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작업을 보여줬을 때, 글을 쓰고 싶다고해서요. 조금 촉박한 일정이지만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내가?”(음, 잘 기억나지 않았다)
“네”(단호하게 답했다)
전시할 작품이라며 작품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말했을수 있겠다 싶었다.
이전 작업과 많이 달라진 듯 했지만, 어딘가 유사한맥락이 있었고,
사실과 현장을 담아내는 사진과는 다른,
시간과 우주를 역사와 함께 담겠다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무모한 시도가 끌렸다.
그런데 심지어... 사진이 예쁜데,슬프고, 아팠다.
별을 찍은 첫 사진에 그는 ‘강선(Rifling)’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총열에 난 나선형의 홈을 말하는 강선은 탄환이 나선형을 홈을 따라서회전하게 하고 이로 인해 회전 관성과 안정된 탄도를 가진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김태동은 별을 담은 사진에서보이는 움직임의 궤적을 탄환의 나선, 즉 강선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별에서 탄환으로의 점핑. 지나친 비약은 아닐까 싶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별의 궤적은 강선을 닮아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가 별의 궤적을 자연스럽게 탄환으로 이을 수 있던 것은 바로 사진을 찍은 장소가 가지고있는 이야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선> 시리즈의첫 작업이라 할 수 있는 <강선(rifling)-011>은철원 수도국지 전쟁유적지에서 찍었다고 했다. 철원의 DMZ를 이야기하면자주 등장하는 이 지역을 둘러싼 이야기는 여전히 분분하다. 1936년에 만들어진 철원 수도국지는 강원도 최초의수도시설이었다. 혹자는 이곳이 한국전쟁 당시 친일인사들을 감금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었었다고도 하고,혹자는 북진할 때는 인근에서 300여명을 총살하거나 저수조에 생매장하고 도주했다고도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확증하기는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 곳에서 벌어진일들이 낭만적이고 행복한 스토리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별을 담고 있는 그를 상상해 보았다. 어디선가 들짐승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 그렇게 덩그러니 밤의 가운데 놓이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 터였다. 그렇게 혼자 기다리다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을 것이다. 습하고 싸늘한 분위기. 두려움과 공포의 한 가운데에서 만났던 별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것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던찰나의 순간에는 공포나 긴장감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빛나는 별을 담은 사진이 한없이 아름답고 고즈넉하게 시선을 잡는데도 자꾸만 마음이걸지럭거렸던 것은 ‘강선’이라는 제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사진에 얼핏얼핏 드러나는 전쟁기념비 같은 모뉴먼트들의 흔적, 흔적을 통해서 짐작하게되는 장소, 전쟁이 만들어낸 상흔, 그리고 분단. 철원이 아니었더라면, DMZ 인근이 아니었더라면, 전쟁의살상과 분단의 상흔이 없는 곳이었더라면, 별들은 다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사진 속, 별에서 총탄소리가, 함성이 들리는 이유다.한없이 조용하고 고즈넉한 사진인데 마음은 먹먹해지고 불편하다. 설령 그 먹먹한 불편함이장소가 주는 이야기에 지나치게 몰입한 잘못된 감상이라 해도 할 수 없다. 아무튼 김태동의 별은 그렇다.
별을 찍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별을 추적하면서 고정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의 별 사진은 별과 사진 속에 별과 함께 등장하는 대상을‘포착’하는 사진이 아니다. 적도의라는 장비를사용하는 그의 사진은 노출시간을 길게 하여 별을 추적하면서 고정시켜 사진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몇 십 여분가량 조리개를 열어 놓고, 별을 따라 정교하게 움직이는 작업은 일반적인 사진 ‘찍기’와는 확실히 다른 과정이다. 뿐만 아니라 별을 따라추적하는 과정에서 대상의 이미지가 어떻게 드러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셔터를 누르고 바로 확인하는시대에, 참으로 미련한 작업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100 킬로그램이넘는 장비들을 이고지고 현장에 나간다 하더라도,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순간순간 바뀌는 날씨와 주변상황,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한 컷도 못 건지고 돌아와야했던 날들도 많았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별 사진 속에 등장하는 별은 셔터를 누른 ‘순간’의 별이 아니다. 수억 광년을 지나 이제야 지구에도착한 별빛의 사진이다. 조리개를 열고, 별의 흔적을 추적하여 흔들리지않는 또렷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별의 이미지는 그래서 긴 시간의 기록이다.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시간이다.그 별 빛 아래 흔들리는 대상의 이미지, 지금. 별 빛 아래 흔들리는 현재는 또렷하지 않아 오히려 더 사실적이다. 합성인 듯 그림인 듯,흔들리는 이미지는 묘한 긴장감을 주고, 사실적으로 보였던 대상들은 갑자기 시간성을잃으며 다시금 연극무대의 세트장처럼 다가온다.
