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과 중심의 유동성에 대한 탐구 - K-ARTNOW
김태동 (b.1978) 대한민국, 서울

김태동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2007)하고 동대학원에서 사진학과 석사학위를 취득(2013)했다.

반 구성적 사진 그리고 인간과 풍경의 경계

개인전 (요약)

심야의 도시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들을 촬영한 ‘데이 브레이크'(2011~ ) 시리즈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2012년 갤러리룩스(서울, 한국)와 2013년 일우스페이스(서울, 한국)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9년 아마도예술공간(서울, 한국)에서 개최한 아마도사진상 수상전과 2020년 유아트스페이스(서울, 한국) 개인전에서는 전쟁을 모티프로 한 ‘강선’ (2015~ ) 시리즈와 ‘플라네테스’ (2017~ )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룹전 (요약)

문화역서울284(서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서울, 한국), 하라미술관(도쿄, 일본), 울렌스현대미술센터(베이징, 중국), 아트선재센터(서울, 한국),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서울, 한국) 등의 기관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하였다.

수상 (선정)

제6회 아마도사진상(아마도예술공간, 한국), 제4회 일우사진상 전시 부문(일우재단, 한국)을 수상했다. 제4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KT&G 상상마당, 한국) 최종 3인에 선정되었다.

작품소장 (선정)

경기도미술관(안산, 한국), 스미스칼리지미술관(매사추세츠, 미국), SK건설(서울, 한국), 일우재단(서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전쟁기념관(캔버라, 오스트레일리아),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한국)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주제와 개념

김태동은 경계에 위치한 공간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비일상적인 분위기의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는 작품을 위한 특별한 소재나 주제를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 주변에 있는 것을 주의 깊게 보며,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할 뿐이다.

그가 포착하는 경계는 도심과 변두리 사이의 공간이기도 하고 낮과 밤 사이의 시간이기도 하다. 분단된 남북의 접경 지역이거나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역사가 될 때도 있다. 어떤 종류가 되었든 경계에 있는 장소라면 불안하고 어색한 공기가 부유한다.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끝없는 별이 있다.

“독창적인 사진 자체는 없지만 독자적인 시선과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며,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같은 사진일 수도, 전혀 다른 사진이 될 수도 있다.


김태동은 새벽의 도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느낌을 표현한 ‘데이 브레이크’(2011~ ) 연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자정이 지난 시각, 인공조명만이 밝게 비추는 도시는 활발한 낮의 일상과는 다른 무대가 된다. 작가는 밤의 서울을 배회하며 적절한 장소를 선정하고, 그곳에 우연히 등장한 행인을 섭외해 포즈를 요청했다. 특출난 사연이랄 것 없이 평범하게 밤의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이다.

‘데이 브레이크’ 연작에서 사진 속의 인물과 공간은 기묘한 대치를 이루고 있으며, 낯선 긴장감과 불편함이 섣부른 이해를 가로막도록 틈을 벌린다. 완벽하게 팽팽한 대치 상태가 주는 날카로운 감각은 어떠한 의미도 전달하지 않지만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포즈는 고정되어 있지만 일렁이는 눈동자로 도시의 안과 밖을 두리번거리는 듯한 인물들의 사진은 선명한 밤의 초상이다.

DMZ 프로젝트 참여를 계기로 작업한 ‘강선’(2015~ ) 연작에서는 경원선 일대 사람들의 삶과 전쟁의 잔흔을 기록했다. 〈강선〉이 전쟁 후에 남겨진 미지의 일상을 기록했다면 〈플라네테스〉(2017~ ) 연작은 전쟁 유적지의 적막한 단상을 별과 함께 시적으로 담고 있다. 천체 운동을 추적하는 장치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찍으면 정지된 사물이 별의 이동 궤적만큼 흔들리고, 움직이는 별은 꼼짝없이 멈추게 된다. 영원한 우주와 유한한 인간의 흔적이 함께 찍힌 사진은 수많은 결의 시간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 포개어 놓는다.

김태동의 사진에는 항상 스산한 긴장감이 감돌고, 무슨 일인가 벌어질 듯한 조마조마함이 도사리고 있다. 돌연 나타나 정지된 화면 속을 헤매는 유령은 어딘가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추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을 보는 관람자와의 거리도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멀찍이 서서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사진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은 상상에 맡겨둔다.

형식과 내용

사진 매체에 당연하게 따라붙는 수고로움과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어도 피할 수 없을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을 떠올린다면, 사진작가에게 공들인 사전 준비는 제법 필수적이다. 하지만 김태동이 목표하는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것에 비하면, 그리고 그 결과물이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직관적인 것에 비한다면 그의 작업 계획은 지레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집요하다.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거나 지도를 펼쳐 구체적인 이동 경로를 계획하고, 대상지에 대한 여러 이미지를 수집하며 역사적 장소의 최대한 많은 정보를 조사한다. 작업 노트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촬영의 과정과 작업 결과도 자세하게 기록하여 정리해 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의 작업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시각적인 느낌으로부터 온다.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많은 이미지와 미리 촬영해 놓은 사진, 실제 장소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직접 보고, 이끌리는 것을 계속 따라가며 원하는 느낌에 가까워질 때까지 쫓아 나간다. 특정한 작업 개념을 설정하기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서 영감받는다.’

인물들의 강렬한 존재감 때문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김태동의 사진에서 가장 먼저 구축되는 것이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위치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애초에 작가는 작업의 초기부터 공간에 주목해 왔다. 실내 수족관을 촬영한 〈탱크〉(2007), 인위적으로 조성된 거대한 공간들을 담은 〈맨-메이드〉(2008), 뉴욕 한인타운 플러싱의 풍경과 사람들을 찍은 〈시메트리컬〉(2010) 등은 모두 도시 공간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장소를 포착한 연작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들이 어떤 의미인지, 본질은 어떤 모습인지 찬찬히 관찰하고 싶다.”

