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은 불투명성, 변동성, 높은 거래 비용,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규모와 함께 유동성 제한과 규제의 부족으로 오랫동안 투자자들이 기피하는 시장 중 하나였다. 전문가들은 미술의 금융화를 통해 시장이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술 시장은 오히려 점점 더 전문가들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예술과 자본, 둘의 관계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 시장은 다른 금융 상품 시장에 비해 그 규모가 작긴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오늘날 미술품은 더 이상 과거의 귀족처럼 소수의 애호가들만의 사적인 감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대중의 미술 향유를 위한 공공 전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미술품은 수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시장 가치를 지닌 투자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개인은 자신의 욕구와 취향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상품을 사듯 작품을 향유하며 수집하고 투자한다. 많은 컬렉터들은 이제 미술품 펀드 매니저나 딜러가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는 투자자의 마인드로 작품을 바라본다. 과거의 귀족들과는 달리, 오늘날의 컬렉터들은 예술 작품을 구입할 때 과감한 투자를 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의 금융화(financialization) 현상으로 미술품을 상품으로 보게 되면서 미술을 둘러싼 많은 요인들이 변화해 왔다. 미술의 금융화는 예술가의 정체성과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을 재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사회적 지위와 이를 둘러싼 제도 및 정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미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술 시장의 역동성을 반영하여 생산과 판매, 번영과 침체 등 다양한 지표의 등락에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시장성으로 인해 작가를 설명하는 명칭도 달리한다. 예술사적 의미와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모두 갖춘 작가를 우리는 블루칩(Bluechip) 작가라 부르고, 시장에서 떠오르는 작가를 이머징(emerging) 작가라 칭한다. 작가들의 정체성도 달라졌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제프 쿤스(Jeff Koons),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카우스(KAWS)와 같은 미술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들은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스타이자, 기업을 경영하는 CEO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시의 성격도 달라졌다. 많은 미술관들은 박스오피스와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 미술의 대중화를 추구하며 블록버스터 전시를 개최한다. 정부는 미술품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세제 혜택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한다. 이는 물론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제 작품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재정적 성과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매력만 보고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소문과 투자 가치도 고려한다. 미술은 증권과 같은 투자 대상으로서 또는 절세를 가능케 하는 투자 수단으로서 주목할 만한 자산이 되었다.
예술의 성질은 시대에 따라 진화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분명 존재한다. 미술 시장은 불투명성, 변동성, 높은 거래 비용,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규모, 비유동성, 규제 부족으로 인해 오랫동안 투자자들이 기피하는 시장 중 하나였다. 따라서 금융 시장처럼 미술이 금융화되면 미술 시장이 더욱 투명하고 명확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미술 시장은 점점 더 전문가들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술은 이제 다양한 지표를 따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예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미술품 경매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오늘날 경매에서 작품 가격을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미술품 경매 시장은 경매 회사, 소수의 금융가, 대리인 및 중개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불가사의한 곳이 되었다. 판매된 작품의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상업 갤러리와 달리 경매 회사는 작품 가격을 공개해 왔다.
하지만 많은 경매 회사가 1년 사이에 구매자 프리미엄을 여러 차례 인상해 연도별 가격 비교가 어렵게 되었다. 또한, 프리미엄이 많이 붙은 최고가 작품의 가격만 강조하고 팔리지 않거나 철회된 작품은 공개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나아가 크리스티나 필립스 같은 주요 경매사는 2020년부터 경매 카탈로그의 배포를 줄이거나 중단했다. 이러한 모든 요인으로 인해 예술품 가격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Image of 'The Artnet Intelligence Report, Mid-Year Review 2023.' Image by Village Green.
아트넷 인텔리전스(Artnet Intelligence) 보고서에 따르면 경매 시장이 소수의 내부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점점 더 불투명해지면서 고가 작품, 특히 천만 달러 이상에 팔리는 작품의 성과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아트넷의 가격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2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천만 달러 이상에 낙찰된 작품이 금액 기준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 가격대는 전년 대비 총 판매량이 증가한 유일한 가격대였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가 불안정해지면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전한 투자를 추구하는 개인이 늘어나면서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1975년 이후 출생한 초현대 미술 작가보다는 시장성이 확보된 ‘블루칩’ 작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며, 뉴욕, 런던, 중국과 같은 기존의 안정적인 미술 시장이 신흥 시장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경매 시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가격대가 안정적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위주로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프리즈는 최근 뉴욕 아모리 쇼(Armory Show)와 엑스포 시카고(Expo Chicago)를 인수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향후 한국 미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