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현 (b.1983) - K-ARTNOW
정지현 (b.1983) 대한민국, 서울

정지현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2010)하고 석사학위(2016)를 취득했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예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2019)했다.

개인전 (요약)

현재(2022)까지 여덟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송은아트스페이스(서울, 한국), KT&G상상마당(서울, 한국), 스페이스오뉴월(서울, 한국), BMW포토스페이스(부산, 한국) 등의 장소에서 전시를 가졌다.

그룹전 (요약)

인천아트플랫폼(인천, 한국), 김중업건축박물관(안양, 한국),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주폴란드 한국문화원(바르샤바, 폴란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서울, 한국), 경기창작센터(안산, 한국)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제14회 사진비평상(포토스페이스, 한국)을 수상하였으며 제6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KT&G 상상마당, 한국) 최종 3인에 선정되었다.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와 프릭스 픽텟 등의 국제 사진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작품소장 (선정)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한국),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부산현대미술관(부산, 한국), 아모레퍼시픽미술관(서울, 한국), 한미사진미술관(서울, 한국), 고은사진미술관(부산, 한국) 등이 있다.

주제와 개념

정지현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사진을 통해 도시의 건축물에 관한 기억을 공유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스무 살 무렵,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자라 온 잠실 주공아파트는 재개발에 들어갔다. 거대한 대단지가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작가는 이 충격적인 경험 이후 건축물이 바꾸어 가는 도시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건물과 함께 상실하는 기억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건물을 건설하거나 철거하는 건축의 현장을 찍는다. 거리를 오가며 드물지 않게 마주치게 되지만, 공사장 가림막 뒤로 숨어 그 부분적 실체만 훔쳐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가 철거되는 아파트나 재개발 지역의 건축 현장을 촬영함으로써 도시의 과거를 다루었다면, 근래의 작업은 도시의 구조를 만드는 새로운 초고층 빌딩들의 건축 현장을 기록하며 도시의 미래를 생각한다.

정지현의 사진 작업은 도시 건축물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건축사진인 동시에 그것을 해체하여 숨어있던 것들을 드러내는 예술사진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활동을 포함한다. 작가는 건축 현장에 조형적으로 개입하고 건축의 요소나 일부를 임시로 변형함으로써 자신의 예술 형식을 구축한다.

벽을 붉게 칠해 파괴적인 현장들이 과거에는 삶의 장소였음을 표현하거나, 건축 자재들로 가변적인 구조물을 설치함으로써 공간을 변이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미처 본 적 없던 건축물들의 내부, 건물의 안도 밖도 아닌 그 ‘속살’이다.

정지현의 사진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오늘이 지나면 사라지는 풍경이다. 건물을 건설하거나 철거하는 건축 현장은 매일 그 모습이 바뀌어 간다. 현장의 공정은 나름의 계획과 속도대로 계속해서 나아가기에, 애써 칠한 벽이 하루 만에 폭파되어 건물 외관을 촬영하기도 전에 빨간 콘크리트 가루만 남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지금 이 순간 기록하지 않으면 다음 순간에 대상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절박함은 작가가 끈질기게 현장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견고한 세계이고 삶의 무대였던 건축물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부서지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세계가 얼마나 유한하고 덧없는 것인지를 계속해서 깨닫는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상징이었을 아파트는 새로운 이해관계와 욕망, 자본의 논리에 의해 허물어지고 또다시 쌓아 올려질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섣부르게 연민하지 않고, 그저 그곳에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것들을 기록해 나간다. 도시의 구조가 수직과 수평의 레이어를 끊임없이 중첩하고 있는 것처럼, 건축물은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이 교차하는 장이 된다.

형식과 내용

정지현은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개입을 강렬한 붉은 색으로 표출시킨 ‘철거 현장’ (2013)과 ‘재건축 현장’ (2015) 연작을 통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먼저 ‘현장’을 발견하여 침범하고,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공간을 경험하며 장소의 변화를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임의의 세대나 한 층 전체를 빨간 페인트로 칠하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공간의 일부가 되고 일시적으로 그곳을 점유한다.

다음으로 빨강의 영역이 적절하게 프레임 안에 담길 수 있는 위치를 찾기 위해 건물 바깥으로 나가 조망의 거리를 둔다. 건물의 철거가 진행됨에 따라 붉은 방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이내 붉은 콘크리트 조각으로 잘게 부서져 간다. 작가는 붉은 벽체가 노출된 외관을 촬영하고 내부를 기록한 사진과 함께 전시했다.

도시의 건물은 다양한 서사가 교차하는 장소이지만 작가의 사진에서 그곳에 얽힌 개인이나 사회의 세세한 역사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다. 차갑고 건조한 사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부서진 단면의 이미지, 건물의 골조 그리고 건축 요소들의 형태나 질감 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진이 폐허의 시각적 스펙터클로서 재개발 현장을 소비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도록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간다. 건물의 내외부에 일시적인 파열음을 일으키는 빨강은 그곳에 그것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 된다.

최근 작가는 주로 커미션의 형태로 새로운 건물의 건설 과정을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신사옥 건립을 도큐멘테이션 한 ‘컨스트럭트’ (2017), 1970년대 고도성장 시대를 상징하는 한국 최초의 마천루이자 커튼월 건물인 삼일빌딩의 리모델링 복원 과정을 기록한 ‘리컨스트럭트’ (2020~2021), 송은아트스페이스 신사옥 건립 현장을 담은 ‘Structure Studies Topology’ (2019~2021) 등 다양한 아카이브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건물의 지반 작업부터 매끈한 위용을 빛내며 완성된 후의 준공 사진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건물의 모습을 기록한다. 현장에 잠입하거나 관계자들의 양해를 구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가장 깊숙한 공간으로 초청되었다.

건물이 구축되는 현장은 폐허를 포착할 때보다 조형적으로 좀 더 내밀하고 섬세한 시선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는 공간을 생성해 나가는 사물들에 개입하여 건축 자재의 재질과 기능을 뒤집어 보인다. 건축 현장 내에서의 인스톨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조형성과 미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건축물을 촬영하는 사진은 도시 환경에 대한 아카이브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자동으로 획득한다. 그러나 정지현의 작업은 객관적인 정보를 세밀하게 기록하거나 유형학적으로 건축 양식을 수집하는 건축사진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이미 발파되어 사라진 장소나 마감재로 감싸여 모습을 감춰버린 도시의 골격 같은 것을 담고 있는 정지현의 사진은 독특한 시간성과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 사진인 동시에 미술적 행위를 동반한다. 사진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 역시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사진의 작동 방식을 재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자신의 몸을 사용해 공간에 개입하는 수행적인 태도는 동시대 미술의 보편적인 양상들과 유사하다.

사물들을 건축 현장 안에 배치함으로써 시도되는 추상적인 공간 드로잉, 다양한 물질의 촉각적 대비와 같은 미술적 실험들 역시 작가의 작업을 관람자가 예상치 못하는 지점으로 변주해 나간다. 작가는 또한 여러 가지 물성과 맥락 위에 자신의 사진을 위치시킨다. 사진을 접착 비닐 위에 출력하여 야외 공간에 설치하거나 매끈한 유리에 UV 출력하는 등의 시도 들은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정지현을 특별한 사진가로 위치시키는 것은 이러한 은유와 작가적 표현이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태도 위에 놓인다는 점이다. 작가는 감성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을 포착하기보다,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이고 구조적인 형식에 집중한다. 차가울 만큼 세련되고 정제된 작가의 시선은 쉴 틈 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안과 밖을 바라보며 공공의 기억이 깃든 건축물들을 역사화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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