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평 작가, 한국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각의 틀을 깨다 - K-ARTNOW
김지평 (b.1976) 대한민국, 서울

김지평은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1999)하고 동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석사학위를 취득(2001)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개인전 (요약)

김지평은 2001년 경인미술관 (서울, 한국)에서 첫 전시를 했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김지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는데 이 시기에는 주로 책가도, 문자도 등의 민화 양식, 단청의 장식성 등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2013년《찬란한 결》 (가나 컨템포러리, 서울, 한국) 전시를 계기로 동양화의 재료나 화론 등을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평안도 平安圖》 (2015, 아트컴퍼니, 서울, 한국),《재녀덕고 才女德高》 (2017, 합정지구, 서울, 한국),《기암열전 奇巖列傳》 (2019, 갤러리 밈, 서울, 한국) 등 개인전을 개최했는데 가족사, 분단, 여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작가의 관점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룹전 (요약)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아트스페이스풀(서울, 한국), 펑시엔 미술관(상하이, 중국), 이응노 미술관(대전, 한국), 인디프레스갤러리(서울, 한국)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수상 (선정)

제 21회 송은미술대상전 참여작가 20인에 선정되어 전시에 참가하였다.

작품소장 (선정)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서울 시립미술관(서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천, 한국), 가나아트 갤러리(서울, 한국), 하나은행(서울, 한국), 아모레 뮤지엄(서울, 한국), 한국 도자기(청주, 한국) 등이 있다.

주제와 개념

김지평은 동양화 혹은 한국화의 기법과 양식을 통해 현대의 세계관을 이야기해왔다. 김지평은 “동양화를 ‘전통의 현대화’로 번역하려는 현대미술의 오래된 관성과 ‘동시대’라는 시간 개념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의문을 품고, 오히려 더 과거로 회귀하는 ‘의도적 시대착오’를 감행한다.

작가는 전통의 기표만을 차용하거나 반대로 전통에 잠재된 의미를 현대적으로 갱신하는 것, 둘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전통회화, 산수화, 민화 등 동양 전통미술에서 고착화된 관념과 규칙을 직시하고 이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리고 여기에 미술사적이자 사회사적으로 배제되었던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김지평은 2001년부터 2012년까지는 김지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이때는 주로 책가도, 문자도, 화조도 등의 민화 양식이나 단청의 장식성을 현대의 시선의 재구성하는 작업을 전개했다.

이는 작가가 일찍이 가져왔던 혼종성 즉 ‘전통-현대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민예적인 요소와 동시대예술의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의 발현이었다.

2013년 개인전 《찬란한 결》(가나아트 컨템포러리, 서울)을 계기로 동양화의 화론이나 재료 등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는 2007년 개인전 《border life》(인사아트센터, 2007)에서 보여준 관념 산수에 오늘날의 한국적인 진경(군사시설이나 고층 아파트)을 끼워 넣은 ‘미채산수’ 연작이나 2010년 무렵 동양의 신화, 설화, 역사의 서사를 작품으로 끌어오는 시도 등에서 이미 전조를 보였다.

“무엇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는, 오히려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연결된다.”

이후 개최된 개인전 《평안도》(2015, 아트 컴퍼니 긱, 서울), 《재녀덕고》(2017, 합정지구, 서울), 《기암열전》(2019, 갤러리 밈, 서울)과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작가는 하나의 ‘스토리텔링’ 속에 작품들을 엮어 전시마다 독립된,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문학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민담, 신화, 여행기, 고문헌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참조하고, 주류 미술사에서 배제되었던 부적, 무속화, 불화 등의 전통도 작업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또한 작가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주요한 주제였던 ‘타자화되고 배제되어온 여성과 여성의 시선’이라는 문제가 이들 개인전에서 더욱더 적극적으로 다루어진다. 최근 개인전 《먼 곳에서 온 친구들》(2020, 보안여관, 서울)에서는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 욕망과 유희의 주체라는 위치에 올라선 여성이 우리의 과거와 당시 예술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하는 매개체로서 더욱 직접적으로 움직인다.

또한 재야의 미술사, 동아시아 시각문화의 자연관이나 탈식민적 상상 등 작가의 관심 주제를 두루 보여주며 자신의 넓은 예술의 지평을 선보였다.

