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신혼부부나 하루 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를 사이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내게 당연한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상대방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문제가 언제나 상대방 때문에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내가 느끼는 황당함만큼 상대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무엇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이상하게 느끼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뿐일 리는 없겠지만,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따라서 다른 경험이 축적되어 온 것이 중요한 변인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김태동 작가의 는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환경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서울의 북서쪽 부도심 지역에서 태어나서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곳은 작가의 고향이며, 당연함의 기준이다. 

작가에게 가장 익숙한 곳인 그 지역은 한 번도 서울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곳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겐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중 어떤 이는 매일 출근을 위해서 서울의 중심으로 이동을 하면서 언젠가는 그 곳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어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익숙해져버린 동네를 떠나는 것보단 그냥 그 곳이 특별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위로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느끼는 고향에 대한 익숙함은 이런 상반된 기대와 적응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리라. 

그의 머릿속에 그 지역을 관통하는 대로(大路)에서부터 작은 골목하나까지도 완벽한 그림이 어렵지 않게 그려지는 것처럼, 그의 마음속엔 거기에 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대한 심리적 지도도 들어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그 곳에 있었던 교회 건물을 기억하는 것처럼,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고등학생이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고 뭐가 되고 싶어 하는지는 물론이며, 검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당구장 주인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도 알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긴다면, 무릇 외형과 내면을 아우르는 이해를 지녀야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익숙함이 발휘하는 미덕은 무심한 듯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본질로 파고 들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 점이다. 그가 구사하는 관점의 기술은 지형지물과 인간, 또는 겉과 속을 관통한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그 곳 사람으로 만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험과 기억들이 그에게 그런 혜안(慧眼)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그 지역은 곧 작가 자신을 만든 무대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삼들 역시 작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지역의 모든 지형지물에 대해서 작가가 느끼는 친숙함은 짧은 순간의 부딪힘만으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을 통해서 기억과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주인공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주변인이다. 김태동의 사진에 등장하는 그 지역과 사람들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주변 또는 주변인으로서의 불안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담아내는 작가의 시각은 과거에 경험한 변형과 변모, 즉 현재를 있게 한 궤적을 함께 추적함으로써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바라본다. 지은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뾰족한 건물은 화려하고 세련되기보다는 어딘지 남루하지만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 있다. 한껏 멋을 내고 허공을 응시하는 젊은이는 오늘도 주변과 중심의 사이 어딘가를 서성이겠지만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작가가 주변도시에서 살아가는 주변인에 대해서 가지는 애증의 교차점을 잘 드러낸다. 

만일 김태동 작가가 익숙함의 미덕에만 머물고자 했다면 아마도 그의 작품은 자신의 고향을 배회하면서 쓴 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구사한 두 번째 관점의 기술은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당연히 거기 있다고 여기던 건물과 골목 사람들을 마치 타인의 시각을 따라 다니는 것처럼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 것이다. 멀리서 조망하는 거리 풍경에서 시간과 공간이 기묘하게 중첩되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에선 그들의 부유하는 욕망이 감지되는 이유이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촘촘하게 다시 바라보기를 시도함으로써 작가는 익숙함이 범할 수 있는 인식의 오류를 뛰어넘고자 하였다. 

고정된 관점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인식을 성숙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주변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인 우리의 삶의 다중성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주어진 환경 앞에서 도전하거나 순응한다. 그가 주목하는 인간의 욕망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의지가 아니라, 한 자리에 머물면서도 끊임없이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는 불안정함 자체이다. 그 꿈틀거리는 욕망이야 말로 주변과 중심을 넘나들고 우리의 내일을 오늘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