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 Kyoungtack, 'Reflection 2,' 2013, Oil on linen, 79 x 79 in (200 x 200 cm). Courtesy of the artist.
한국은 최근과 같은 미술 시장 호황기를 몇 차례 겪은 바 있다. 그중 2000년대에 맞이했던 호황기는 아트 페어와 경매 시장이 등장하는 등 국내 미술 시장 구조가 다양화되고 해외 진출을 통해 국제화를 맞이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많은 청년 작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이 당시에 특히 괄목할 만한 관심을 받았던 작가가 홍경택(b. 1968) 작가였다. 그의 작품 ‘연필 1’이 2007년 홍콩 크리스티의 경매에서 663만 홍콩 달러(약 9억 6000만 원)에 판매되어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서는 최고가로 낙찰되어 화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홍경택 작가는 연필, 볼펜, 책, 대중 음악 등 현대인의 욕망이 반영된 이미지들을 정물화의 형태로 표현한다. 강렬한 색채와 패턴으로 표현되는 작가의 회화 작업은 팝 아트와 한국의 민화 양식, 사실주의와 추상화, 고전과 대중문화 등 상반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내포하며 현대 사회의 양면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Hong Kyoungtack, 'Full of Love,' 2012, Oil on linen, 51 x 64 in (130 x 162 cm). Courtesy of the artist.
대표적인 연작으로는 ‘연필’, ‘서재’, 그리고 대중 음악을 표현한 ‘훵케스트라’ 연작이 있다.
홍경택 작가는 대학생 시절부터 사물의 물성을 표현하는 데 주목해 왔다. 특히 플라스틱 사물의 반질반질하고 가벼운 표면을 표현해 왔는데, 이는 작가가 대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1980년대 한국은 군사 정권,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수많은 학생 운동이 일어나던 격변기로 사회 분위기가 무겁고 암울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며 영화와 음악 등 대중문화가 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작가는 가볍고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플라스틱을 표현함으로써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와 반대되면서도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사회 분위기를 모두 담는 양면적 대상을 표현했다.
작품 속 플라스틱의 모습은 초기에 컵, 머리빗 또는 플라스틱 재질의 책 표지로 표현되었지만, 점차 연필과 펜이라는 소재로 안착하게 되었다. 매끈하지만 날카로운 모양을 가진 갖가지 모양의 펜과 연필로 가득 메워진 화면은 화려하면서도 어딘지 공격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홍경택 작가는 ‘연필’ 연작에서 다양한 캐릭터가 달린 펜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 내재된 익명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제조사에서 무작위로 만들어낸 출처를 알 수 없는 캐릭터 디자인은 마치 무명에서부터 인지도를 쌓아 올린 오늘날 유명인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Hong Kyoungtack, 'Library 5,' 2005, oil on canvas, 51 x 64 in (130 x 162 cm). Courtesy of the artist.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저항하고자 당시 국내에서는 민족 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었다.
홍경택 작가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서재’ 연작을 시작한다. “이조의 민화(李朝の民畵, 조선의 민화)”라는 책에 나오는 책가도의 구도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작가는 그리고 그 양식을 빌려 서양화적 기법으로 서재 공간을 구현한다.
직선과 사각면으로 이뤄진 책과 책장은 사물의 물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를 새롭게 펼칠 수 있는 소재였다. 또한 서재는 작가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공간 동시에 서로 반대되는 개념을 지닌 공간이기도 하다. 서재는 외부와 쉽게 격리될 수 있는 닫힌 공간이면서도 끝없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정된 면적을 차지하는 책 또한 그 안에 방대한 인류의 문명, 역사 그리고 노력을 집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한성을 지니기도 해 ‘서재’ 연작은 또 다른 양면성을 표현한다.
Hong Kyoungtack, 'Fuck and Roll,' 2008-2009, Acrylic, oil on linen, 71.2 x 89.3 in (181 x 227 cm). Courtesy of the artist.
작가는 작업을 하며 줄어든 대인 관계를 음악으로 채우며 또 다른 대표 연작인 ‘훵케스트라’를 시작하게 된다. ‘훵케스트라’는 대중 음악의 한 종류인 펑크와 클래식 음악의 한 갈래인 오케스트라를 합성한 말이다. 상충하는 두 음악 장르를 합성한 용어처럼 작가는 대중문화적 요소를 고전적 양식으로 표현해 현대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종교화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장식의 중앙에는 오늘날 신화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대중 문화 속 인물들을 그려 넣거나, 오늘날의 세태를 반영하거나 시대를 간파했다고 느껴지는 팝송의 가사를 넣는다.
홍경택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기 위해 회화를 기반으로 작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Artist Hong Kyoungtack. Courtesy of the aritst.
홍경택 작가는 2000년 인사미술관(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2005년 아르코 미술관(서울), 2010년 두산갤러리(뉴욕), 2019년 인당 뮤지엄(대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국내의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뿐만 아니라 해외의 베이징 국립미술관, 칠레의 산티아고 현대미술관,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양한 곳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삼성 리움 미술관, 일민미술관, 두산갤러리, 아모레퍼시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