ‘청년 문화’를 형성하며, 당대의 사회,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 나갔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당시 한국 사회와 ‘젊은 그들’의 창작에 미친 영향 관계에 대해 주목하며, 이들의 작품이 오늘의 삶과 미술에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였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회적 맥락 속에 이들의 활동이 어떻게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들의 예술 활동이 당시 음악, 영화, 문학 등 청년 문화와 어떠한 연결점을 갖고 함께 발전하게 되었는지 더 많은 자료와 설명이 함께 제시되었다면 더 풍부한 전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전시는 한국 실험 미술이 갖는 어려운 개념들을 일반 관람객에게 충분히 이해시키기에 설명이 부족했다. 당대 복잡했던 사회상과 한국 실험 미술 작가들의 이야기했던 다양한 개념들이 전시 내에서 다각적으로 소개되었으면 한국 실험 미술을 모르는 일반 관람객들의 이해를 더 잘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당대 청년 작가들의 전위적 성격이 오늘날의 미술에 어떠한 영향 관계를 갖는지 알 수 있도록 한국 실험 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비교하고 연결점을 찾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시는 그동안 외면되었던 한국 실험 미술 작가들의 활동을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도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를 통해서 이들의 예술적 가치와 의미가 글로벌 미술사 맥락에서 제대로 재조명되길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