김태동의 별 사진은 크게 두 시리즈로 나뉜다. 별을 찍게 되었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강선>과 이후 <플라네테스>. 전쟁이나 역사적 이미지가좀 더 부각되거나 약해지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별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의결을 공유한다. 이 두 시리즈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사진 이미지를 바라보는 관객 안에서 생겨나는보이지 않는 다이나믹한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별 사진이 다른 일반 사진들과 달라지는 지점이기도한데, 사진이라는 평면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고 있으면 관람객의 시선은 이미지 뒤로 무한 확장되거나이미지 앞으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시공간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별에 집중하며 아련해지려 할 즈음,한국전쟁과 기념비와 같은 역사의 흔적이라는 객관적인 정보들이 시선으로 들어온다. 별이라고 하는 낭만적인 모티브에 감성적으로 몰입하려하면, 시각에 포착되는 정보의 흔적들이 몰입을방해한다. 광활한 우주로 시선이 뻗어져 나가려고 하는 순간, 흔들리는대상의 이미지가 시선을 현재로 잡아 끌어낸다. 언뜻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미지이지만,이미지 안에서의 시선의 이동은 그 어떤 사진보다 역동적이며, 이성과 감정의 오고감이전쟁 같은 상황이다. 그냥 별을 찍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뭐라 딱 집어말하기 어려운 어떤 모호하고 묵직한 감정의 덩어리가 훅 치고 들어오는 낯선 경험이 가능한 사진. 김태동의별 사진은 그렇다.
사실 그에게 별을 찍은 <강선>시리즈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갑자기 별을 찍는 다는 것인지 조금은 생뚱맞다는생각을 했다. 깊은 밤 혹은 이른 새벽, 도시가 잠들어 있을 때 만난낯선 사람들을 찍은 시리즈나, 오랫동안살고 있는 서울의 부도심을 찍은 를 보았을 때, 사진 작업을 하는 여느 다른 젊은 작가들처럼 한동안은 유사한 맥락에서 일상과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낼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를 찍을 때부터 별 작업의가능성이 있었을 수 있다. 도시의 밤은 낮과는 다른 얼굴이다. 도시의밤은 낮보다 화려하기도 하고, 낮보다 여유롭기도 하며, 때론 슬프기도하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경계가 풀어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작업을하는 동안 그는 밤의 사냥꾼 혹은 산책자마냥 도시의 밤을 헤집고 다녔다. 그에게 밤은 익숙함이었다.화려한 불빛에 눈여겨보지는 않았더라도, 그 밤의 하늘, 거기에도 별은 있었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서 한밤중에카메라를 들고 수도국지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에게 밤이 익숙해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철원에서 마주한 밤,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에서 만나는 밤의 얼굴은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별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별을 향해 카메라의 조리개를 연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별에 관한 작업의 시작이었던 <강선>시리즈와 이후 이어지는 <플라네테스> 시리즈를 담은 이번 전시의 제목을 《플라네테스》로 정했다. 제목인 ‘플라네테스(Planetes)’는 우주의 난개발로 인해서 지구 주변을 떠도는 데브리를 청소하는호시노 하치로타와 팀원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져왔다. ‘플라네테스’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하는 말로 방황하는 자(Wanderer) 혹은 여행하는 자(Traveler)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별을 찍겠다고 장비를 챙겨들고 밤이면 길을 나서는 자신의 모습에서플라네테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별을 찍으면서 마주하는한국사와 한국사회의 현실 안에서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에서 플라네테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어쩌면,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을 본것인지도 모르겠다.
김태동의 여행과 방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점에서 <플라네테스>는 호주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쟁 관련작업을 의뢰받아 시작된 시리즈이지만, 별에 대한 그의 작업이 전쟁, 역사의 틀에서 벗어나 좀 더 근원적인 접근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전환점을 주는 계기가 된 작업인 듯도 하다.<플라네테스> 시리즈의 사진을 보면 별과 전쟁이라는 모티브와의 연결이다소 느슨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캔버라에서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운해를 만나 촬영한 캔버라도시의 밤을 찍은 는 이번 전시의 엔딩이자,다음 전시의 시작 같다는 점에서 마음에 남는다. 푸른빛이 도는 밤하늘을 가득 메운별과 그 아래 펼쳐진 운해와 함께 흔들리는 도시의 불빛을 포착하고 있는 이 사진은 이제 별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닌, 별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다시 돌아온 도시에서 계속 작업을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달라졌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그 도시에도 별이 있다.
그러고 보면 그가 있던 곳, 어디에나 별은 있었다.