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오직 사진만을 모아 전시하는 독특한 비엔날레가 있다. 바로 올해 9회를 맞이하여 9월 11일부터 11월 12일까지 두 달간 개최되는 대구사진비엔날레다.
비엔날레라고 하면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국제적 규모의 현대 미술 전시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한국에는 오직 사진만을 모아 전시하는 독특한 비엔날레가 있다. 바로 올해 9회를 맞이하여 9월 11일부터 11월 12일까지 두 달간 개최되는 대구사진비엔날레다.
한 도시에 자리 잡아 개최되는 비엔날레는 해당 지역만이 갖는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시가 1995년부터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광주비엔날레와 2002년부터 항구도시인 부산에서 개최되어 온 부산비엔날레이다.
한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대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진 장르에 주목해 2006년부터 타 비엔날레와는 차별성을 둔 독자적인 행사를 진행해 왔다. 그렇다면 대구는 왜 하필 사진에 주목한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일까?
한때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사진의 수도는 대구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국내에서 대구 사진계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국내외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사진작가가 활동하고 있지만, 1960년대까지는 대구가 한국 사진계를 선도했기 때문이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의 사진 역사는 1910년대 초 일본인들이 상업사진관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주도한 한국 사진의 역사는 대구 출생의 최계복(1909~2002) 작가로부터 출발했다.
최계복 작가는 1930~1940년대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1세대 사진작가로, 일본 교토에서 어깨너머로 사진술을 배워 국내로 들여왔다. 그는 1930년대 중반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대구 아마추어 사우회’를 조직해 당시 일본인이 주도하던 사진 단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대구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자생하며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넓혔다.
나아가 최계복 작가는 1947년에 한국 최초의 사진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전문대학교 수준이었던 한국사진학원을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대구 및 경북 지역에 다양한 사진 학원이 설립되어 많은 후학을 양성하면서 한국 사진계의 성장 발판이 마련되었다.
1930년대까지 한국 사진계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회화주의적 사진 즉, 살롱 사진이 주를 이뤘지만 1945년 이후 해방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그 경향은 크게 바뀌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 국내 사진 운동은 조형성을 강조하던 살롱 사진의 경향을 반성하고 사회 기록에 대해 새로 자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당시 작가들은 단순히 일상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독창성을 반영해 사회적, 현실적 문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 대구 사진계는 조형주의 계열과 새로 등장한 리얼리즘 계열이 끊임없이 논쟁하며 더욱 발전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있었다.
특히 당시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구왕삼(1905~1977) 작가는 한국 사진의 독자성을 모색하기 위해 대구 지역의 사진 이론을 전국적으로 확장시켰으며, 많은 작가들이 해외 공모전 참가를 통해 한국 사진의 위상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1970년대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많은 인구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타 지역으로 이동하던 시기였다. 동시에 신헌법으로 예술가들이 제재를 받던 시대였다. 대구 사진계의 위상은 1970년대를 거치며 위축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한국 사진은 다양한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던 1990년대 초반에는 타 지역 대학보다 더 많은 사진학과가 대구 지역에 개설되면서 젊은 신진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해 대구 사진계에 다시금 활기가 돌기도 했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국내외에서 지역 간 이동이 용이해지고, 문화 예술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사진 수도로서 대구의 위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작가들이 특정 지역에서 벗어나 기존의 사진 개념이나 표현 방법에서 탈피하여 작업하는 등 사진 예술이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설립된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예술계 내에서 대구가 갖는 독자적인 정체성과 한국 사진의 역사를 보여 주고자 한다.
Poster image of the 2021 Daegu Photo Biennale: Missing Agenda (Even Below 37.5).
Artwork image: Erwin Olaf, April Fool 2020, 11:30 am, 2020, Digital C-Print, 133x1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Daegu Photo Biennale Foundation.
2005년 아시아 10개국 3만여 명이 참가한 전시 겸 페어 ‘대구 이미징 아시아(Imaging Asia in Daegu)’는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출범시키는 도화선이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이 전시를 모태로 대구의 사진 전통을 계승하는 첫 비엔날레 ‘다큐멘터리 사진 속의 아시아(Imaging Asia in Documents)’를 개최해 대구 사진의 주요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키워드로 아시아의 사진사를 다루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그 이후 사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제를 다뤄 왔다. 2008년 제2회 비엔날레는 한·중·일 현대 사진과 100년 전 사진을 키워드로 개최되었으며, 2010년 제3회 비엔날레에서는 환경 문제를 주제로 한 사진과 북유럽의 사진을 소개했다. 그 이후에도 대구사진비엔날레는 확장된 개념의 예술로서 사진을 모색하고 사진의 유한성을 탐구하는 등 다양한 사진 예술 담론을 형성해 왔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하는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이번 전시의 예술 감독으로 박상우 서울대 미학과 교수가 내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박상우 교수는 사업계획서가 확정되는 대로 정식 선임될 예정이며 대구의 사진사를 바탕으로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사진 예술을 탐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