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 개인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2017년 11월 25일까지 P21에서 개최 - K-ARTNOW
유승호 (b.1974) 대한민국, 서울

유승호는 한성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1999)하였으며 지금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개인전 (요약)

1999년 조성희 화랑에서 첫 개인전 《히히히》 (1999, 조성희 화랑, 서울, 한국)를 개최했다. 작가가 처음에 가졌단 작업의 취지가 잘 표현된 전시였다. 작가는 처음에 했던 생각과 마음가짐을 계속 가지고 작업하고 싶었는데 그것에 가장 부합한 전시였다.

2005년에는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echowords》 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는 ‘문자 산수화’와 ‘문자 놀이’ 두 시리즈를 선보였다. ‘echowords’는 ‘흉내내는 말’ 이라는 뜻의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며 의성어나 의태어와 같이 의미 없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그의 드로잉 작품들을 일컫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작가는 두산갤러리 뉴욕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는데 이때 《echowords》 (2013, 두산갤러리, 뉴욕, 미국) 를 개최했다. 작가는 작품에 쓰여 있는 말들과 거기서 보이는 이미지와의 상호관계에 주목하는데, ‘echowords’는 말이 이미지를 흉내 낼 수도 있고 이미지가 말을 흉내 낼 수도 있는 것이며 또한 이 둘의 어떤 상호작용일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2017년에는 P21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는 서예의 서체 중 초서를 활용한 붓글씨 형상이 ‘문자 놀이’ 시리즈가 주를 이뤘다. ‘문자 놀이’는 코미디언이나 아이들이 하는 유치한 말장난처럼 보이는 언어유희적인 작업이다.

예를 들어 <뇌출혈> 같은 경우에는 뇌혈관의 출혈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뇌혈관 장애를 나타내지만 영어에서는 ‘자연의’ 라는 뜻의 Natural 을 읽는 발음이 되기도 한다. <쉬> 는 소변을 눌 때 나는 의성어지만 영어로는 ‘그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룹전 (요약)

작가는 1998년 동아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공산미술제》에 참여했다. 이 전시는 작가가 처음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였다. 작품은 문자로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점으로 픽셀 단위를 이루기 때문에 기존의 페인팅과는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롭게 느끼며 좋은 호응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이고나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2006년 《오리엔탈 메타포》 (2006, 대안공간 루프, 서울, 한국) 전시에 참여했다. 한중일의 11명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에서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아시아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왜 현재 아시아 동시대 미술이 주목을 받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이 전시가 기획되었다.

2014년 두산 갤러리 서울에서 함진 작가와의 2인전 《클로즈업》 (2014, 두산갤러리, 서울, 한국)에 참여했다. 유승호는 종이 위에 잉크로 쓴 작은 글씨들이 모여 풍경을 만드는 회화를 선보인다.

이 전시는 확장과 반복, 축소와 변형의 방식으로 각자 개성 있는 형식을 보여주는 유승호, 함진의 작업을 통해 보는 거리에 따라 상반된 지각 경험을 선사하고, 이미지의 표면 아래 숨겨진 세계와 마주하게 한다.

이외에도 《신호탄》 (200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한글TRANS: 영감과 소통의 예술》 (2013,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한글 서書 x 라틴 타이포그래피-동서 문자문명의 대화 》 (2016, 예술의 전당 서예 박물관, 서울, 한국), 《The Elegance of Silence》 (2005, 모리 미술관, 도쿄, 일본) 등 국내외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작가는 1998년 제5회 공산미술제 공모전 우수상과 2002년 ‘제 22회 석남미술상’ 을 수상했다.

석남미술상은 석남미술문화재단에서 35세 미만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선정하는데 작가는 28살의 어린 나이에 선정되었다.

작품소장 (선정)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과천, 한국), 버거 콜렉션(홍콩, 홍콩),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한국), 두산갤러리(서울, 한국), 모리 미술관(도쿄, 일본), 휴스턴미술관(휴스턴, 미국) 등이 있다.

주제와 개념

유승호의 “의미를 분절하고 해체하고 무의미화 시키는 게 내 작업의 본질”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주제를 전제하기보다는 오히려 확정된 의미를 지연시키고 뒤틀어 원시적 유희와 직감에 호소하는 회화를 전개한다. 그의 회화는 ‘쓰기-그리기’의 관계에 기반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과 연상 작용에 의지해 펜으로 화면에 아주 작은 단어를 반복해 적음으로써 이미지를 구성한다. 예컨대, 그의 대표 연작 ‘문자산수’는 의성어나 유아적 문구처럼 특별한 의미가 없는 단어, 완성된 풍경과도 무관한 단어를 깨알같이 작게 반복해 적어 중국 산수 풍경을 완성한다.

