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색과 형태, 홍경택 작가의 ‘펜’ 시리즈 속에 숨겨진 이야기 - K-ARTNOW
홍경택 (b.1968) 대한민국, 서울

홍경택은 경원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개인전 (요약)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첫 개인전인 《신전(神殿)》 (2000, 인사미술공간, 서울, 한국) 을 개최했다. 전시는 공모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미술계에 공식적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분명한 세계를 찾고 있는 젊은 작가로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5년 아르코 미술관 재개관전을 기념해 열린 개인전에서 《Funkchestra》 (2005, 아르코 미술관, 서울, 한국) 라는 새로운 형식의 연작을 선보였다.

이전까지는 일상적인 사물들 (책, 연필, 펜 등) 을 주제로 했다면 ‘훵케스트라’ 시리즈는 음악을 주제로 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의 진동과 멜로디를 색채와 조형으로 표현하며 유명인사들과 기호, 텍스트를 결합시켰다.

작가는 두산갤러리 뉴욕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는데 이때 《Pens》 (2010, 두산갤러리, 뉴욕, 미국) 를 개최했다. 이 전시에는 화려한 색채의 다양한 볼펜과 연필들을 빽빽하게 모아 놓은 ‘Pen’ 연작 중 두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중 Pen 3 은 2000년부터 10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이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였다.

2019년 《Great Obsession》 (2019, 인당 뮤지엄, 대구, 한국) 전시를 진행했다. 이 전시는 홍경택의 작품 활동 초창기부터 당시까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할 수 있는 전시로 작은 회고전의 개념이었다. ‘펜’, ‘서재’, ‘훵케스트라’, ‘손’ 시리즈와 함께 작가가 수집한 소장품까지 59점을 전시했다.

그룹전 (요약)

작가는 2007년에 한국현대미술을 해외에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진행된 단체전 《한국현대미술 중국전:원더랜드》 (2007, 베이징 국립미술관, 베이징, 중국)에 참가하였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주관으로 당대 한국에서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선정했다. 홍경택, 권오상, 이형구, 최우람 등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 41점을 해외에 소개했다.

같은 해 칠레의 산티아고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 중남미 순회전 – 박하사탕》 전 에도 참여했는데 이 전시는 2008년에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 전시를 이어 나갔다. 이 전시를 통해 아시아 뿐만 아니라 남미에서도 작가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012년 두산갤러리가 재개관 기념 전시 《RE-OPENING DOOSAN GALLERY SEOUL》 에 참여했다. 이 전시에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두산 레지던시 뉴욕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이 선정되어 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외에도 《한 ․ 일 현대미술특별전 – 참 우정의 형태》 (2005, 세종문화회관, 서울, 한국), 《Wall Screen Project: 움직이는 훵케스트라》 (2013, 삼성 리움 미술관, 서울, 한국), 《디지 펀 아트 : 도시풍경》 (2015,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비포 더 비기닝 에프터 디 엔드》 (2016, K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A different Similarity》 (2009, 센트럴 이스탄불 미술관, 이스탄불, 터키) 등 국내외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작가는 2013년 ‘제 14회 이인성 미술상’ 을 수상했다. 작가는 최연소 수상자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 동시대 미술계를 이끌어 나갈 역량이 있는 작가라고 평가받았다.

심사위원진은 디자인과 회화, 팝아트와 사실주의를 혼합한 조형성은 물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으로 포스트-포토 페인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작품소장 (선정)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 한국), 삼성 리움 미술관(서울, 한국) 일민미술관(서울, 한국), 두산갤러리(서울, 한국) 아모레퍼시픽(서울, 한국) 등이 있다.

주제와 개념

홍경택은 펜, 연필, 책 등 일상적인 소재로 현대인의 집착적인 욕망이라는 주제의 작업을 오래 해왔다. 형형색색의 원색으로 캔버스를 채운 ‘연필’ 또는 ‘펜’은 “순간적인 화려함, 훔쳐보기의 장치들, 유아적이고 촉각적인 물건의 배치, 이들은 에로틱함과 함께 그의 부산물인 공허를 이끌어” 내는 장치다.

펜은 일상의 사물이기에 일견 가벼운 소재일 수 있으나 작가는 펜 뚜껑의 형태로 등장하는 해골, 인형 등의 알레고리, 집적된 화면 구성, 글쓰기의 무게라는 진중함의 암시로 현대인의 이중적이며 강박적인 욕망을 다룬다.

‘서재’ 연작은 조선 후기 책가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밀폐된 듯 보이는 서가를 플라스틱 같은 매끈한 질감의 책과 홀로 있는 인물, 전통 회화의 도상으로 채운다. 은둔하는 선비의 공간을 현대적으로 변용함으로써 현대인의 충돌하고 증식하는 욕망을 녹여낸다.