공간과 함께 그곳에 포섭된 인물이 중요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플러싱에서의 작업부터다. ‘도시 안 대부분의 것들이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물도 찍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때로는 인물 사진 한 장이 복잡한 내용과 상황을 단번에 보여주는 ‘돌파구’가 된다고 김태동은 말한다. 작가의 끈질긴 시선은 사진이 포착하고 있는 인물과 도시의 본질을 면밀하게 꿰뚫어 본다.

지형도와 지속성

김태동은 견고한 사진의 기본기 위에 자신만의 표현적 역량을 지니고 있는 사진가이다.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끌어내는 데에 김태동은 동시대의 주요한 사진작가들 가운데에서도 차별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 작가는 사진의 무대가 되는 공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물 또는 장소에 과감히 다가가 현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간다.

특유의 긴장된 화면이 가진 시각적 힘은 탁월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스트레이트 하게 포착하면서도 기묘한 이야기가 담긴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작가적 능력이 과연 뛰어나다고 하겠다.

10여 년 전, 동시대 미술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정례전 《젊은 모색 2013》에서는 설치와 영상 등을 주조로 다양한 미술 형식을 활용하는 작가들이 두드러지게 선정되었다. 9명의 참여 작가 중 순수한 정통 사진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는 김태동이 유일했다. 한국 사진계는 물론이고 언제나 분주하게 변화하는 미술 현장에서도 김태동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데이 브레이크〉와 〈브레이크 데이즈〉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젊은 작가는 이제 40대 중반의 중견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거쳐 제시되는 일상의 세계는 여전히 도발적인 장소로 느껴질 것 같다. 김태동이 보여줄 새로운 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주변과 중심의 유동성에 대한 탐구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신혼부부나 하루 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를 사이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내게 당연한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상대방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문제가 언제나 상대방 때문에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내가 느끼는 황당함만큼 상대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무엇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이상하게 느끼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뿐일 리는 없겠지만,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따라서 다른 경험이 축적되어 온 것이 중요한 변인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김태동 작가의 는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환경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서울의 북서쪽 부도심 지역에서 태어나서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곳은 작가의 고향이며, 당연함의 기준이다. 

작가에게 가장 익숙한 곳인 그 지역은 한 번도 서울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곳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겐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중 어떤 이는 매일 출근을 위해서 서울의 중심으로 이동을 하면서 언젠가는 그 곳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어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익숙해져버린 동네를 떠나는 것보단 그냥 그 곳이 특별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위로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느끼는 고향에 대한 익숙함은 이런 상반된 기대와 적응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리라. 

그의 머릿속에 그 지역을 관통하는 대로(大路)에서부터 작은 골목하나까지도 완벽한 그림이 어렵지 않게 그려지는 것처럼, 그의 마음속엔 거기에 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대한 심리적 지도도 들어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그 곳에 있었던 교회 건물을 기억하는 것처럼,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고등학생이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고 뭐가 되고 싶어 하는지는 물론이며, 검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당구장 주인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도 알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긴다면, 무릇 외형과 내면을 아우르는 이해를 지녀야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익숙함이 발휘하는 미덕은 무심한 듯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본질로 파고 들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 점이다. 그가 구사하는 관점의 기술은 지형지물과 인간, 또는 겉과 속을 관통한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그 곳 사람으로 만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험과 기억들이 그에게 그런 혜안(慧眼)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그 지역은 곧 작가 자신을 만든 무대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삼들 역시 작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지역의 모든 지형지물에 대해서 작가가 느끼는 친숙함은 짧은 순간의 부딪힘만으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을 통해서 기억과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주인공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주변인이다. 김태동의 사진에 등장하는 그 지역과 사람들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주변 또는 주변인으로서의 불안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담아내는 작가의 시각은 과거에 경험한 변형과 변모, 즉 현재를 있게 한 궤적을 함께 추적함으로써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바라본다. 지은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뾰족한 건물은 화려하고 세련되기보다는 어딘지 남루하지만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 있다. 한껏 멋을 내고 허공을 응시하는 젊은이는 오늘도 주변과 중심의 사이 어딘가를 서성이겠지만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작가가 주변도시에서 살아가는 주변인에 대해서 가지는 애증의 교차점을 잘 드러낸다. 

만일 김태동 작가가 익숙함의 미덕에만 머물고자 했다면 아마도 그의 작품은 자신의 고향을 배회하면서 쓴 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구사한 두 번째 관점의 기술은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당연히 거기 있다고 여기던 건물과 골목 사람들을 마치 타인의 시각을 따라 다니는 것처럼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 것이다. 멀리서 조망하는 거리 풍경에서 시간과 공간이 기묘하게 중첩되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에선 그들의 부유하는 욕망이 감지되는 이유이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촘촘하게 다시 바라보기를 시도함으로써 작가는 익숙함이 범할 수 있는 인식의 오류를 뛰어넘고자 하였다. 

고정된 관점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인식을 성숙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주변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인 우리의 삶의 다중성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주어진 환경 앞에서 도전하거나 순응한다. 그가 주목하는 인간의 욕망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의지가 아니라, 한 자리에 머물면서도 끊임없이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는 불안정함 자체이다. 그 꿈틀거리는 욕망이야 말로 주변과 중심을 넘나들고 우리의 내일을 오늘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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