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erior view of Arario Gallery Seoul. Courtesy of the gallery.

1989년 천안에 개관한 아라리오갤러리는 2006년 4월 6일 소격동의 옛 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해 서울 지점을 처음 열었다. 이후 2014년 삼청동으로 이전한 서울 지점은 8여 년간 이곳에서 운영된 후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하기 위해 2022년 1월 중순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공사로 인해 지난해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지하 공간에서 임시로 운영되었던 갤러리는 미술관 바로 옆, 사무실로 쓰이던 기존 건물을 개조하는 기나긴 공사 끝에 지난 2월 1일 드디어 지상 6층, 지하 1층 공간을 오픈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새 건물에서 재개관한 기념으로 전속 작가인 권오상(b. 1974), 이동욱(b. 1976), 김인배(b. 1978), 안지산(b. 1979), 노상호(b. 1986) 등 작가 5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낭만적 아이러니(Roman Irony)”전을 2월 1일부터 3월 18일까지 선보인다. 

국내에서 전속 작가제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면 아라리오 갤러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아라리오갤러리는 2005년 국내에서는 거의 전무했던 전속 작가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작가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갤러리의 역할을 재정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개관전으로 5명의 전속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아라리오갤러리의 중요한 행적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서울 지점에서의 새 출발에 대한 기대를 담은 것은 아닐까 한다.

Gwon Osang, ‘Four-Piece Composition Reclining Figure,’ 2022-2023, Archival pigment print, mixed media, 180 x 90 x 11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권오상과 이동욱 작가는 아라리오갤러리가 처음 전속 작가 시스템을 도입해 10여 명의 작가와 파격적인 전속 계약을 맺었던 2005년에 영입되었다. 얼마 뒤 김인배 작가도 갤러리에 소속되어 서울 지점이 삼청동 위치로 옮기면서 그의 개인전으로 재개관을 한 바 있다. 안지산 작가와 노상호 작가도 아라리오갤러리와 꾸준히 활동해 온 작가들이다.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그리고 안지산 작가는 한국 미술 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하며 다양한 대안 공간이 생기고 공공영역에서 다양한 지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2000년대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작가들이다. 반면, 노상호 작가는 2010년대 신생 공간이 폭발적으로 생겨나던 시기에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다섯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프리드리히 슐레겔(F. Schlegel, 1772–1829)의 ‘낭만적 아이러니’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이는 예술 양식, 특히 문학에서 말하는 반어(反語) 효과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슐레겔은 자기 파괴와 자기 창조, 양극에 위치한 사유를 자유롭게 오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자체에 주목했다.

예술에서 이러한 갈등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절대적이거나 완전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전시는 이러한 슐레겔의 생각을 차용해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자기 논쟁을 넘어서서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예술로 향하는 참여 작가 5인의 작업을 조명한다.

Exhibition view of Gwon Osang’s artworks in “Romantic Irony" at Arario Gallery Seoul. (February 1, 2023 - March 18,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gallery.

권오상(b. 1974) 작가는 사진 매체와 같은 평면 이미지를 활용하여 조각의 개념을 확장하고 나아가 조각 장르의 형태를 끊임없이 실험해 왔다. 작가는 인화된 사진을 수백 장씩 출력해 꼴라주 방식으로 사람, 동물, 물건 등을 조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권오상 작가는 갤러리 5층 공간에서 총 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수백 수천 장의 이미지를 모아서 입체적 형상을 구축하는 권오상 작가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분절된 이미지를 만든다. 이러한 특성을 통해 작가는 조형적 실험뿐만 아니라 조각이 내포하는 공간을 독특한 방식으로 실험한다.

권오상 작가는 이번에 20세기 현대 조각의 거장인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조각에서 영감을 얻어 그들의 작품을 오마주 했다. 작가는 현대 조각의 거장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현함으로써 인체와 여러 사물들의 유기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를 탐구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동시대 조각을 사유했다. 

Lee Dongwook, 'Slide,' 2023,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이동욱(b. 1976) 작가는 3층 공간에서 8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그는 자신을 표상하는 15센티미터 크기의 벌거벗은 인물상을 만든다. 이러한 소형 인물들을 중심으로 작가는 개인의 관심사를 표현하거나 현실에 대해 고발하며 무엇보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통찰한다.