형식과 내용

김지평은 무조건적인 과거의 변용, 전통의 현대화는 경계한다. 오히려 과거의 시선으로 현재를 살피고 ‘더 옛것’으로 돌아가는 의도적인 시대착오를 통해 현대성을 반추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가의 주제적 특징은 그가 모색해온 방법론 혹은 매체의 특성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평안도》에서 이전에 하지 않았던 금니 그림을 그리고, 《기암열전》에서는 산수화의 가장 작은 단위인 괴석에 주목해 목탄, 먹, 석채, 경면주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작가가 지속해서 다루어온 장황, 즉 두루마리, 족자, 병풍 등 동양화 전통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형식을 《재녀덕고》와 《먼 곳에서 온 친구들》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며 동양화의 물리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실험한다.

개인전을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에서 영상 작품이나 리서치 과정에서 수집한 사물을 함께 전시해 감상 맥락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관객이 작품을 보는 데 작동하는 ‘물리적’ 조건들, 즉 표구의 배치, 시선, 틀을 다변화한다.

이렇듯 김지평은 전통, 동양, 아시아 등의 주제와 매체를 향한 상투적인 기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기를 추구한다. 그의 작업이 전통의 현대화라는 말로 요약되지 않는 이유이다.

지형도와 지속성

2000년대 중반은 전통 그림의 양식을 빌려 작품을 전개한 젊은 작가들이 갤러리와 미술 저널리즘, 대안공간 등의 주목을 받던 시기이다. 이후 약 2008년쯤까지 젊은 작가들의 전통문화에 관한 관심이 높았고, 미술시장에서도 전통양식을 차용한 현대회화가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흐름은 대중적 유행으로 이어져 민화 교실이 확산되는 등, 예술계 안팎으로 민화 특히 책가도가 하나의 장르회화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당시 김지혜로 활동하던 작가는 ‘책가도 작가’로 이름을 알리며 2007년에 인사아트센터에서 책가도를 위주로 대규모 개인전을 열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약 500여 점이 넘는 책가도를 그렸다는 일화에서 그의 인지도와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김지평이 이러한 인기에 갇히지 않고, 2013년 작업의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은 그가 지닌 진지한 작가적 태도와 작업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시사한다. 김지평은 책가도와 화조도 등으로 이름을 알린 후 ‘전통’ 혹은 ‘동양화’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기획전에 자주 초대되는 작가였다.

그가 작업의 주제와 형식을 확장하고 심화해 나간 이후에는 《산수-억압된 자연》(2019, 이응노미술관, 대전), 《설탕과 소금》(2021, 술술센터, 서울), 《송은미술대상전》(2021, 송은아트스페이스) 등 동아시아의 문화와 미술, 재야의 서사, 종교, 여성 등 다양한 기획전에 참가하는 등 더욱더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지평 작가, 한국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각의 틀을 깨다
A Team

Kim Jipyeong, 'Blood and wine,' 2017, Cinnabar on Korean paper, 88 x 116 cm.

한국화는 격동의 한국사와 호응하며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왔다. 하지만 그 전개 방식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이때부터 한국화는 본격적으로 지필묵 대신 아크릴 물감을 수용하고, 설치나 영상과 같은 장르와 혼합하기 시작했으며, 대중문화를 소재로 차용하는 등 전통성에만 묶여 있던 한국화의 영역을 매체, 기법, 소재적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 전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미술 시장에서도 이러한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열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작가 중 한 명이 김지평(b. 1976) 작가였다.


Kim Jipyeong, 'Still Life,' 2010, acrylic on canvas, 180x70cm.

2013년 이전까지 김지평 작가는 김지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는 책가도, 문자도, 화조도 등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회화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특히 그는 형형색색의 ‘책가도 작가’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07년에 인사아트센터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기도 하고, 당시 500여 점이 넘는 책가도 작품을 그렸다고 하는 일화를 통해 당시 그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2013년에 활동명을 바꾸고 ‘책가도’에서 벗어난다. 2013년 이후에 그는 동양화의 화론이나 재료 등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전개하기 시작해 민담, 신화, 여행기, 고문헌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하며, 그 안에 숨겨진 비주류의 이야기와 외면되던 전통을 작업으로 끌어왔다.


Kim Jipyeong, 'Pyeonan-Do,' 2014, Ink and gold leaf on linen canvas, 130 x 160 cm.

