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최된 아트 바젤 홍콩과 홍콩 아트 위크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아시아권의 컬렉터들과 인사들이 참여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국제 경기가 널뛰기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난 3월 21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되었던 아트 바젤 홍콩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아트 바젤은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전면 대면으로 진행된 페어였기 때문에 미술계의 기대가 더욱 컸다.
홍콩은 지난 10년간 아시아 미술 시장의 거점으로써 굳건한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잦은 락다운과 중국의 국가안보법 시행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겪어 왔다. 이로 인해 국내 몇몇 매체들은 이번 아트 바젤 홍콩의 입지가 2019년 이전에 비해 많이 위축되었다고 평가했다. 판매 결과는 여전히 강력했지만 말이다.
올해 아트 페어에는 전 세계 32개국이 참여했으며, 지난해보다 47곳 늘어난 177개 갤러리가 참석했다. 하지만 갤러리의 수가 최대 250여 개에 달했던 전성기 때에 비하면 규모가 축소되었다. 또한 서구 쪽 블루칩 갤러리들과 유력 컬렉터들이 대거 불참해 다채롭기보다는 아시아 문화권 중심의 페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에서 말한 페어의 위축된 상황은 변화한 홍콩의 정치적 긴장감과 직결된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이번 페어 기간 동안 홍콩의 한 백화점 전광판에 상영되었던 미국 작가인 패트릭 아마돈(Patrick Amadon)의 미디어 작품 ‘No Roiters’는 며칠 만에 철거되었다. 작품에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자들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그보다 며칠 전 홍콩 아츠 센터의 시네마 섹션에서는 시진핑을 ‘곰돌이 푸’로 풍자한 영상 작품이 상영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한 국내 매체에 따르면, 한국에서 취재하러 간 한국 기자들이 현지 미술관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낯선 인상의 요원이 대화 자리에 들어와 내용을 듣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홍콩의 변화한 정치적 상황은 아트 바젤의 분위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갤러리는 “수십 미터 줄을 서며 입장만 30분 넘게 걸리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던 4년 전과는 달랐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해외 매체들은 아트 바젤 홍콩의 분위기를 활기가 넘쳤다고 평가했다. 비록 서구권 컬렉터들의 참석이 줄긴 했지만 이번 페어는 홍콩과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방글라데시에서 온 컬렉터들의 참석으로 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이다.
아트시와의 인터뷰에서 아트 딜러이자 경매사인 시몬 드 퓨리(Simone de Pury)는 이번 홍콩 페어는 코로나 이전보다 에너지도 기대감도 넘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다수의 매체에서는 이번 페어에서 특히 30대, 40대 젊은 컬렉터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 젊은 컬렉터들은 홍콩 미술 시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홍콩 미술계 소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홍콩 아츠 센터의 부관장인 이반 차우(Evan Chow)는 “젊은 컬렉터들은 다양한 장르에 열린 태도로 임하고 있으며 동시대 미술의 최신 동향을 발빠르게 따라가고 있어 이번 행사는 더욱 다채로운 미술 현장을 이루었다. 이들로 인해 이번 페어는 대가들의 명작만큼 동남아시아 미술의 존재감이 컸으며, 아프리카의 두 개 갤러리도 이번 페어에 합류했다”고 전했다.
아트 바젤 측과 페어 참여자들은 행사 기간 동안 좋은 판매 성과를 내놨다. 뉴욕, 런던, 홍콩 등에 진출한 LGDR는 비플(Beeple)의 NFT 영상 설치 작품 ‘S.2122’를 900만 달러(한화 117억 원)에 중국 난징의 데지 미술관(Deji Art Museum)에 판매했다. 하우저앤워스는 한국의 사립 미술관에 로나 심슨(Lorna Simpson)과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의 작품을 판매했다.
하우저앤워스 또한 조지 콘도(George Condo),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와 로니 혼(Roni Horn)의 작품을 판매했다고 전했으며 화이트큐브는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글래드스톤은 알렉스 카츠(Alex Katz)의 작품을 판매했다. 그외에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앨리스 닐(Alice Neel), 카즈오 시라가(Kazuo Shiraga)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이 판매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메가급 갤러리인 국제갤러리도 하종현, 이승조, 박서보, 최욱경과 같은 한국 작가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와 제니 홀저(Jenny Holzer)와 같은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해 월등한 판매 성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화랑은 이배 작가, 학고재는 정영주 작가의 작품들을 판매했으며, 파리 메누르와 다국적 갤러리 페이스를 비롯한 해외 갤러리들에서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M+ Facade. Courtesy of the museum.