홍경택은 일상적인 사물이라는 소재의 가벼움을 통한 욕망의 표현을 넘어서서 삶과 죽음, 종교와 세속 등 다양한 삶의 속성에 대해 말하는 작품으로 나아간다.

펑크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인 ‘훵케스트라’를 제목으로 한 일련의 작품들이 색감과 흑백, 패턴(추상)과 리얼리즘, 성과 속, 폐쇄와 분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회화와 디자인, 종교와 포르노를 교차하는 그의 진일보한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한편 2014년 개인전 《그린 그린 그래스》(페리지 갤러리, 서울)에서 전시한〈반추 1〉(2013),〈서재-골프장〉(2014),〈연필그림-여섯 개의 하늘〉(2014) 등에 풍경이 등장한다. 형식적으로는 우주, 서재 등을 배경으로 패턴화된 사물이 등장하는 그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골프채에 작가와 작업실의 모습이 반사되거나, 동심원을 그리는 하늘 위에 연필이 그려지고, 서재와 골프장 풍경이 결합된다. 이로써 작가는 공간을 중첩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 질문을 던지면서, 인공적이지 않은 소재로 인간의 꿈과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풍경을 표현하는 변화를 보인다.

이 외에도 홍경택은 두 손을 중심으로 다양한 도상을 접목해 신성과 악마성, 그리고 인간성을 표현하는 ‘모놀로그’ 연작, 기계와 생명의 대비를 통해 고통을 고민하는 ‘곤충채집’ 연작 등도 선보였다.

“종교에서 포르노까지 우리 시대의 모습을 생생한 날것 그대로 그리고 싶다.”는 홍경택의 말처럼, 그의 작업은 현대의 시각정보에 대한 감각의 추구와 함께 존재성 및 양가성에 대한 고민이자 하나의 작가적 컬렉션이다.

형식과 내용

1960년대 팝아트에서부터 고급문화인 순수 회화에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란한 원색과 강한 대비의 색감, 리듬감 있는 화면 구성, 일상적 소재와 대중문화의 아이콘 차용이라는 특징을 지닌 홍경택은 한국의 팝아트의 중요한 한 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단순히 팝아트라는 장르로만 분류하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넓다. 오히려 대중문화와 미술이라는 장르를 효과적으로 혼합하여 비판적인 시선으로 동시대성에 대응해온 작가라는 평이 더 적절할 듯하다.

‘휑케스트라’ 에서 보이는 선동적인 굵은 고딕체의 글자와 사실주의적인 묘사의 결합은 전통적인 포스터의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해골과 나비 같은 바니타스 회화의 전통적인 도상들은 전통 회화와의 연결점을 시사한다.

한편, 〈Urban Symphony〉 (2016)과 같은 영상 작업으로 발표하거나 색실로 공간을 채운 설치작품 〈코쿤〉(2007)과 이를 패션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재구성하여 《VOGUE: Fashion into Art》 전시에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홍경택은 소재와 형식 면에서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으며 꾸준히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홍경택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발전, 그리고 미술시장의 국내외적 성장과 함께 걸어온 작가이다. 전 세계 현대미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을 이룬 2000년대는 한국 미술 시장의 활황기이기도 했다.

당시 국내 갤러리들이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국내 작가를 공격적으로 해외에 소개하고 있었고, 홍경택은 유수의 옥션과 아트페어에 활발하게 참가해왔다. 그의 작품 〈연필 1〉이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 등에서 한국 작가 최고가를 경신한 이래, 그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안목 높은 컬렉터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왔다.

그는 작업 초기에는 주로 해외 아트페어와 경매에서 작품을 팔고 국내에서는 미술관 위주로 전시하는 방식으로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을 잡아왔다. 그러나 그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으면서, 국내에서는 100차례 이상의 그룹전 참가하여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한국 현대미술 러시아》(2008, 더 센트럴 하우스 오브 아티스트, 모스크바, 러시아), 《한국 현대미술 중남미 순회전: 박하사탕》(2008,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미술관,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A Different Similarity》(2009, 산트랄 이스탄불 미술관, 이스탄불, 터키 / 2010, 보훔 뮤지엄, 보훔, 독일)에 참가하는 등 해외 미술계에도 작품을 널리 선보이고 있다.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의 다리를 이어온 홍경택의 최근 행보는 더욱 새롭다. 작가의 작품 스타일과 스테이트먼트를 딥러닝한 인공지능 기술로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창작물을 선보인 기획전 《Art match-mashups: 예술을 배운 기계, 인공지능을 만난 예술의 융합》 전시(2021, 영은미술관, 서울)에 참가하였다.