단어와 형태-이미지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echowords(시늉말)’ 연작에서는 음차를 이용한 단어나 작가만의 독특한 발상이 번뜩이는 언어유희적인 ‘시늉말’을 사용하여 풍경을 재구성한다. 작품 안의 글자들은 작가가 참조한 원작이 지닌 사상의 의미와 무게를 벗겨낸다. 나아가 고화에 작가 특유의 재치와 해학이 엿보이는 현대적 사고방식을 불어넣어 재맥락화 한다.

2010년 개최된 개인전 《유치한》(갤러리 플랜트, 서울)에서는 색점을 찍어 그림을 만든다. 조형의 기본 단위이지만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점을 사용한 이미지는 이전의 문자산수와 달리 추상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작가가 상형문자의 원리를 반대로 적용해 글자와 이미지의 임의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다시 이것을 여러 차례 변형한 결과이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연작에서는 글자와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밀착되는 관계에 놓인다. 유승호는 텍스트의 의미가 규정되기 이전의 느슨한 연상과 반복에 주목하는데, 이 지점을 ‘시각의 놀이’와 ‘말 놀이’로 확장하여 자기 작업의 시적인 잠재력을 심화한다.

2017년 개인전 《머리부터 발끝까지》(P21, 서울)에서는 김정희, 석봉, 북송 휘종 등의 서체 중 초서를 활용한 붓글씨 형상의 대형 작품을 선보였다. 2019년 개인전 《라멜라 양》(씨알콜렉티브, 서울)에서는 글자가 화면의 공간에서 더욱더 자유롭게 부유하는 캔버스 페인팅을 발표했다. 유승호의 이전 작품과 동일한 방법론을 단초로 하지만, 화면에 펜 잉크의 번짐을 이용한 우연성을 끌어들임으로써 산수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유승호의 작품에서 무수한 글자/기호의 의미와 그 글자/기호가 만든 이미지가 보여주는 의미는 충돌과 중첩, 분리와 결합을 오간다. 이는 지각과 언어의 상호반영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텍스트와 이미지의 유동적 관계를 부각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작품은 ‘경계 흐리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바, 주제와 배경, 기호와 의미,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를 흐림으로써 예술이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

유승호 작가의 작업을 처음 대한 사람은 먼저 노동집약적인 글자의 연쇄 혹은 점묘 과정에 압도당한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풍경이나 단어로 보이는 이미지가 가까이 다가서면 무수히 많은 글자, 점, 형상의 총합인 탓에, 관람자는 몸과 시선을 움직이며 과거의 산수 풍경화의 재현을 보면서 동시에 기호가 얽히고설킨 이미지를 읽게 된다. 이 읽음의 과정에서 관객은 유승호 특유의 언어유희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내가 하는 놀이는 무거운 의미들을 가볍게 흘려보내고 화면의 공간 속으로 자유롭게 부유하는 것이다. 결국엔 즐김, 본능, 쾌락, 유머만이 남아있는 꿈속으로...그래서 화면 위의 글자와 이미지들은 나와 함께 히히히 웃으면서 놀아나고 있다.”

본인의 작업을 놀이에 비유하는 유승호 작업의 주요한 또 하나의 방식은 가벼운 용이다. 그러나 서양의 명화 등에서 형상을 가져오되, 그것의 기법, 사상, 이론 등 사적 맥락은 모두 배제한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를 시각적으로도 명랑하고 쾌활한 언어로 채움으로써 보고, 읽는 것에 더해 듣는 그림으로 만든다.

한편 유승호는 펜을 이용해 흑백 화면의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면, 2012년 《hypertext》(난지갤러리, 서울) 이후 설치 작업을 시도하는가 하면 2017년에는 형광색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캔버스에 미스트를 분사하여 라인 이미지를 뭉개고 변형함으로써, 무정형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지형도와 지속성

유승호는 데뷔 이래 그의 획기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왔다. 유승호는 오랜 미술의 역사에서 이분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를 허물었다. 나아가 시각적, 지각적, 청각적 요소가 다양한 경로로 중첩되는 회화를 전개하여 동시대 회화 현실에서 자리매김하였다.

작가는 “동양화를 그렸던 과거의 그들이 어떠했고 어떤 사고로 삶을 살았는지, 예술을 했는지” 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통 동양화와 서예에 관한 탐구를 지속한다.

