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성은 서구문화권의 신화와 서사를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 서브컬쳐와 결합하여 회화를 창작한다. 미술사에서 서구 신화와 서사를 모티프로 하는 창작 방식은 오래된 전략이고, 만화 장르나 망가/아니메라 불리는 일본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은 한국현대미술의 30~40대 작가들에게 흔히 보이는 특징이다.
참조와 차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현대미술의 상황 속에서, 이윤성은 과거와 시대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 고급과 저급, 불변과 가변 등 상반되고 이질적이라 여겨지는 요소들을 회화 안에서 자유롭게 연결하고 해체하여 다층적인 의미망을 생성하는 특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윤성이 다나에, 헬리오스, 프시케, 마리아 등 그리스로마 신화나 서사 속 인물과 그 서사를 차용할 때 이들 인물이 도상으로서 반복해 등장하는 서양미술사의 마스터피스, 예컨대 비너스 여신상 이나 최후의 심판, 라오콘, 수태고지 같은 명작 또한 차용의 범위에 포함된다. 이로써 신화와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가 기왕에 가진 힘과 역사에 주목하는 작가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작가가 선택한 대상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거나 이 인물을 망가의 미소녀로 둔갑시켜 다양한 감정과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으로 그린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참조한 원전의 전형성을 가져오면서도 작가 자신이 성장하며 접했던 일본 만화라는 시각적 환경과 서브 컬처의 영향을 과감하게 접목하여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시사한다.
“나는 작품이 가진 이야기나 메시지가 아닌 제작 형태, 표현 방법들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흔히 평단에서 혼성적 혹은 하이브리드 이미지라고 칭하는 이윤성의 회화에 대한 이해는 이미지의 내용적 전형성, 참조, 재해석의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회화의 프레임’을 함께 고찰할 때 깊어진다. 작가의 초기 개인전 타이틀에 직접 제시된 ‘TYPE’, ‘FRAME’이 말하듯, 프레임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윤성은 ‘Zodiac’ 연작에서 보이듯 직사각의 보편적인 캔버스 틀에서 벗어나 만화에서 장면을 구획하는 ‘칸’처럼 캔버스를 다각형으로 변형하고, 이를 재조합해 설치하기도 한다. 또는 ‘다나에’ 연작처럼 회화 표면 안에서 프레임을 분할하여 인물과 그의 세계를 다면적으로 조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칸/프레임 설정은 분명히 완성된 평면으로서의 회화 표면에 속한 것이지만, 역으로 회화 자체에 담긴 시각적 개념적 경계를 유동적으로 만듦으로써 새로운 회화 양식 ‘Nu-Frame’이라는 복합적 구성을 생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