홍콩이 지금까지 아시아 미술 시장의 핵심 거점지로서 그 역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작들이 줄줄이 완판되는 아트 바젤 홍콩의 개최지이기만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홍콩이 오랜 금융 허브로서 무관세로 미술품 거래가 가능한 곳이어서도 아니다.
아트 바젤 페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홍콩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핵심 거점지일 수 있는 이유는 행사가 열리는 예술 주간에 여러 미술 기관과 경매 회사 등을 포함한 홍콩 미술계가 다양한 양질의 프로그램을 개최해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홍콩 페어 기간 동안 가고시안, 펄렘 갤러리 등이 있는 패더 빌딩과 하우저앤워스,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스톤 갤러리 등이 몰려 있는 H Queen’s 빌딩에서는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마이클 보레만스(Michael Borremans), 장샤오강(Zhang Xiaogang)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었다.
2021년에 개관해 현재 야요이 쿠사마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는 홍콩의 시각 예술 미술관인 M+에서 개최한 ‘뮤지엄 나이트’에는 미술계 관계자만 2,0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 행사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미술관에서 제공한 프로그램에 크게 만족했다고 전했다.
해당 기간에 홍콩 정부에서는 3월 24일에서 25일 이틀간 뮤지엄 서밋(Museum Summit)을 개최해 국제적인 미술계 인사들을 초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해당 행사를 통해 LA 카운티미술관(LACMA)의 CEO인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 베를린의 신국립 미술관 관장 클라우스 비센바흐(Klaus Biesenbach), 우피치 미술관의 관장인 아이크 슈미트(Eike Schmidt)를 비롯해 태국, 싱가포르, 중국 본토의 다양한 주요 미술계 인사들을 초대하여 미술관의 변화와 미래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을 교류하는 장을 마련했다.
여기에 더해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같은 국제경매사들은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린 아트 위크 기간에 경매 특별전을 개최했으며, 필립스는 M+ 근처에 새 전시장을 차리기도 했다.
이번 아트 바젤 홍콩의 활기는 비단 홍콩만의 성과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언급했듯 이번 행사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 외에도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권의 다양한 컬렉터들과 인사들이 참여해 더욱 활기가 넘쳤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서 방문한 젊은 컬렉터들의 활약이 컸다.
아트 센트럴의 디렉터인 코리 앤드류 바(Corey Andrew Barr)는 30대, 40대 젊은 컬렉터들이 2019년 이후 M+와 홍콩 고궁 박물관 그리고 개편된 홍콩 미술관을 비롯한 홍콩의 여러 미술 기관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최근 아시아 미술 시장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주류 미술계는 아시아 진출을 꾀하고 있다.
소더비는 내년에 홍콩 본사 신사옥을 짓기로 발표한 것과 더불어 현재 국내 최대 경매 회사인 서울옥션 인수를 협상 중이다. 지난해 서울과 싱가폴에서는 대규모 아트 페어가 새로 열렸으며 올해 7월 일본에서는 제1회 도쿄 겐다이(Tokyo Gendai)가 열릴 예정이다. 또한 많은 해외 블루칩 갤러리들이 아시아에 지사를 계속해서 열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 미술 시장은 한국 미술 시장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 전체의 잠재력을 보고 활동 영역을 아시아로 넓혀 나가고 있다. 한국에 자신의 이름으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제이슨 함 대표가 이야기하듯 아시아 미술 시장의 거점이 반드시 홍콩이나, 서울, 싱가포르, 일본 중 한 곳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미술 시장 거점은 파리, 베를린, 런던이며, 미국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미술 시장이 발달해 있듯, 아시아에도 다양한 허브가 존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다만, 여러 전문가들의 언급과 같이, 한국과 다른 아시아 지역들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핵심 거점으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와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예술 공간과 갤러리 등 다양한 제반 시설과 함께 시장 인프라를 갖추어 다방면에서 지역 미술계를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