더불어 단순히 한글의 단어뿐만 아니라 영어, 수많은 글자의 기원인 상형문자 즉 이미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언어의 세계에까지 다가간다. 그는 이렇듯 상상력과 연상력으로 근원과 전통을 재해석하여 옛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에, 작업의 원천이 마르지 않는다.

과거 현재를 넘나드는 통찰과 상상력에 유머와 해학을 더하여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는 점, 이것이 그의 작업이 국경을 넘는 포괄성을 가지고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유승호는 2005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문자산수 작품으로 추정가보다 2배 높은 HKD 56만4000(약 USD 7만2000)에 낙찰되었고, 2016년에 참가한 홍콩 바젤 아트페어와 아부다비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 시장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유승호 개인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2017년 11월 25일까지 P21에서 개최
P21

현대사회는 서구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먼이 초감각적으로 포착해서 묘사했듯 그 성질이 액체처럼 유동적이다. 견고한 사회규범과 이념들이 녹아 흐르듯 무너졌고 절대적인 기준은 권위를 잃었다. 기반과 경계가 녹아 없어지고 다양한 영역과 가치들은 서로를 넘나들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실로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다.

반면, 액체의 유연한 자율성을 얻은 만큼 사회의 불안정성은 가중되었고 저항할 힘 또한 액체화되어 다수의 개인은 불안정한 상태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원래 유동적이고 비정제성을 추구하는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이 처한 액체 시대의 불안정성과 이에 따른 새로운 권력들에 제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중이다.

Installation view of “FROM HEAD TO TOE” ©P21

유승호 작가의 작업을 보면 현대사회의 액체성이 짙게 느껴진다. 문자나 이미지처럼 견고하고 구체적인 형식을 다루지만 서로 상반되는 두 성질의 것이 서로를 넘나들면서 서로로 변화되고, 화면의 구성은 액체처럼 유동적이다. ‘뇌출혈’이 ‘natural’이 되고, ‘natural’은 산이 되어 지고한 풍경을 이루다 어떤 부분은 이내 새가 되어 화폭 저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래로 흘러내려 민초들이 웅성거리는 주변 풍경이 된다. 그 운동성은 반대로도 작동한다.

대부분의 비평은 그의 작업에서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더 많은 상충된 관계들이 넘나든다. 언어와 언어, 전통과 현대, 시와 회화, 의미와 형상, 추상과 구상, 표면과 깊이, 표현과 고백 등, 결핍된 존재들이 화폭을 구성하는 요소로 포진해 있다. 이들은 다소 언어유희나 장난어린 낙서, 유머의 방식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려진 문자나 이미지가 변형되면서 서로가 되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작위나 의도라기보다 필연적인 현상인 양 자연스럽다.

애벌레가 나방이 되고 나방이 알을 낳듯이 애당초 서로를 자기 안에 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와 너, 아님 연인, 궁극에는 삶과 죽음처럼 근원적인 결핍을 갖고서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중인 듯도 하다. 그리 보니 작가는 화폭에서 서로가 되려고 치열하게 꿈틀거리는 문자나 이미지들을 그저 멍하니 보다가 적절한 때에 붓을 들이대서 그들의 요구와 결핍을 채워주는 것처럼 보인다.

Installation view of “FROM HEAD TO TOE” ©P21

이번 전시 <머리부터 발끝까지>에서는 서예의 서체 중 초서를 활용한 붓글씨 형상이 화면의 주를 이룬다. 지난 이십여 년간 줄곧 해왔던 펜 작업에서 붓글씨 작업으로의 전환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물론 지난번 개인전 <머리채를 뒤흔들어>(페리지갤러리, 2015) 전의 뇌출혈 연작에서 붓글씨를 사용했었고, 한참 전의 작품 'I go'(2005)에서도 그 형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붓글씨 연작의 시작점은 <전통이 미래다>(일주&선화갤러리-현, 세화미술관, 2016) 전에서 “석봉행초첩”의 석봉 글씨를 차용하여 제작한 작품 '떡♨(2015)'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전시를 계기로 붓글씨를 화폭의 주요 요소로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이전 작품에서 초서와의 유사성이 발견되는 만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송시대 곽희나 범관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는데, 초서가 동시대에 시작된 서체라는 사실도 연관되니 말이다.