조선 시대 한국 미술계는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의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지평 작가는 거기에서 금기시되어 온 언어를 현대적 맥락으로 새롭게 조명한 작품을 제작한다. 즉, 여성, 성에 대한 욕망, 무속화, 불교화, 재야의 서사 등을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김지평 작가는 단순히 유교와 남성을 비주류 문화의 상대편에 있는 대립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작가는 이러한 이항 대립적 태도를 오히려 한국 전통 미술의 고착화된 관념과 규칙으로 보고 이를 직시한다. 작가는 오히려 양쪽 모두를 동일한 동양적 가치의 연장선상에 두고 비주류라고 여겨졌던 대상, 아직 이야기되지 않은 세계를 작품을 통해 같은 선상에 끌어 올리고자 한다.


Kim Jipyeong, '2020,' 2020, Ink and color on paper, 93 x 106 cm.

김지평 작가는 비슷한 맥락에서 전통을 동시대적으로 해석하려는 지나친 태도에도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리고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여 의도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시대착오’는 ‘동시대’에 대한 믿음 말고는 모두 배제하려는, 현재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장황(粧䌙)을 활용한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장황은 병풍이나 족자에 들어가는 부수적인 장식품으로 각 부분의 명칭이 여성의 옷으로 비유되었다. 예를 들어 아랫부분을 치마, 윗부분은 저고리, 옆 띠는 소매라고 부르는 식이다. 작가는 본래 병풍이나 족자에 들어가는 회화를 없애고 그 안을 이 장황으로 채워 넣는다.


Installation view of 'Neungpamibo (능파미보(凌波微步)-숙선, 호연재, 옥봉, 매창, 사주당, 금원, 청창, 난설헌, 운초, 빙허각’) at "Past. Present. Future," SongEun, Seoul. Photo by Aproject Company.

족자 작품으로 작가는 레베카, 카르밀라, 오들리와 같이 고딕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외모와 옷을 참조해 의인화하였고, ‘능파미보(凌波微步)-숙선, 호연재, 옥봉, 매창, 사주당, 금원, 청창, 난설헌, 운초, 빙허각’(2019)이라는 열 폭의 병풍 작업에서는 조선 시대 실존했던 열 명의 여성 문인들의 글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의 족자와 병풍에는 그림이 부재한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각 여성 주인공들과 어울리는 갖가지 비단 조각이 채워져 있다. 여기서 작가는 회화와 장황 관계를 뒤엎으면서 고전 속에 드러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Kim Jipyeong, 'Gwangbae (光背),' 2020. Gold power and color on paper, 160x240cm.

또 다른 예시로는 비주류 예술품으로 여겨졌던 장식성이 강한 불교화나 무신도 작품도 있다. 작가는 종교화에서 신성은 언제나 장식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오히려 신은 빠지고 장식만 남은 그림을 그린다. ‘광배’(2020)나 ‘선기현알회백환조璇璣懸斡晦魄環照’(2020)와 같은 작품은 장식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신은 그려 넣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가는 신의 부재를 부정적 또는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는 신이 사라져 버린 자리일 수도 있고, 아직 도착하지 못해 빈자리로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처럼 김지평 작가는 주류 역사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 예술가, 전통문화에서 도외시되었던 무속화나 불화, 기록으로만 남은 잊힌 작품 등 전통이라 여기던 문화에서 소외되었던 기법, 형식, 매체, 소재 등을 활용한다. 작가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며 동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Artist Kim Jipyeong. Courtesy of the artist.

김지평 작가는 2013년 “찬란한 결”(가나 컨템포러리, 서울, 한국) 전시를 계기로 동양화의 재료나 화론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을 펼쳤다. 이후 아트컴퍼니(2015, 서울, 한국), 합정지구(2017, 서울, 한국), 갤러리 밈(2019, 서울, 한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아트스페이스풀(서울, 한국), 펑시엔 미술관(상하이, 중국), 이응노 미술관(대전, 한국), 인디프레스갤러리(서울, 한국)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그는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 참여 작가 20인에 선정된 바 있으며,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서울 시립미술관(서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천, 한국), 가나아트 갤러리(서울, 한국), 하나은행(서울, 한국), 아모레퍼시픽미술관(서울, 한국), 한국 도자기(청주, 한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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