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Perceptual Mirror’는 자신의 몸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팽팽하게 당겨진 줄과 LCD 유닛들로 이루어진 거울에 비추어진 몸은 잡으려할 수록 저 멀리 달아나는 듯하다. 스틸 프레임 안에 계층을 이루며 수직으로 배열된 줄에 프린트 된 몸의 일부는 관객을 향해 손짓한다. 연기하는 손들은 거의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잡아당기거나 튕겨보고 싶은 줄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중층적 표면을 이룬다. 수화를 하는 듯, 그림자놀이를 하는 듯 여러 제스추어를 보여주는 손들은 유령처럼 출몰하는 실재의 환영처럼 보인다. 그것을 애써 헤쳐 보았자 검거나 하얀 바탕만이 드러날 것이다. 시각적 가상은 몸에 기반 하는 촉각적 감각에 의해 그 허구적 통일성이 폭로될 수 있다.

전시장에는 줄로 만든 거울 외에 직사각형의 작은 태양열집진소자와 연결된 LCD 유닛들로 만들어진 거울들이 반짝거린다. 시선을 교란하면서도 깊숙이 흡수하는 듯한 ‘string mirror’와 달리, 빛에너지에 반응하는 이 거울은 만화경처럼 표면적이고 분열적이다. 그러나 홍성철의 조각난 거울들은 감상적이거나 파국적인 어조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한 존재가 분열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분열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처럼 들려온다. 인간은 거울을 통해서 단편적인 육체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다. 거울은 주체의 단일성을 확인해주지만, 그것은 현대의 정신분석학이 말해주듯이 오인에 의한 것이다.

라캉은 공간적 일체화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를 위해, 환상을 이룩해내는 드라마가 벌어지는 거울 단계를 언급한 바 있다. 거울단계의 이론에 의하면, 거울 이미지는 외양의 총체성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자아는 그 환영의 산물이다. 거울단계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에 매혹되어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주체를 만들고, 파편화된 육체의 이미지들로부터 통합의 환상을 만든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환상들은 자기 동일성을 가정하는 자기 방어적인 갑옷의 형태를 띠고 주체를 소외시키는 역할을 한다. 붙잡을 수 없고 붙잡히지도 않는 string mirror에서의 소외된 몸짓은 perceptual mirror의 리드미컬하게 반짝거리는 표면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것은 아직도 유기적인 전체를 기억하고 있는 손과, 부분 그자체로 충만한 새로운 기계적 단위 간의 대조이다.

후자의 거울에서 조각난 육체들은 본질과 총체성에 대한 환상을 접고, 영속적인 우연성과 유동성에 흔쾌히 자신을 맡긴다. 어둠의 대륙 속에 잠겨있던 몸은 이제 순수한 차이로서 그 흔적을 드러낸다. 기계 거울에서 몸은 고정된 실체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탈자연화 된다. 그것은 연결과 전달, 흐름과 생성이 교차하는 가변적인 장(場)이 되며, 의미가 각인되는 공간이자 생산과 구성의 공간으로 몸을 개방시킨다.

거울 저편으로 빠져나가거나, 혹은 조각난 단편으로 흩어지는 실재는, 현대 미술가들로 하여금 상실감과 더불어 끝없는 도전에의 욕망을 부추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