또한 NFT 작품을 발표하고 NFT 작품과 디지털 아트를 주제로 한 전시 《Amulet: 호령》에 참가하는 등 작가로서의 활동 반경과 작품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폭발하는 색과 형태, 홍경택 작가의 ‘펜’ 시리즈 속에 숨겨진 이야기
A Team

홍경택 작가의 대형 회화 작품인 ‘펜’ 시리즈에는 형형색색의 연필과 펜들이 마치 폭죽 터지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표면에 빽빽하게 그려진 펜 뭉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Hong Kyoungtack, ‘Pens 3,’ 2001-2010, Oil on linen, 259 x 776 cm.

눈앞에 마치 폭죽이 터지듯 알록달록한 연필과 펜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홍경택 작가의 ‘펜’ 연작은 대형 캔버스에 연필과 펜을 크게 확대해 묘사해 놨다. 보고 있으면 필기구로 이뤄진 거대한 크기의 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느껴져 색다른 압도감을 받게 다. 요즘은 대형 작품들이 많지만 분명 이 그림이 처음 등장했던 2000년대에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홍경택 작가의 ‘펜’ 시리즈 속에 빽빽하게 뭉쳐 있는 필기구들은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오브제 사이사이에 있어야 할 그림자가 부재해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오브제들의 표면은 만질 수만 있다면 플라스틱 특유의 매끈한 질감이 느껴질 것만 같으면서도 건조한 느낌 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의 연필 연작은 회화 작품 같으면서도 디자인 이미지 같기도 하다.

홍경택 작가는 종종 한국의 팝아트 작가로 불린다. 미국 팝아트는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에 대항하여 대중적인 이미지를 표현했으며 개념적 아이디어와 사회 비판적 메세지를 담았다. 홍경택 작가는 대학 시절 기성 작가들 사이에서 주를 이뤘던 추상회화와 설치 미술와는 달리 구상적인 정물을 그만의 방식으로 그려 냈다. 하지만 홍경택 작가의 작품이 어떠한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지는 않는다.


Hong Kyoungtack, ‘Pens,’ 2010, Oil on linen, 259 x 388 cm.

홍경택 작가는 그의 ‘펜’ 작품들을 표현주의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다양한 욕구, 감정과 생각이 연필과 펜이라는 소재를 통해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두가 아는 친숙한 소재인 연필과 펜을 그리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내면을 이루고 있는 복잡하게 얽힌 요소들을 색과 형태로 표현한다.

날카롭게 솟아 어딘가를 향해 날아갈 것만 같은 필기구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공격적이고 강박적인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이 필기구들이 때로는 총알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펜’ 시리즈는 때로는 위협적으로 다가다. 강박적으로 빽빽하게 모여 있는 필기구들의 모습은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폭발하는 듯한 모습이 어떠한 압도감과 쾌감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정교한 붓터치로 연필과 펜들의 색과 질감을 똑같은 밀도와 강도로 묘사한다. 그의 ‘펜’ 연작 속 제각각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필기구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한데 뭉쳐 있음으로써 어딘지 추상적인 느낌도 준다. 빈틈없이 모여 있는 연필과 펜들의 모습은 구상과 추상을 오간다.

Hong Kyoungtack, ‘Full of Love,’ 2012, Oil on linen, 130 x 162 cm.

그림 속에 묘사된 무명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펜들은 다양한 모양과 형태를 띤다. 해골, 인형, 동물, 캐릭터 모양 등은 모두 누군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것이지만, 이를 디자인한 사람은 익명으로 남아 있다.

작품 속 펜들은 매우 사실적이고 매끄럽고 다소 편집증적일 정도로 정교해 보인다. 하지만 펜과 연필들 사이는 여백이 없도 꾹꾹 끼워 넣은 모습이다. 이는 마치 도시를 살아가는 개인이 군중 속에서 익명으로 존재하며 서로 다른 목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펜 시리즈는 홍경택 작가가 대학을 졸업하기 1년 전인 1994년부터 시작한 연작이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200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대안 공간 중 하나였던 인사미술공간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대중에게 처음 선보였다. 당시 그의 ‘펜’ 시리즈는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당시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지내고 나중에는 제11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김영나 평론가의 평론을 받는 등 미술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가 한국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작품이 해외에 판매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펜 시리즈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한국 미술 시장과 컬렉터들은 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보다 전통적인 형식의 작품이 수용되었다. 


Hong Kyoungtack, ‘Pens-Anonymous,’ 2021, Oil on linen, 181 x 227 cm.

하지만 크리스티 홍콩에 홍경택 작가의 작품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그의 펜 시리즈 작품은 2007년 홍콩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처음 낙찰되어 당시 7억 7,760만 원으로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으며 2013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9억 6,000만 원에 낙찰돼 크리스티 경매 사상 한국 현대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그 뒤로 홍경택 작가의 이름은 미술 시장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홍경택 작가의 ‘펜’ 시리즈가 주는 폭발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에너지는 많은 사람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일민미술관, 대림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 컬렉션에 들어가 있고 다수의 국내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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