작가는 글씨에 담긴 기운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획은 크게 확대하고 어떤 획은 위치를 변경하는 등, 전체적으로 형태와 구성을 변형해서 초안을 만든 다음 큰 화선지에 옮겨 그렸다. 가냘픈 선들의 율동은 정적이면서도 활기차서 흡사 기생의 몸짓을 닮은 것이 석봉의 초서에 담긴 그 기운이 유화백을 만나 제대로 완성된 듯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한 달 정도 잘 보이는 벽에 놓아두었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한 게 흥분되고 매혹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듣고 보면 그 고백이 그리 이상하지가 않다. 그 묘한 기분이 동기가 되어 붓글씨 연작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Installation view of “FROM HEAD TO TOE” ©P21

초서는 사실 문자라기보다 이미지에 가깝다. 풀의 모습을 닮아서 붙은 서체이니 당연지사이다. 자유분방함도 있고 역동적이기도 하다. 한자의 구성 원리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알다시피 사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이다. ‘象’은 코끼리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이고, ‘草’의 부수인 ‘艹’는 풀을 본떴다. 따라서 구상을 추상화한 문자이니 더 흘려 쓴들 그 글자가 본래 이미지에 가까우면 그 음이 무엇이든 의미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다만 그 형을 흩트리지 말아야 한다. 북송의 휘종이든 조선의 추사나 석봉이든 초서를 즐겨 쓴 이들은 휘갈겨 씀으로써 역설적으로 글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유승호 작가에게도 그러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진즉부터 화폭에 써놓은 글이나 일그러진 형상들, 간혹 춘화에서나 볼 만한 야한 농을 거침없이 그려 놓는다든지, 정적인 풍경화에다 자기 말투처럼 툭 던지듯 붙인 제목 등을 보면서 알 수 있었지만, 이번 초서를 활용한 연작에서는 더 그렇다. 하루의 농사를 마치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의 뒷모습이나 논두렁에 새겨진 흔적에서 느낄 수 있는 흙냄새처럼, 고요하지만 대범하고 가냘프지만 묵직한 기운이 있다. 그 기운이 자신감 있는 자가 여유를 부리듯 멋스럽게 화폭에 옮겨져 있다.

예전에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조지훈은 한국적 미의식을 ‘멋’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율동성이 있는 곡선이나, 형태를 왜곡하기도 하고, 일관되게 해학을 유지하는 낙천성 등이 그가 찾아낸 멋의 내용이다. 나아가 멋의 진정한 의미는 초격미(超格美)로 “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이라 말한다. 그렇게 보면, 초서는 초격미에 가장 적합한 양식이다. 앞글자 ‘초’ 가 같은 것도 그렇지만, 모양을 모사해서 글자가 되었다가 그 틀을 벗어나서 급기야 움직임을 담은 형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Installation view of “FROM HEAD TO TOE” ©P21

“길은, 가면 뒤에 있다.” 황지우의 시 ‘503.’의 한 구절이다. 어느 미학자가 연설 중에 인용하였는데, 인상 깊어 기록해 놓은 시구이다. 그리고 유승호의 ‘초fool’(2017)을 보면서 떠오른 글이기도 하다. 3미터가 넘는 기다란 형광 주홍빛의 화폭에서 유독 눈에 띄는 글자는 '屮'이다. 추사가 쓴 다산초당의 현판에서 따온 ‘초’자다. 풀은 곧아서 삼지창 같고, 우람해야 할 산은 절편처럼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당시 군주와 유배에 처한 자신을 빗대어 놓은 의미일 수 있으나, 민초의 상징이자 초의 잠재된 힘을 명확하게 표현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초’와 ‘풀’은 동의어인데, 붙여서 쓰니 ‘촛불’과 음이 유사하다. 초와 더불어, 화폭을 이루는 가늘기도 하고 굵기도 하여 힘의 강약이 느껴지는 유려한 획들을 보면 획이 지나간 자리에 얇은 선들이 삐죽이듯 그려져 있어서 마치 붓이 지나간 길에 자리를 내준 풀들을 보는 듯하다. 정자(正字)의 틀을 벗어난 선들이 화가의 붓질로 인해 길이 되었다. 공(空)에 잠재된 선을 찾아 드러내는 일은 형상에서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제는 붓글씨를 쓸 때가 되었다.” 왜 펜 대신 붓인지 물어보니 작가가 한 말이다. 길이 앞에 있으면 걸어가면 될 일이다. 전통을 따르는 일, 그리고 사회에 길들여지는 일, 그러나 본래 길은 없다.

물길처럼 화가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서 걸어가면 길은 생기는 법이다. 농부가 그랬고, 소와 낙타가 그러했듯이 유승호 작가는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막중한 중압감을 극복하고 구도자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초fool'을 비롯한 이번 작품들을 보면서 액체성을 강하게 느꼈나 보다. 액체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권력들과 이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질박하고 순수한 운동성이 화면 전체를 유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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