최근 작가는 인간을 둘러싼 건축 구조, 기하학적 구성물 등 여러 인공적 공간에 관심을 갖고 이러한 공간을 구성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생각을 펼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인간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물질과 차가운 느낌의 알루미늄을 여러 형태로 대비시킨다. 특히 두 물질은 벌집 모양의 허니콤 패널과 같은 구조물 속에 공존한다.

소형 인물상은 차가운 허니콤 패널과 합체하기라도 한 듯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전시장 중앙의 미끄럼틀 형태의 구조물은 알루미늄 판뿐만 아니라 피부와 같은 물질로도 만들어져 있다. 이는 인공적 구조물, 자연, 따뜻할 것 같지만 차갑고도 끈적한 인간의 긴장감 넘치는 공존을 그리며 인간 사회에 대한 작가만의 통찰을 표현한다.

Exhibition view of Kim Inbai’s artworks in "Romantic Irony" at Arario Gallery Seoul. (February 1, 2023 - March 18,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gallery.

김인배(b. 1978) 작가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에 의문을 던지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인체를 변형하여 기존의 인식을 깨거나 움직이지 않는 입체 작업을 하여 고정된 상태 속 움직임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어 우리의 고정 관념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 색다른 감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갤러리 1층에 전시된 김인배 작가의 작품 4점은 입구에 “3개의 안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접촉’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시장에 있는 작품들은 다양한 의미에서 접촉이 불가하다. 

우선 전시장 앞 문구에 있는 안개는 셀 수 없는 대상이다. 또한 경기도 파주의 지도를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 5.6미터까지 쌓아 올린 작품 ‘안개’(2023)는 읽을 수가 없다. 정형과 비정형으로 만들어진 2개의 프로펠러 작업 ‘변신’(2023)은 고정되어 있으며, 분필의 재료로 만들어진 칠판과 칠판의 재료로 만들어진 분필로 이뤄진 ‘칠판과 분필’, 앞면과 뒷면, 바깥과 안쪽이 마주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거울’이라는 작품이 전시 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접촉이라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을 교란시키며, 함께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Exhibition view of Ahn Jisan’s artworks in "Romantic Irony" at Arario Gallery Seoul. (February 1, 2023 - March 18,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gallery.

안지산(b. 1979) 작가는 자신의 회화 작품에 어떠한 특정한 상황을 설정하여 불안을 그려 낸다. 최근 작가가 부여한 특수 상황은 ‘폭풍’이었다. 작가는 다가오는 폭풍을 예감했을 때, 그리고 들이닥친 폭풍을 마주했을 때 우리 내면에 잠재하는 불안감과 불길함을 끄집어내 눈앞에 펼쳐 낸다.

지난번 개인전에서 돌산에 불어닥친 비 폭풍을 그려 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눈보라를 헤치며 사냥과 채집을 하는 상황을 그렸다. 폭풍이 그러하듯, 사냥과 채집은 자연 생태계의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긴장감과 공포를 자아내는 극적 상황이다. 작가는 이러한 두 개의 극적 상황을 함께 놓음으로써 일생 동안 우리가 마주하는 모순적인 순간들을 극대화시킨다.

작가는 제어 불가한 거대한 자연의 숭고미와 경외감을 표현하면서도 살기 위해 눈보라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 부딪쳐야만 하는 순환 관계를 표현함으로써 깊은 불안 그리고 긴장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Exhibition view of Noh Sangho’s artworks in "Romantic Irony" at Arario Gallery Seoul. (February 1, 2023 - March 18,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gallery.

갤러리의 4층에는 노상호(b. 1986) 작가의 새로운 연작 ‘Holy(홀리)’가 전시되어 있다. 노상호 작가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 가상 세계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편집해 작가만의 이야기를 불어넣거나 새로운 구성으로 재조합해 감각적인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디지털 세계가 점점 커져 가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전작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번 연작에서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혼합하여 보여 준다.

가상에 존재하는 이미지이더라도 이는 모두 현실에서 출발한 것이며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모두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 세계의 이미지와 디지털 세계의 이미지는 다른 방향으로 소비된다. 작가는 이러한 점을 주목해 작업을 했다.

그는 또한 작품에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기도 했다. 작가는 AI(인공 지능) 생성 이미지 도구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가장 고전적인 장르인 회화로 표현한다. 매끈한 디지털 화면을 표현하기 위해 에어브러시를 사용하고, 특수 안료나 석고를 활용해 표면에 두께감을 주어 고전적 회화의 특성과 디지털 화면의 특성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